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CJ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 이원우
  • 승인 2013.05.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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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이고 싶은 어느 자본가 이야기
 

CJ라는 기업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예술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졸부’쯤 되지 않을까.

성별은 남자. 나이는 50대 중반. 별자리는 황소. 혈액형은 AB. 젊은 시절 몸을 움직이는 일부터 착실하게 시작했지만 정작 큰돈은 부동산으로 벌었다.

몇 가지 행운이 뒤따라 세 번쯤 다시 태어나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자본을 축적하는 데 성공. 남은 인생은 아름다움[美]에 투자하고 싶어진 중년의 사나이.

요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홍대 인근의 클럽을 맹렬히 들락거리는 게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가는 곳마다 한 턱 두 턱 화끈하게 쏴 대니 주변에 사람은 늘 많다. 허나 어딜 가나 뒤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마음 깊은 곳은 늘 공허하다. 그들이 자신을 이너서클 안쪽으로 넣어주었는지는 여전히 불명. 아직은 좀 더 성의를 보여야 할 단계인 걸까? 다행히 돈이라면 충분하다.

문화를 만듭니까?

CJ의 얕은 내공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문장이 있으니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2012년의 슬로건이다. 문화를 만들겠다니, 사실은 돈으로 사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입만 열면 문화(文化)의 신성함, 고유함, 형이상학적 가치를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이건 차라리 그들 존재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 말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CJ는 CGV라는 극장으로,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으로, tvN과 XTM 등의 채널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라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한 가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다. CJ가 온힘을 다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문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친노종북적 행태야말로 CJ가 열심히 뛰었다는 증거다.

나는 CJ가 구체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친노종북의 꼭두각시가 됐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CJ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 바닥에서 누가 가장 잘 나가는지’를 찾아 그들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 당시 문화판에서 <미래한국>이 가장 잘 나갔다면 CJ는 서슴없이 미래한국에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묻지마’식 대세 추종은 CJ의 모양새를 우습게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대기업 CJ가 反자본주의 정서를 담고 있는 콘텐츠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양산해 낸 것이다.

이건 마치 중년의 아저씨가 젊은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앞장 서 노인을 비하한 꼴이다. 누워서 침 뱉기요 제 몸에 줄 묶기지만 그 의욕만큼은 진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CJ에게도 할 말은 많을 터다. 고객의 니즈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기본 아닌가? 소비자들이 反자본주의적 콘텐츠를 좋아하기에 잔뜩 만들어준 것이니 CJ야말로 자본주의적 기업이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의 이념 지형도가 어그러진 것까지 CJ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CJ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反자본주의적 콘텐츠를 양산한 CJ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회사”라는 아이러니에 대해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CJ,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알고 보면 CJ는 이념과 별 관계없는 일들도 묵묵히 추진해 왔다. 예를 들어 ‘강남스타일’의 메가 히트에 CJ가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는 2008년, 싸이의 현재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가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았던 시기부터 CJ는 그들과 손잡고 막대한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여러 프로젝트들을 가동시켰다. 빅뱅 같은 국내 뮤지션들을 계속 해외로 내보내고, 되든 안 되든 해외 유명 뮤지션들과의 접점을 늘렸다.

싸이의 성공은 결국 유튜브의 성공이었던 바, 미리부터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둔 건 CJ의 물량공세가 먹혀든 결과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 싸이의 공연 포스터다.

지난 4월 후속곡 ‘젠틀맨’을 발표하면서 딱 한 번 국내공연을 개최했던 싸이는 포스터 한가운데에 당당히 CJ의 로고를 박아 넣었던 것이다. 행간의 의미를 모르면 너무도 이상한 그림이지만 싸이로서는 ‘돈 많은 형’ CJ의 은혜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CJ는 지금 K팝 전용 공연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2009년부터 인디뮤지션들에게 큰 무대가 돼준 ‘지산 록 페스티벌’ 역시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 추진해 왔다(현재는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CJ 말고 이런 일에 관심이나마 가진 대기업이 그동안 하나라도 있었던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묵묵히 버텨오던 때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결과론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이라면, 안 그래도 졸부인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는 아닌가?

판도가 변하면 CJ도 변한다

흔히 정당(政黨)은 지지자들의 성향을 따라간다고 말한다. 현재의 새누리당이 과거의 한나라당에 비해 상당히 왼쪽으로 이동한 원인도 결국은 유권자들의 성향이다.

이 비유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한 기업의 정체성은 소비자를 흉내 내며 변화하는 것이다. CJ는 그렇게 철학적인 집단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쫓아 행동한 ‘거울’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문제의 해답은 거울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사람이 쥐고 있다.

거울을 백 번 부수고 깨뜨려도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여전히 친노종북’이라면 제2, 제3의 CJ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때마다 그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기다렸다가 충분히 커지고 나서야 어려운 싸움을 벌여야 할까?

문화는 마음의 문제다. 친노종북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한 CJ를 때려봐야 소용이 없다. 문화를 ‘만들’기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은 CJ에게,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관용을 베풀면 안 될까? 그리고 자유와 자본주의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쪽에서 더 매력적인, 더 재미 있는, 더 눈길이 가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내공을 쌓으면 안 될까? CJ가 중년의 품격 있는 예술적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날까지 말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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