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게, 더 높이 성장 꿈꾸는 상하이
더 크게, 더 높이 성장 꿈꾸는 상하이
  • 이원우
  • 승인 2013.04.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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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강(黃浦江)에서 바라본 동방명주

상하이 푸동공항에 착륙한 것은 지난 3월 16일 오후였다. 위도 상으로 제주도보다 2도 낮아 이미 매화가 피기 시작한 상하이의 체감온도는 예상보다 따뜻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잠시 후부터 내릴 빗방울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집집마다 늘어놓은 빨랫줄에는 형형색색의 빨랫감들이 빠짐없이 널려 있었다. 그 풍경을 뒤로 한 채 어딘가로 걷고 있는 사람들, 또 사람들.

치밀하게 구성된 신호등 체계가 무색하게 중국인들은 그들 특유의 ‘자유로움’과 ‘융통성’으로 신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당당히 대로를 활보한다. “여기서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관광객과 바보 뿐”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농담조차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다.

첫날은 도시의 공기를 음미한다는 기분으로 동방명주(東方明珠)가 보이는 황푸강(黃浦江)변으로 산책을 나서 본다. 한강이 서울을 남북으로 갈라놓는다면 황푸강은 상하이를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

광대한 강의 크기는 한강을 연상시켰지만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세는 서울 사람들이 허락할 만한 스케일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강의 혼탁함은 한강보다 심하다.

호텔로 돌아와 삼성 로고가 박힌 TV를 켜자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習近平)의 소식을 전하는 앵커들의 분주한 중국어가 들린다.

황푸강 풍경도 심각한 논조로 보도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강 지류에서 돼지 사체 8천 마리가 떠올랐다는 뉴스였다. 중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상이겠지만 새삼 마음 놓고 배부른 식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피어오른다.

채널을 바꾸자 한국 가수 f(x)가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환하게 웃으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삼성의 TV, 황푸강변의 미래에셋 건물, TV속 f(x), 상하이 CGV의 광고판 등으로 대변되는 ‘중국 속 대한민국’을 발견하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위위안, 신톈디, SWFC

17일 아침부터는 복장을 간편히 하고 본격적인 관광에 나선다. 일요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중국인들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와이탄(外灘)에서 남쪽으로 10분 거리의 위위안(豫園)이다. 명나라 반윤단(潘允端)이 아버지 반은(潘恩)을 기쁘게 하기 위해 조성된 이 정원은 일본인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세밀함과 정교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돌멩이 한 개 창틀 하나에도 사연이 깃들어 있어 빨리 둘러보면 10분이지만 면밀하게 관찰하면 10시간으로도 부족한 이 정원의 별명은 동남 제1명원. 중국 3대 정치세력 중 하나인 상하이방의 수장 장쩌민(江澤民) 역시 입구에 해상명원(海上名園)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아홉 번 구부러져 있는 구곡교(九曲橋)를 고즈넉하게 걷는 호사를 누리며 약 40분의 위위안 나들이를 마친다. 드물게 보이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한다.

위위안 주변의 고즈넉함이 무색하게 주변에 위치한 장터 예원상창은 떠들썩하다. 마치 종로 2가의 뒷골목 같은 정서를 풍기는 가운데 홍위병 차림을 한 소녀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중국화폐에 마오쩌둥(毛澤東)을 그려 넣은 중국인들은 휴대폰 케이스에도 기념품 책갈피에도 마오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바닥에는 젊은 상인들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중국병사 장난감을 작동시키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문화대혁명을 전후로 한 투쟁의 역사가 노스탤지어로 각인된 것일까.

정원과 시장 풍경을 뒤로 하고 찾은 곳은 임시정부청사였다. 이승만, 김구, 이봉창과 같은 시대적 거인들을 소화해 낸 장소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을 만큼 협소하고 초라한 이 장소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인 관광객들의 작은 관심이다.

그나마 건물 내부 가이드는 서툰 한국어를 필사적으로 구사하는 중국인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한 세기를 뛰어넘은 강탈의 슬픔이 좁디좁은 청사의 복도를 처연하게 메운다.

임시정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상하이의 압구정-청담이라 할 수 있는 신톈디(新天地) 거리가 자리하고 있어 기분이 더욱 미묘해진다. 미안한 얘기지만 행인들의 행색부터가 이미 다르다.

상점 직원들의 접객도 확실히 친절하다. 고급 음식점과 카페,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골목골목을 돌다가 1920년대 상하이 중산층의 전통 가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전시관을 둘러보며 새삼 상하이만의 풍미를 다시 확인한다.

중국 최대도시 상하이의 꿈

상하이국제금융센터와(左) 현재 건설 중인 상하이타워(中)

다음 목적지는 신톈디 이상으로 첨단을 지향하는 시내 중심부, 그 중에서도 상하이국제금융센터(SWFC)다. 동방명주가 쌓아올린 최고(最高)의 기록을 갈아치운 SWFC 100층 전망대의 높이는 무려 474미터. 전망대 기준으로는 세계 최고다.

그런데 이 건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이 재미 있다. 명실공히 중국의 자부심으로 군림해온 동방명주의 기록을 깬 SWFC에 대해 많은 중국인들은 ‘외국 건물’이라는 인식을 갖는다고 한다. 실제로 SWFC는 미국 건축사무소에 의해 설계됐고 일본회사의 투자로 건설됐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방명주를 향하고 있는 SWFC의 독특한 모서리 부분을 ‘칼 끝’으로 해석하는 중국인들은 일본이 금융(SWFC)이라는 매개로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얘기를 자못 진지하게 나눈다고 한다.

2015년 완공을 목표로 SWFC 바로 옆에서 120층 규모로 건축 중인 상하이타워 공사장 인부들의 손길이 왠지 더욱 분주해 보였다. 제국주의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지만 대륙의 후예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제국의 각축을 동경하는 것일까.

2박 3일의 짧은 상하이 여행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상하이박물관의 위세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그 뜨거운 팽창의 에너지를 과거의 유물로만 박제시켜두지 않겠다는 듯한 중국인들의 성장 욕구다.

더 크게 성장해서 더 높이 가 보겠다는 그들의 욕망은 복지와 분배, 정의와 평등의 가치에 점차 중독되고 있는 옆 나라의 외국인으로 하여금 복잡한 심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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