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우가 서울보다 낫다고?
파사우가 서울보다 낫다고?
  • 이원우
  • 승인 2013.06.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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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의 실체 다룬 제레드 다이아몬드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
제레드 다이아몬드 著, 김영사 刊, 2013

지난 6일 인터넷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진원지는 ‘SNS의 강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 장의 사진을 올리고 다음과 같이 트윗했다.

“이게 무얼까요? 홍수에 잠긴 독일 남부 파사우 시내랍니다. 제 눈에는 홍수도 홍수지만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오네요. 우리 서울도 저렇게 아름다운 도시 만들어내겠죠?”

수백 년만의 대홍수 피해로 2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의 장면을 보며 ‘아름다움’을 말한 그의 트윗에 대해 비난이 빗발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박 시장은 재빨리 사과하고 글을 삭제했지만 이 실언은 박 시장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파사우가 거대도시 서울의 ‘이상향’으로 꼽히는 상황은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명에 대한 오해를 함축한다.

거대한 도시는 삭막하고, 오염됐으며, 각박하다는 인식. 이와 같은 생각은 흔히 ‘지금보다 과거사회가 훨씬 살기 좋았고 아름다웠다’는 환상과도 연결된다. 박 시장이 대도심 한복판에서 벼농사와 양봉을 시작한 것 역시 복고지향의 단면을 표상한다.

‘총, 균, 쇠’로 널리 알려진 문화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는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목의 ‘어제까지’는 산업화 이전이다.

전통사회가 문화적 풍습에서 현대 산업사회보다 다채로울지언정 당시의 인류는 항구적 전쟁상태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낯선 사람을 만나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권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세계 전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뉴기니의 산촌지역 부족들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전통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들은 지리적 경계를 기준으로 서로를 ‘산 사람’, ‘강 사람’ 등으로 지칭하며 살벌한 긴장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협력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며 자신의 마을 이외의 영역에서 생활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전 인류가 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 이 패턴을 바꾼 것은 결국 도시화와 산업화다. 책의 머리말에는 저자가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공항에서 한 경험이 소개돼 있다. 외양과 유전적 구성은 뉴기니 부족들과 같지만 문명의 법과 제도, 개방의 풍요를 경험한 이들은 더 이상 타인을 보며 공포에 질리지 않는 것이다.

책은 전통사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여러 부족들이 전쟁, 노인과 어린이 보호, 종교와 언어, 건강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과거’의 긍정적 이미지 대부분이 낭만적인 환상 속에 부유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당연히 전통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 나름의 이점과 교훈도 있지만, 독자는 그것 역시 도시로 대표되는 문명의 수단을 통해 구현돼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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