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독재자와 성자 사이
링컨, 독재자와 성자 사이
  • 미래한국
  • 승인 2013.03.23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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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영화 <링컨>이 개봉했다. 일대기 전체는 아니다. 노예제를 금지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통과를 둘러싼 막전막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작은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의 저서 <Team of rivals :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 한국어판 제목은 <권력의 조건>인데, 링컨의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을 조명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항상 이런 식의 덕성스러운 용어를 선호한다. 그러나 영화는 링컨 식 리더십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남북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링컨은 전쟁을 끝내기 전에 어떻게든 노예제 금지를 헌법에 못 박으려 애를 쓴다. 그를 위해선 의회에서 3분의2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당은 과반을 겨우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반대파를 설득해야 했다. 명분과 논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실 가능성이 없다. 보다 ‘현실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로비스트를 동원해 ‘자리’를 제시하고 때로는 ‘돈’도 건넨다. 매수다. 위협도 빠지지 않는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은 잠시 뒷전이다.

그 모든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국무장관 시워드(William Seward)는 사실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서 링컨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이름을 보호하며 지저분한 부담은 자신이 짊어진다. 확실히 이 대목은 ‘라이벌로 팀을 꾸린 링컨의 천재성’이겠다.

연방분열의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

그런데 반대파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할 대상이 또 있었다. 접경주와 서부의 공화당 그룹이었다. 이들도 노예제를 반대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은 노예제의 철폐 자체보다는 연방의 유지를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남부연합이 노예제 허용주의 확대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면 노예제를 유지한 채 연방에 복귀하는 걸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

링컨도 원래는 이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왜 링컨은 수정헌법안 통과에 그렇게 몰두했을까? 갑자기 노예해방의 성자가 된 것일까?

링컨은 노예제를 부도덕하게 보긴 했지만 노예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는 아니었다. 그는 변호사 시절 한때 노예소유주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바도 있었다.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은 연방의 유지와 강화였다.

그는 애초에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제에 타협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었다. 액면 그대로의 뜻이었다. 결국에는 사멸할 노예제 문제 때문에 당장의 연방의 분열을 초래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랬던 그가 노예제의 항구적 종식에 힘을 쏟은 것은 그 불씨를 남겨놓으면 다시 연방 분열의 화근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있었으며 북부는 그 중심 지대였다. 그렇다고 남부의 흑인노예들을 산업노동력으로 확보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럽에서 이민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한 노동력 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방주의와 노예제 문제는 연결돼 있었다. 북부는 국내시장을 확충하고 보호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했다. 하지만 면화의 재배 수출이 절대적 비중인 남부는 달랐다.

미국 남부는 1830년에는 세계 면화의 절반을 1850년에는 4분의3을 생산하고 있었다. 남부는 그 상당 정도를 당시 세계 면직공업의 중심인 영국에 수출하고 그로부터 필요한 공산품을 수입했다. 당연히 보호무역에 반대였다.

곡물 농업 중심의 접경주와 서부는 자영농 전통이 강한데다 탈곡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노예노동의 필요성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부는 노예제 허용을 이들 지역으로도 확산시키려 했다.

표면적으로는 주별의 자율적 결정론이었지만 사실은 반연방주의의 확산을 겨냥한 것이었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United States는 대개 복수(複數)로 이해됐다. 하지만 지금은 United States는 단수(單數)다. 남북전쟁의 결과였다. 남북전쟁이 ‘하나의 미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링컨은 노예해방의 투사 이전에 또 다른 의미에서의 국부(國父)였다. 그는 그 두 번째 건국을 무기와 피를 마다하지 않은 철혈(鐵血)로 이룩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긴급조치도

하지만 그만큼 대가도 컸다. 4년간의 남북전쟁은 그 전과 후를 통틀어 미국 역사상 어떤 전쟁보다도 많은 사망자를 냈다. 61만8천여 명! 건국 이래 오늘날까지 치른 모든 전쟁에서의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였다.

절대수에서 뿐만 아니라 비율로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총인구는 3100만 명, 인구비율로 볼 때 2%, 10만 명당 2천 명의 사망이었다. 미국이 치른 가장 큰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비율이 10만 명당 241명이었다. 단위 자체가 달랐다.

그런데 링컨은 그 엄청난 희생을 낸 전쟁을 의회의 승인도 구하지 않고 시작했다. 외국과의 교전이 아니라 반란세력진압일 뿐이라는 논리였다.

그는 미국은 헌법보다 연방이 먼저 성립됐으므로 어떤 주도 연방을 이탈할 권한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게 남부연합은 단지 반란세력이었다. 그래서 남북전쟁은 그냥 내전(Civil War)이었다.

하지만 오판이 있었다. 6개월이면 끝나리라 생각한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남부의 휴전제안을 거부하고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강제징집으로 병력을 동원해 계속 투입했다. 희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링컨은 전시 비상대권을 내세워 ‘긴급조치’까지 발동했다.

자신에 반대하는 수백 개의 신문을 폐쇄하고 반국가 행위자는 모두 군법에 회부할 것임을 공포했다. 군인이 민간인 반대자를 체포하도록 허용하고 인신보호영장제도를 정지시켜 1만3천 명이 넘은 사람을 영장도 없이 투옥시켰다.

이름을 가리면 전쟁광에 독재자로 여기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도 링컨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위대한 노예해방자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말한 사람을 감히 누가 독재자라 할 것인가? 그는 세계적으로도 위인의 반열이며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거의 성자(聖者)다.

하나의 국가를 위하여

우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지도자가 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다. 그런데 링컨은 성자인데 이승만 박정희는 독재자인가? 링컨이 노예해방을 하고 연방을 지켜낸 것은 훌륭한데 나라를 세우고 자유를 지켜낸 이승만은 분단의 원흉인가?

박정희는 철권으로 국가를 이끌었지만 이 민족을 끈질기게 짓눌러온 가난의 사슬을 끊고 고도산업국가의 기반을 닦았다. 그런데 링컨의 비상대권과 긴급조치는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데 박정희의 유신과 긴급조치는 그냥 민주주의의 유린인가?

링컨은 분명 위대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가 위대하다면 이승만 박정희도 그에 못지않게 위대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처했던 조건은 링컨보다 훨씬 더 악조건이었다.

링컨의 남북전쟁 승리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이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가 이룩한 건국과 호국 그리고 부국의 역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의 성취였다. 언제쯤 <링컨>처럼 이승만 박정희를 그린 영화가 나올 것인가?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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