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노동조합은 1869년에 창립된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이다.

이 단체는 조직되기 무섭게 상당한 정치력과 교섭권을 획득했고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다 1886년 시카코의 한 파업에 말려들었다. 1886년 5월 3일 시카고에서는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발포에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튿날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해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출동했고 그 한가운데로 폭탄이 터지며 경찰 8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그 책임을 무정부주의 시위주동자들에게 돌렸고 몇 달 뒤 여러 명의 파업 주동자들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미국 노동조합의 어제와 오늘

이를 계기로 미국 최초의 노조인 노동기사단은 무정부주의 단체라는 오명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미국 노동운동의 획을 그은 두 명의 지도자가 나타났다. 유진 데브스(1855~1926)와 새무얼 곰퍼스(1850~1924)다.

유진 데브스는 증기기관차 화부로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893년 전투적인 성격의 미국철도노동조합을 결성하고는 노동기사단을 흡수해 1894년 풀만객차회사를 상대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노동자 6만 명이 동참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자 철도업자들의 요청을 받고 연방 정부가 개입했다. 연방 정부는 이 파업으로 정부 우편물 배달이 방해를 받고 있다며 당시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파업 진압을 위해 군대를 투입했다. 이 가운데 시위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혈전이 이뤄졌고 데브스는 체포, 투옥됐다.

반면, 담배 제조 노동자 새무얼 곰퍼스는 데브스보다 훨씬 온건한 노동운동을 펼쳤다. 그는 사회 개혁이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에는 관심이 없었고 노동시간, 임금, 안전한 노동조건 등과 같은 ‘실리적인 것’에 목적을 뒀다. 그리고 1886년 미국노동총연맹(AFL)을 결성했다.

그는 1924년까지 미국노동총연맹 회장을 독식하며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파업을 벌여 8시간 노동, 주5~6일 근무, 사용자 배상책임, 탄광의 안전 개선 그리고 무엇보다 단체교섭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노동총연맹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추구한 사회변혁보다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이익을 위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1886년 15만여 명이던 미국노동총연맹 조합원 수는 1901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곰퍼스는 기업체의 이윤과 국가경제성장에 노조가 기여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른바 ‘사업 노조주의’(business unionism)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 접근은 노조가 정치적 이슈보다 노동자의 권익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만 집중하는 실용적인 내용이었다.

이것은 미국노동총연맹의 근간이 됐고 1955년 산업별조합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와 통합하며 탄생한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에도 이어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자 권익 보호는 미국 노조가 정치화되지 않고 이 접근을 이어온 배경 중 하나다.

1930년대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조를 조직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와그너(Wagner) 법을 채택하는 등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조치들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노조는 민주당과 가까워졌고 민주당이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정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른바 ‘뉴딜 연합’의 기초가 됐다.

대통령 도와 극단세력 제압하기도

‘반공’(反共)은 미국 노조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국노동총연맹은 당시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윌슨 대통령을 도와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던 극단적 노조 세력과 미국사회당을 제압했다.

AFL-CIO가 소련이 무너지는 데 기여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0년 폴란드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대파업을 하며 소련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AFL-CIO 회장이었던 레인 커크랜드는 폴란드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 성공하도록 15만 달러를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폴란드계 미국인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 등 당시 카터 행정부는 소련의 반발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다.

커크 랜드 회장은 이들을 설득했고 폴란드 노동자들의 소련에 대한 저항을 적극 지원했다. 폴란드 노동자 저항은 소련 공산주의 붕괴의 단초가 됐다. 커크랜드 회장은 그 공로로 폴란드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을 받는 등 세계적 노동운동가로 칭송을 받고 있다.

2011년 기준 미국에는 1600만명이 노조에 가입돼 있다. 전체 노동자의 12.4%다. 민간분야는 노조가입률이 7.6%로 계속 감소하고 있고 공공분야는 36.8%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양대 노조는 1150만명이 가입된 AFL-CIO와 2005년 AFL-CIO에서 떨어져나온 ‘Change to Win Federation’으로 이곳에는 420만명이 가입돼 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