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대한민국 노동운동 이제는 변해야 한다
[특별좌담] 대한민국 노동운동 이제는 변해야 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5.1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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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정연수 국민노총위원장, 서울메트로지하철노조위원장
           조영길 아이앤에스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전 서울중앙지법 판사
사 회│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춘투’ 시즌이 돌아왔다. 노동계가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해결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가운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노동자간 임금 격차 문제 등 다양한 차원의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미래한국>은 제3노총인 국민노총위원장과 대표적인 노사문제 전문 변호사의 좌담을 마련해 과거 이념지향적인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바람직한 노조의 방향성을 찾고자 한다.

사회 : 먼저 노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현장에서 느끼는 점을 말씀해 주시죠.

정연수 : 제3노총을 하면서 정치적 벽을 가장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정부-국회라는 삼각 벽이죠. 예컨대 한국노총은 국회 여야에 조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현장노동계에 통제력, 지배력을 발휘해서 사업장마다 사용자들이 한국노총 눈치를 대단히 많이 봅니다. 이걸 뚫고 나가는 게 국민노총의 방향인데 쉽지 않습니다.

사회 : 먼저 국민노총이 기존 노동운동과 무엇이 다른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견제와 상생·협력의 노사관계 필요

정연수 : 저희 주장은 기업을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하자는 것입니다. 기둥정신 4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주인노동운동입니다.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꿈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종속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자는 것인데, 회사 경영환경에 개입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죠.

둘째는 노동계가 도덕성을 높여 과거 머리띠, 최루탄, 성폭력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일소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노동운동이 사회공헌 등 사회적 책임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규직이라는 상대적 우월 위치에서 노동이 노동을 폄하하고 권력을 누리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넷째는 기업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업을 견인해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먹구구로, 팔뚝질로 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 주인의식이란 부분에 대해 추가 논의를 해야겠습니다. 경영 참가 논리는 소유권 문제도 발생할 텐데요.

조영길 : 말씀하신 4대 기본정신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 타당한 기준,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게 잘 실행되면 기존 양대 노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강해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향상될 것 같습니다.

특히 주인노동이라는 측면은 모든 사람이 자유와 주인의식을 갖고 각자의 일터에서 고유한 기회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주인정신이 기존 소유권 체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면 자유시장적 기본질서와도 충돌하지 않죠. 이념형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노동자가 가져야 한다는 극단론과는 다른 것이겠죠.

사회 : 견제와 협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정연수 : 주인노동운동이라는 것은 저마다 일터에서 일을 향유하고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체제변혁이나 이데올로기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꿈과 자아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빈부 차이 같은 사회 갈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정권이 주주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기업을 투명하게 하자는 것은 기업에 대한 신뢰가 그 기업의 생존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영길 : 말씀하신 대로 사용주가 권력을 남용하면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기존에는 너무 이익 중심적이었습니다. 이익은 누가 더 많이 가지면 남은 덜 갖는 식으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죠. 이 이익을 정의로운 가치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인간사회가 가능합니다.

노·사, 이익 아닌 정의·합리성 따라야

정연수 : 맞습니다. 주인정신 속에는 기업을 견인하고 발전시키는 견제가 있습니다. 기업이 정의로운 가치를 갖고 투명하게 가는지 감시하며 비리와 부정을 척결하는 것도 노동조합의 역할입니다.

조영길 : 노조의 합리적 기능이 견제와 협력이라는 점은 정확한 포착입니다. 이게 주요 선진국의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핵심이죠. 당연히 사업주는 부당하게 할 수 있습니다. 노조가 이를 견제하고 막는 기능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업주가 바르고 정의로울 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협력합니다.

기본적인 것은 회사나 노조가 모두 정의에 입각한 합리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법론에서도 과격한 계급투쟁주의는 대화는 절대 안 되고 오직 힘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선진국일수록 노동운동에서 투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납니다. 공론의 장에서 경영자, 노동자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서로 합리적 이익에 공감할 수 있거든요.

정연수 : 네. 최근에 파업을 오래해서 회사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진 버스회사에 갔습니다. 여기서 버스회사 사장과 노조 조합원을 만났는데 노조도 회사가 잘 돼야지 본인도 잘되고 행복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회사 사주의 비리 때문에 회사가 멍드는 것을 못 참는 것입니다. 회사가 정말 어렵다면 전세금이라도 빼서 회사를 살리겠다는 게 노조원입니다.

이런 의식은 있는데 이제껏 공론의 장에서 얘기해본 적이 없었던 게 문제입니다. 같이 터놓고 대화를 하니 사업주나 노조 간부 모두 어쨌거나 회사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습니다. 노조원 마음 잡는 것이 사실 간단합니다. 기업주가 공정하면 됩니다. 기업주도 이젠 졸부가 아니라 명예로운 부를 만드는 훈련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 :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2중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6.6% 밖에 안 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전체 노동운동의 규범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영길 :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이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주도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운동 안에서도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죠. 노조도 사회적 위치를 감안해서 사회적 책임을 져야 노동계 간 격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노조도 일정한 합리적 기준을 넘어가면 자제해 과실이 골고루 퍼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것을 강제로 제도화하면 사회주의 비슷하게 가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가치적인 면에서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게 사회구조를 개선시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대 노총 어디에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없죠.

정규직 노조가 노조 경제적 격차 만들어

정연수 : 지금은 노동운동의 주류가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1400만 명의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가 있는데 현실 노동운동은 이 문화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 문제는 실제 이들의 조직 대표들이 노동계에서 성장할 토대가 만들어져야 해결됩니다. 그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 높여 주장해야 하는데 대기업 소수 노조가 정치권과 결탁해서 만든 불공정 노동환경이 이를 어렵게 하고 있죠. 이런 현상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구조입니다.

