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기인가, 법리적 판단인가
눈치 보기인가, 법리적 판단인가
  • 이원우
  • 승인 2013.06.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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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곽노현 특채 교사 복직’을 둘러싼 논쟁을 보며


컵에 물이 1/3 차 있다. 이것은 많은 양일까 적은 양일까. 절반 이하니까 조금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목이 말라 갈급한 사람에게는 이 정도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이 될 수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를 위시한 일부 우파 계열 교육단체가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에게 날선 비판을 한 상황은 결국 이 1/3을 작게 볼 것이냐 크게 볼 것이냐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됐다.

전말은 이렇다. 작년 2월 곽노현 前 교육감은 해임됐거나 사직한 전교조 출신 사립학교 교사 3명(박정훈, 이형빈, 조연희)을 공립고 교사로 특별채용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주호 前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의해 하루 만에 부정됐고 3인과 교육부 장관 사이에 소송이 시작됐다.

결과는 지난 4월에 나왔다. 교육부 장관 패소. 사유는 교사들에게 해당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지 않아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임용 취소가 교육공무원법을 어겼거나 재량을 남용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결정에 교육부는 항소하지 않고 서울시교육청에 안건을 넘겼다. 교사의 임용에 관한 권리는 시·도 교육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은 사안을 검토한 결과를 지난 10일 발표했다. 교사 박정훈과 조연희는 임용 유지, 이형빈은 임용 취소였다. 교육부는 다음날 이 결정을 수용할 방침을 밝혔다.

한국교총은 강하게 반발했다. 안양옥 회장은 “해당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며 “문용린 교육감이 전교조의 눈치를 보고 이들의 임용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 21세기미래교육연합, 학교사랑학부모회 등의 단체 역시 ‘정치교사 임용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재미 있는 것은 우파 계열 교육단체가 “전교조의 눈치를 본다”고 말하기 직전까지는 좌파 계열 교육단체들이 “문 교육감이 보수 진영의 눈치를 본다”고 외쳤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눈치를 봤다며 비판하는 형국이다. 과연 교육청은 누구의 눈치를 본 것일까?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서울시교육청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판단의 근거가 법리(法理)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교사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을지언정 사면‧복권됐다면 교육감으로서는 손 쓸 명분이 없다.

법원마저 교육부의 임용 취소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그나마 ‘곽노현의 측근’임을 제외하면 별다른 복직 사유가 없는 1명의 교사는 임용을 취소하는 판단력을 보여준 것이다.

전교조 문제가 심각하다한들 명확한 근거 없이 단지 전교조라는 이유만으로, 곽노현이 특채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용을 취소한다면 이는 곧 언젠가 역풍을 맞는 상황을 예고할 뿐이다.

교육청이 법리적 관점을 견지하며 판단했다면 그에 대한 비판 역시 법리적 관점에서 제기돼야 한다. 교육감에게 폭넓은 인사권이 보장됨을 상기한다면 이번 사건의 교훈은 교육감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것에 있을 뿐 교사 3인의 복직 여부는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

오히려 지금은 전교조 문제의 초점을 법외노조화에 맞춰야 할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법리적 관점에서 해결돼야 할 시급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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