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의료 사각지대’ 발생 가능성 염두에 둬야”
“통일 후 ‘의료 사각지대’ 발생 가능성 염두에 둬야”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7.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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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엔케이-대한의사협회 주최 통일 대비 전문가 포럼 개최
 

사단법인 세이브엔케이(이하 SNK)와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통일부와 본지 <미래한국>이 후원한 ‘남북 보건의료직 통합방안’ 포럼이 지난 6월 26일 오후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개최됐다.

이 행사는 SNK가 올해 11월말까지 진행 예정인 ‘2013년 민간 통일운동 활동지원사업’ 프로젝트의 첫 번째 포럼이다.

이 프로젝트는 남북한 출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포럼과 원탁회의로 나뉘어 열리는데 구체적으로는 탈북민 중 북한에서 의사, 교사, 과학기술인, 군인, 경찰, 공직자 등 전문직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대상자와 남한 내 동일 직종을 가진 전문 인력이 한 자리에 모여 공론의 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종윤 세이브엔케이 이사장

이종윤 세이브엔케이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일란성 쌍둥이도 60여년간 헤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우리 남북이 그렇게 된 지 60년이 넘었다.

말은 같을지 몰라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통일에 대비해서 뭐가 같고 뭐가 다른지를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만약 중국이 북한의 손을 놓게 되면 통일의 시기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올 것”이라며 “마치 해방 당시에 독립군들조차 그걸 예상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이질적으로 변한 남북이 통일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미국의사협회(AMA) 행사에 최근 참가했는데, 독일 의사들과 오늘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며 “갑작스럽게 닥쳐온 통일 때 의료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어보니 그들은 이미 예전에 동서독이 의료 시스템을 통일시켜 놓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통일에도 불구하고 의료분야에서는 거의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회장은 “현재 북한의 의료 현실은 매우 열악하기에 통일 이후 교육과 수련의 문제로 인해 큰 진통이 있으리라고 예상된다”며 “통일에 대비한 논의가 그간 여러 번 있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다소 부족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가 더욱 뜻 깊다고 본다”고 밝혔다.

무상의료 표방하는 북한, 현실은?

이혜경 탈북 약사

1부 첫 순서에서는 탈북 약사 출신인 이혜경 박사가 ‘북한의 보건일군 양성정책’에 대해 발제했다. 이 박사는 함흥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에서 약사로 12년간 근무하다가 2002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바 있다. 이어 2008년에 삼육대 약학대학를 졸업했다.

이혜경 박사는 “북한에선 의사-약사 등 의료인을 ‘보건일군’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체제수호의 중책을 담당한다고 가르친다”고 밝혔다.

이어 “원칙적으로는 무상치료를 표방하는데 치료에 필요한 진찰비, 약값, 요양비 등까지 전부 무료”라며 “정확히는 66년에 완전하고도 전반적인 무상치료제 추진했고 70년대 후반기에 가서 협동조합까지 무상치료가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원론적으로만 본다면 북한이 예방의학 분야에서는 남한에 비해 더 잘 구축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며 “남한에서는 직접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아가서 예방접종을 받는데 북한에선 국가에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예방주사를 놓아 주는 시스템”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의학계에서 의료서비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의학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한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명명하고, 의사들의 치료서비스의 범위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이 ‘한의학의 과학화를 시도하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박사는 “북한에서는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을 졸업하면 남한과 달리 따로 자격증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자격증이 나온다”며 “의대나 약대에서도 정치과목의 비중이 24%로 높은 점도 특이한데, 이는 조선노동당의 방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박사는 “원칙적으로는 무상의료를 목표로 가지고 있는 북한이지만, 경제난과 의료기술 부족으로 인해 최근에는 현실적으로 무상의료를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며 “형식적으로는 무상, 사실상은 유상 치료인 게 북한 의료의 현실”이라고 마무리했다.

통일 이후 北 주민들 유상의료 수용할지?

최정훈 탈북 의사

뒤이어 발제에 나선 최정훈 전 청진시 신암구역병원 신경과 의사도 “북한의 예방의학 체계는 시스템만 놓고 보면 매우 좋다”면서 “이게 제대로만 가동된다면 전염병 확률을 낮추고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사는 북한에서 청진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청진시 신암구역병원 신경과 의사를 거쳐 청진철도국 위생방역소 역학의사를 지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괜찮은 의료 시스템을 가진 북한이지만 사회주의의 한계 및 경제난으로 인해 현재 전염병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최근에 함경북도까지 말라리아가 확산됐고 만성보균자들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남한 주민들에 비해 건강에 대한 상식 및 의식이 희박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정훈 의사는 “남북통일 이후 의료분야를 통합할 때 유상의료 시스템을 북한 주민들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라며 “만약 그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면 어떤 계층에서, 또 얼마나 긴 기간 동안 피해가 생기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무상치료제 하에서 질 낮은 의료서비스나 의료과실 등의 문제가 생기면 의사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겠지만, 유상치료제 하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의료제도 및 사회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 통일 27년 후에야 건강상태 균형”

전재기 대한의사협회 남북의료협력위원장(上)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下)

