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한국 바둑 중국에 밀리나
세계 최강 한국 바둑 중국에 밀리나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4.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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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창치배-LG배에서 연패…최강 이세돌 마저 은퇴


한국의 박정환 9단이 3월 6일 열린 제7회 잉창치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 제4국에서 중국의 판팅위 3단에게 패배하면서 종합성적 1승3패로 우승컵을 넘겨줬다.

1993년생인 박정환 9단은 이세돌 9단과 국내 랭킹 1위를 다투고 있는 기사로, 향후 한국 바둑계를 짊어질 대들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2월 20일 열린 제17회 LG배 결승 3번기 제2국에서는 한국의 원성진 9단이 중국의 스웨 9단에게 불계패하며 종합전적 0-2로 패했다. 원성진은 지난 18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결승1국에서도 139수만에 백으로 불계패한 바 있다.

중국 기사들이 세계대회 우승컵을 가져가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 조훈현-이창호-이세돌 등 천재 기사들을 앞세워 세계 바둑계를 굳건하게 지배하던 한국의 위상이 중국의 약진 앞에서 조금씩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잉창치배 결승에서의 패배는 국내 바둑팬들에게 있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잉창치배는 여타 대회와 달리 4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우승상금도 40만달러(약 4억원)로 가장 크다.

한국의 독무대였던 잉창치배에서의 패배

특히 이 대회는 한국과 유독 인연이 깊다. 1989년 9월 열린 제1회 잉창치배 결승전에서는 당시 세계 바둑계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의 조훈현 9단이 ‘철의 수문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을 3승2패로 꺾고 세계를 제패했다.

한국 최고가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으며 세계가 대한민국을 다시 쳐다보게 된 계기였다. 당시 조 9단은 우승 확정 직후 “내 몫은 했다. 그건 참 기쁜 일이다”는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겼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대회에서 자신이 우승하면서 한국 바둑의 위세를 떨쳤으니 나머지는 이창호-유창혁 등 후배들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4년 후인 1993년에 열린 제2회 잉창치배 역시 대한민국의 품으로 왔다. 국내 바둑계에서 조훈현 9단에 밀려 20여년간 ‘만년 2인자’ 신세였던 서봉수 9단은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모두 격파하면서 잉창치배 결승에 진출,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 9단과 격돌했다.

서 9단 역시 4년 전 조 9단처럼 2승2패 동률을 이루며 5국까지 갔다. 마지막 5국에서 서 9단은 초반 포석 실패로 궁지에 몰렸으나 상대의 실수를 끌어내는 강수(强手)를 연달아 날리면서 오다케 9단의 대마를 포획,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어 97년 열린 제3회 대회 결승에서는 한국 바둑계의 ‘4인방’ 중 한명인 유창혁 9단이 한국기사 킬러로 유명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을 3승1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가져왔다.

또 2001년 열린 제4회 대회에서는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이창호 9단이 중국의 창하오 9단을 상대로 가볍게 3연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제5회 대회에서는 최철한 9단이 중국의 창하오 9단에게 1승3패로 패하며 우승컵을 넘겨줬다.

그러나 최 9단은 4년 뒤인 2009년 제6회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이창호 9단을 3승1패로 누르고 끝내 우승을 일궈냈다. 이처럼 잉창치배는 한국 바둑의 발전과 역사를 같이 하고 있었기에 박정환 9단의 분패는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에이스 이세돌까지 잃은 한국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단체전 형식으로 겨루는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대회에서도 한국은 중국의 상승세에 매년 고전하고 있다.

한국은 이 대회가 처음 시작된 2000년을 필두로 2005년까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우승컵을 내주지 않다가 2006년에 일본에 처음으로 패배했다. 이어 일본 바둑은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지만 한국은 2008년과 2012년에 막강해진 중국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이런 상황이기에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가진 이세돌 9단의 은퇴 선언은 더욱 우울하게 다가온다. 이세돌 9단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려할 때 떠나겠다”면서 조만간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현역을 떠나 북미 등 불모지에 바둑을 보급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게 이 9단의 입장이다. 이 9단은 국내외 기전에서 모두 64회나 우승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 최강자인 구리 9단을 2승1패로 꺾고 우승한 바 있다.

이세돌 9단이 현역을 떠나면 한국 바둑계는 중국의 거센 돌풍을 막아낼 가장 확실한 에이스 한명을 잃게 된다. 여기에 우리 나이로 내년에 40세가 되는 이창호 9단은 최근 뚜렷한 노쇠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밀리고 있다.

최철한-박정환-백홍석-원성진 등이 국제대회에서 선전하고는 있으나 조훈현-이창호-이세돌 등이 과거에 보여줬던 압도적인 강력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기사들의 수준이 과거에 비해 급성장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잉창치배 결승에서 박정환 9단을 꺾은 판팅위 3단을 비롯해 구리 9단, 셰허 9단 등 중국의 젊은 고수들은 한국보다 10배 이상 넓은 국내 바둑 저변을 기반으로 심층적인 연구를 벌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습득한 신(新)포석을 국제대회 때마다 들고 나오면서 한국 기사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 바둑계가 이 같은 여러 악재를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은 가능할까. 이세돌 9단은 은퇴 관련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9단은 “바둑도장들이 창의력을 죽이고 있다.

과거에는 바둑의 무한한 세계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면, 지금은 정석과 묘수풀이 등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교육으로는 결국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93년과 97년 잉창치배를 우승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서봉수 9단과 유창혁 9단은 독학으로 바둑을 깨우친 ‘자생적’ 고수들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천재들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이세돌 9단의 발언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한국 바둑이 다시 세계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유망주들에 대한 바둑 교육 시스템과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거의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처럼 뚜렷한 개성과 기풍을 가진 창의성 넘치는 고수들이 등장하는 날, 한국은 1억명의 바둑 인구를 앞세운 중국을 상대로 다시 한번 세계 최강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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