반전과 배신의 '신세계'
반전과 배신의 '신세계'
  • 이원우
  • 승인 2013.03.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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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감독 신작, 탄탄한 각본으로 호평

 
한 남자(이정재)가 경찰이 된다. 허나 그는 선배 경찰(최민식)로부터 조금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너에게 딱 맞는 일이야.”

결국 그는 기업형 폭력조직 ‘골드문’에 잠입수사원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8년. 조폭들의 세계에 완전히 적응해 그룹 실세(황정민)와 ‘브라더’의 관계를 구축한 그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경찰 지휘부의 요구에 점점 숨이 막혀온다.

끝내 경찰은 골드문의 내부 사정에까지 깊숙하게 관여하려 하고, 조폭과 경찰로서의 역할행동을 동시에 요구받는 남자의 신변은 점점 위태로워져간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함께 2013년 초 한국영화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 <신세계>에서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 등의 배우만큼이나 주목을 모으는 인물은 바로 감독 박훈정이다.

직접 연출을 맡은 것은 2010년의 <혈투> 이후 2번째지만 그는 이미 충무로 최고의 각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으로 2011년 제32회 청룡영화제 각본상‧작품상을 수상한 <부당거래>의 각본이 바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끊임없는 반전과 두뇌싸움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박훈정의 강점은 <신세계>에서도 적절하게 발현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그는 관객과 인물 간의 ‘정보 불균형’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인다. 즉, 인물들이 입수한 정보가 얼마만큼인지를 선택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줄거리의 향방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너무 많이 활용하면 난해해지고 너무 적게 사용하면 김이 빠지는 이 기술은 정확한 타이밍에 사용되면서 각본가가 직접 연출을 맡았을 때의 장점을 눈으로 확인시켜준다.

2000년대 초반 조폭 영화가 봇물을 이루던 시기, 조폭들의 세계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공권력을 비하함으로써 점점 현실감을 잃어갔던 설정 상의 함정 또한 이 영화는 피해가고 있다.

영화 속 경찰은 조폭을 뒤쫓다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간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것은 공권력에 대한 폄하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의 복잡함으로 투사된다.

연변에서 투입된 용역킬러들 정도를 제외하면 경찰과 조폭을 막론한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치열한 고뇌와 번민을 반복한다. 같은 회사(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에서 배급된 <7번방의 선물>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게 ‘인간’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작품성이 돋보인다.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와 조 카나한 감독의 <스모킹 에이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엘리베이터 격투신은 이 영화가 액션영화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함을 과시하지만, 기존의 갱스터-느와르 작품들을 지나치게 많이 인용한다는 점에서는 평론가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첫 장면부터 대단히 잔인하고 영화 내내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연출이 반복되므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 영화를 선택하는 문제에는 고민이 필요하다. 관객 숫자가 압도적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능력을 입증한 각본가 겸 감독에게는 또 다른 ‘신세계’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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