2부는 전재기 대한의사협회 남북의료협력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첫 토론에 나선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단기간 내 남북통일이 될 경우 의료분야에서 유념해야 할 주제들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윤 교수는 “독일 통일 16년 전인 1974년에 서독과 동독 간 의료통합 관련 협정이 있었는데, 통일을 앞두고 주목해야 할 사건이었다”며 “서독이 동독에 인도적 보건의료분야 지원을 하고 의료서비스 인력들을 교육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남북한의 상황은 통일 직전의 독일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의 인구 차이는 두 배 정도이지만 경제수준의 격차는 적게 잡아도 30배”라며 “통일 이후 남한에서 북한 주민들을 도와줘야 할 규모가 독일에서 그랬던 것 보다 훨씬 많을 것이며, 아마도 통일 이후 서독이 동독 지역에 지원한 것에 10배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윤 교수는 서독과 동독 지역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자살률을 비교하며 통일 이후 27년이 지나서야 양 지역의 건강상태가 비슷해졌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그는 “통일 독일의 경험들을 유추해볼 때 우리의 상황은 대단히 어렵기에 치밀하면서도 구체적인 로드맵을 통한 지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외 타 분야와도 공동 대책 필요”

김석주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교수

김석주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교수는 ‘남북한 의료 문화 차이의 시사점’을 주제로 논의했다. 그는 남한과 북한의 의료문화에서 두드러진 차이점들을 소개한 뒤 통일 후 남북한 의사 사회 내부 갈등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남북한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통일 이전에 비해 달라지고 북한 출신 의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갈등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 북한의 의료문화는 무상의료, 정성의학, 지도-협동 환자-의사 관계를 위주로 했고, 경제난 이후 비공식적 의료 영역이 확대되며 증상 위주의 자가 처방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그렇기에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이 심리적 고통을 신체적으로 표현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의료문화의 차이는 통일 후 의료에 대한 불만과 비효율적인 의료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남북한 보건의료 문화의 차이를 파악하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계와 다른 여러 분야의 공동 대책이 필요하다”며 “의료 설비, 물자, 제도, 교육, 인력 등 모든 변수들을 염두에 두고 모두와 연계해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속한 재교육과 시설 복구가 관건”

통일 이후 북한지역 의료안전망 구축 방안에 대해 논의한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5년에서 10년 내의 기간 동안에 남북한이 극단적인 갈등 없이 평화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이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북한 지역의 전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일반적으로 일차보건의료서비스로 알려져 있는 주요 보건문제와 그 예방 및 관리방법에 대한 교육, 식량공급의 촉진과 적절한 영양의 증진, 안전한 식수의 공급과 기본적 위생, 가족계획을 포함한 모자보건사업, 주요 전염병에 대한 예방접종, 지역 토착병의 예방과 관리, 흔히 볼 수 있는 질병과 외상의 적절한 치료, 필수 의약품의 공급, 심신장애자의 사회 의학적 재활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기존 북한의 서비스 전달체계, 관리체계를 최대한 복구하고 보건의료인력 등 의료안전망 관련 전문 인력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재교육을 통해 활용하는 일도 중요하며 일차보건의료 관련 시설과 응급의료시설을 중심으로 우선 복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손종도 부장은 ‘의료지원 경험에 비춰 본 남북한 보건의료직 통합 방안’을 주제로 논의했다. 손 부장은 남북 의료시스템 통합 시 5대 기본원칙으로 △ 접근성 제고 △ 지속가능한 재원 조달 △ 질 높은 의료와 예방 △ 반응성 높은 체계 구축 △ 가치의 제고를 제시했다.

“북한에서 취득한 경력 일부분 인정해야”

구체적인 통합 방안과 관련해 손 부장은 “단기적으로 북쪽에서 취득한 학력과 경력을 일부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며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구동독 지역에서 취득하거나 국가가 인정한 학력이나 경력을 모두 계속 유효하게 인정해준 바 있다”고 언급했다.

손종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손 부장은 “남북한 사회경제체제의 차이에 의한 자격과 경력의 내용과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민족화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남북 주민들과 정책 결정자, 전문단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상호 토론에서 최정훈 의사는 “오늘 대한민국 교수들이 와서 좋은 말씀들을 했는데 다들 북한 의료의 실상을 잘 알고 연구도 많이 한 것 같아 깜짝 놀랐다”며 “북한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으면 주민들을 지원하는 데 쓰지 않고 체제 유지에 치중했는데 이제는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북한 주민들에게 의료지원이 도달한다는 걸 확인하면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영전 교수는 최정훈 의사에게 “오늘 갑자기 평화통일이 되고 거주이전과 직업의 자유가 생긴다고 가정할 때 북측 의사들이 여전히 의료실을 지키려고 할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 이동할지 어느 쪽이라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최 의사는 “북한 의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건 유상치료 시스템이고, 시장주의식 방식을 도입할 경우 아마도 북한 의사들이 이를 가장 환영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만약 정부에서 남북 의사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면 북한 의사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겠지만 통일 이전이나 마찬가지의 대우에 그친다면 다른 직업을 찾는 의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이브엔케이가 주도하는 ‘민간 통일운동 지원사업’의 사업 기간은 오는 11월 30일까지이며 이 기간 동안 축적된 각 분야별 전문가 DB 자료는 1차적으로 원탁회의 참가자료로 활용된 후 남북한 전문가들의 상호 교류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로 활용될 예정이다.

2차 포럼은 과학계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오는 7월 말 개최될 예정이다. 앞서 세이브엔케이는 통일부로부터 지난 5월 6일 이 프로젝트의 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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