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3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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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3.06.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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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 연길 → 상해 → 라오스 → 한국


나는 북한 국경지역에서 태어나 소학교, 중학교 마치고 군복무하고 대학교에 갔다.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기아에 시달리게 됐고, 배가 고프니까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난 중국으로 장사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어느 집에 갔다가 성경을 처음 접했다.

그런데 성경책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꿨다. 우선 중국에 도강했다는 죄로 6개월 강제노역을 하게 됐는데, 그때 내 친구가 와서 “중국에 가서 성경을 봤으니 보위부 관리소에 갈 거다”고 말했다.

처자식을 버리고 탈북을 결심하다

그래서 난 탈출을 결심했고, 처자식을 다 버리고 탈북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6월 탈북해 연길에 도착했다. 거기 가니까 아무도 아는 사람 없었는데 한국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은 좀 있었다. 그들에게 난 탈북자인데 도와달라고 하니까 교회에 가보라는 말을 했다.

비록 내가 탈출은 했지만 교회에 대한 인식은 워낙 무섭게 각인돼 있었기에, 교회는 차마 가지 못했다. 몇 달간 길가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팔고 농촌에서 일하면서 살았다.

결국 연변과기대에 노동자로 들어갔는데 몇 달 뒤 거기 부장이 내가 탈북자라는 걸 알아차리고 내게 성경을 권유했다. 이걸 읽으면 희망이 생길거라고도 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나 한국으로 오게 됐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사람을 고생시키면서 신앙을 가지게 하시는 듯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처음엔 브로커 없이 떠났다. 그때가 2003년이었는데 사스가 발생하고 이라크전이 발발했을 때였다. 처음 계획은 외국공관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포기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1개월 정도 체류하다가 돈도 다 떨어져 교회로 갔다. 어느 교회에 찾아가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하니까 ‘곤명에 가면 그분들이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얘기했다.

상해에서 곤명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가서 한국인을 만나는 데 1주일이 걸렸는데 그분을 만나 가정집에서 예배를 보는데 찬송을 처음 불러 봤다.

북한에서 탈출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한국으로 가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다들 이상하게 봤다. 나는 그분들에게 “길만 알려주면 갈 수 있다”고 말했더니 그분들은 내게 지도를 보여주고는 라오스를 통해 태국까지 가라고 중국돈 600위안에 미화 100달러를 줬다.

고마운 사람들

곤명에서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 무려 6일 걸려 갔다. 잡힐까봐 오솔길로만 갔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가보니 중국 화교가 있었다. 환전을 하면서 태국에 간다고 얘기를 하니까 용케도 왔다면서 놀랐다. 그는 메콩강 쪽으로 가면 배가 있어서 쉽게 갈 수 있다는 조언을 했다.

그런데 일이 안 되려니까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리고 국경 인근 식당에서 경비대에 잡혔다. 그런데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하니까 밥을 다 먹을 때까지는 기다려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난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산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때 여권과 돈은 잃어버렸지만 주머니에 지도는 남아 있었다. 그거 보고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 후이싸이까지 10일을 갔다. 그때 기도라는 걸 처음 해봤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체험했고 고생 끝에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박건하 NK지식인연대 국장(2004년 입국)
세이브엔케이 6월 월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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