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문화권력을 넘어서려면
좌파의 문화권력을 넘어서려면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5.22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무명 배우 시절 그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존 하워드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남겼다. 존 하워드는 작가들에게 “공산주의를 설명하려 하지 말고 대본에 공산주의를 5분, 그리고 당의 노선을 5분 정도 넣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폴 켄코르의 <레이건의 십자군>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화영역에서 좌파의 득세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 할리우드는 전통적인 좌파노선의 인맥을 키워왔다. 좌파의 사회주의 이념이 근본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점에서 대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문화영역은 좌파 성향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대개 독립적으로 성장한 자본그룹의 경우다. 흔히 인디(Indi)라고 불리는 이 영역은 거대 메이저 자본에 대항해 스스로의 예술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을 통해 다원성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문화 예술에서 이념적 다양성은 서로 서로를 자극해 보다 차원 높은 질서를 모색하게 되는 환경이 된다.

좌파이론가 머레이 북친(M. Buchin)의 사회적 생태주의는 이념시장에서 그리 인기 있는 생각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를 흥행시켰다. 그렇기에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들로부터 배운다”고 말했다.

미국의 할리우드 좌파 코드는 월가의 자본과 만나 상품으로 등장한다. 그런 과정에서 진보적 노선의 영화감독들은 명작을 남겼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핑크플로이드>의 알란파커, <플래툰> <JFK>의 올리버 스톤이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우파코드 남아 있어

반면에 자유주의적 이상을 가진 우파 영화인들도 있다. <쥬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하버드대 영문과와 의대를 졸업했지만 그는 좌파 성향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온난화가 ‘과학적 사기’임을 생물 인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크라이튼은 “현실과 상상은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할리우드는 좌파의 우세 속에서도 우파 문화인들의 코드가 침해받지 않고 존재한다. 이를 조정하는 힘은 다름 아닌 영화판의 메이저 자본이다. 거대 자본의 힘은 좌파든 우파든 흥행의 코드를 사들인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오히려 독립영화들 보다 더 탄탄한 인문학적 백그라운드를 안고 있다.

방송 역시 미국의 시장은 자유분방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방송인들은 대놓고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펀치를 먹인다. 물론 그 반대 현상도 왕성하다.

미국 폭스뉴스 앵커이자 ABC 등에서 30년 이상 소비자피해조사 전문기자로 활동한 존 스토셀은 “정부 정책이 최선이라고 믿어버리는 직관이 잘못됐다”며 정부의 복지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은 정부를 지지하며 쓴 책 <정부는 왜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는 베스트셀러였다.

이렇듯 미국의 방송인들은 공개적이며 대놓고 자신의 정치노선을 밝힌다. 우리 방송인들처럼 은근 슬쩍 ‘고춧가루 뿌리기’식의 행위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방송도 좌파코드가 우세하다. 자유주의 정치 철학자 노직은 그런 현상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기한다. 노직은 방송인이나 예술인, 교수와 같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무한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결과물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 중세시대 교부철학자들이 세속의 질서가 신의 초월적 질서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화와 예술, 지식을 다루는 일은 세속적이 아니라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문제는 서구사회에 등장하는 좌파의 문화적 코드와 달리, 한국의 문화 좌파 코드는 철학적이거나 사변적 담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적 포퓰리즘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노선을 가급적 숨기려 한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낸시랭을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종북’이라고 비난하자 낸시랭은 자신은 종북이 아니라 ‘친낸종낸’이라며 유희적으로 대응한 것이 그런 사례다.

낸시랭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 종북이 아니라면 진보주의든 자유주의든 아나키즘이든 떳떳이 밝히는 것이 팬들에게 솔직한 태도였다.

보수주의-자유주의 모럴에 대한 성찰 시작해야

이러한 연예인들과 방송인들의 ‘노선 감추기’는 사실 재벌 대기업 자본이 점유하고 있는 영화와 방송,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시장 속성에 기인한다. CJ가 운영하는 종합방송 CJ E&M은 오래 전부터 좌파성향의 방송인들과 대중연예인들의 주 활동무대였다.

친노그룹 사이에서 CJ E&M을 비롯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이미경 부회장이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친노의 대모(代母)’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는 CJ엔터테인먼트 그룹이 거대 공룡이라는 사실이다.

2012년 기준으로 CJ CGV가 보유한 개봉관은 108개 극장 834개 스크린이다. 국내에서 외화까지 포함해 연간 50%의 배급률을 넘어선다. CJ E&M은 21개 채널(PP)도 보유하고 있다.

CJ오쇼핑을 시작으로 tvN, 채널CGV,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 투니버스, OCN, 수퍼액션, 온게임넷, 온스타일, 스토리온, Mnet, KMTV가 CJ그룹 소유다. 케이블 방송사업자인 CJ헬로비전은 34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업계 1위다. CJ 양천방송, CJ 북인천방송, CJ 중부산방송 등 17개의 지역유선방송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CJ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CJ가 흥행에 성공시킨 영화들은 <쉬리> <한반도> <괴물>처럼 경찰과 군대, 관료를 부패, 무능하게 묘사하거나 <공공의 적> <강철중> <살인의 추억> <아저씨> 등에서 처럼 사회 부적응증의 건달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친구>와 <추격자>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등에서 조직폭력배, 매춘업자는 오히려 정의롭고 양심적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CJ의 좌파적 상품코드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문제는 여전히 왜 우리에게는 마이클 클라이튼이나 존 스토셀과 같은 우파 문화인들이 없느냐는 점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영화판이 좌파 일색이라서’이다. 하지만 그런 대답은 변명에 불과하다. 정답을 말하자면 한국의 우파에게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모럴에 대한 성찰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북한 공산집단의 비인간적이고 침략주의적 모습만을 그려내는 ‘반공’만이 보수주의, 자유주의 미학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물었던 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우파의 변증운동이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현실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