사회 :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정연수 : 노동계에서 정규직을 무슨 성역처럼 만들고 있는 게 문제예요. 전 노동계에서 고용의 유연성을 허용해야 한다고 봐요. 고용에 대해 유연하지 못한 경영환경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낳는다는 것이죠.

고용 유연성에 대해 노동계가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이걸 풀어주면서 동일가치 동일임금 문제에 접근해야 해요. 경영이라는 게 수익 창출이 목적이니 비용 줄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양대 노총, 낡은 이념과 기득권 유지에 매몰

사회 : 정부 입장보다 더 진보적인 것 같습니다.

정연수 : 현실이 그렇습니다. 정규직 임금을 보전하려면 비정규직 임금을 내리고 계약 해지를 해서 비용을 줄여야 하는 것이죠. 실제로 파트타임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이런 일자리에 제대로 된 임금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영길 : 맞습니다. 모든 직원은 정규직이어야 마땅하다는 게 노동계가 추구하는 대원칙인데 이걸 고집하면 회사가 직원을 채용하려 해도 무서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가 줄고 열악한 일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엔 기간제 고용 자유화, 파견 근무 합법화를 실시했음에도 정규직 일자리가 줄지 않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 임금격차가 줄도록 비정규 일자리에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도 권고했죠.이게 세계적 추세인데 우리는 반대입니다. 고용면에서 유연하게 가면서 내용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을 노동계 지도자들도 알면서 주장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 :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노조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정연수 : 제가 2007년부터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을 해서 7년째입니다. 실제 보니 회계가 개판이었죠. 영수증을 동네 상점에서 사서 그걸 붙여 놓는 식입니다. 지하철 파업하면 김밥 값만 6억 정도 나갑니다. 그런데 영수증이 없이 송금했다고 하면 끝입니다. 그래서 간이영수증을 없애고 현금영수증 아니면 카드로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성역이 아닙니다. 회계사를 통해 외부감사를 받으면 투명성이 담보되고 그렇게 되면 노동계의 힘이 더 커집니다.

조영길 : 노조 예산은 규모도 크고 다수의 조합원이 낸 것입니다. 노조도 공정한 회계감사를 받으면 투명성과 도덕성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노조의 윤리성이 회복돼 나아가 사회 전체의 도덕성이 향상된다면 노사관계 개선이라는 것이 따라오지 않을까요.

결국 이것이 상생과 효율의 증대와 같이 가는 방향이죠.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기본적으로 도덕성, 정의가 더 중시되고 모든 사람이 그 기준을 따르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한국노총, 민주노총 같은 거대 노총과 경쟁하기가 힘드시죠.
정연수 : 양대 노총이 정치권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요. 국회에서 사업주에게 전화하면 양대 노총을 좀 더 지원하고 저희는 견제 당하는 식입니다. 양대 노총에 대항해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을 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가치지향적인 노사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정연수 : 회사도 건강한 노사문화 발전을 위해 지원하고 협력하는 것도 중요해요. 과거에는 어용이다 아니다라는 개념에 집착했는데 노사문제는 이제 회사의 경영활동의 하나이니까요. 구체적 개인 노조원이 아니라 노사문화 성장을 위해 지원해야 합니다.

조영길 : 중요한 얘기인데요. 현행법상 회사가 노조 운영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노사관계에서 사용자가 역할을 해야죠.

독일 노사정 합의, 초월적 가치가 기능

사회 : 국민노총 같은 관점이면 우리도 코포라티즘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조영길 : 지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라는 양대 노총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경우 체제변혁이라는 낡은 이념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에서도 투쟁이 중심이죠. 한국노총은 굉장히 사용자 유착적이어서 투명성과 공정성에서 의심이 됩니다.

이 양쪽 노동운동의 전근대성을 바꿔야 하는데 집단의 경제적 이익만 중시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타당한 가치, 정의,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단에서도 실력 대결보다 노사정 공론의 장을 통한 협상으로써 이를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민노총은 현재 세력은 적지만 선진화의 과제를 정확하게 잡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움직임이 노동계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났다는 게 상당히 귀하게 여겨집니다. 기업에서도 이런 합리적 가치 위주의 건전한 노동운동에 대해 용기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정연수 : 맞습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보면 노사 간 사회적으로 협의할 구조적 환경을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노총은 우리 사회문제, 정책결정문제에서 사전에 노사정이 만나 충분히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주체들마다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 유럽에서 했던 노사정 협약 과정을 보면 밑단의 갈등을 통합하는 보편적 질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영길 :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의와 가치가 다르다는 상대적 가치관 갖고는 노사가 만날 수 없다고 봅니다. 누구나 인간이면 다 지켜야 하는 보편적 정의가 있다고 하는 근본적 합의하에 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집단의 이익을 떠나 양심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발전하고 상생할 수 있습니다.

정연수 :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역사가 짧습니다. 선진 노사관계의 역사를 흡입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기존 노조는 노동권력이 돼 있다 보니 본질이나 가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로 접근했어요. 자기 헤게모니와 질서 유지를 위해 다른 건 다 무시하는 것이죠. 그래서 해방 후나 지금이나 노동계의 본질 문제나 상층부 사고방식과 행동은 변한 게 없습니다.

조영길 : 본질의 문제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자기 중심성의 극복에 있습니다. 노동계든 기업이든 일터에서 집단이익이 아니라 공의로운 질서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추구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유시장경제질서가 도덕과 정의가 지배하는 곳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1000만명이나 되는 기독교인이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서구 노사관계 발전 과정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이 그런 보편적 가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보게 됩니다.

정리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사진/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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