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고…“이게 우리 일이야”
변장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고…“이게 우리 일이야”
  • 이원우
  • 승인 2013.07.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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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시자들>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개봉 2주 만에 관객 200만 돌파
 

영화 <감시자들>의 개봉 시점은 미묘하다. 때는 마침 국정원 댓글 사건의 와중인 것이다. 인터넷에선 이미 ‘부정선거’라는 말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선 시를 쓸 수 없다”며 굳이 절필을 선언한 문인마저 등장했다.

혼란스러운 뉴스들을 뒤로 하고 극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국정원의 댓글 못지않게 교묘한(?) 경찰의 활약상을 그린 이 영화와 마주하게 된다.

제목의 ‘감시자들’은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을 의미한다. 이실장(진경 분), 송골매(설경구 분), 다람쥐(준호 분) 외에도 두더지, 타조 등의 별명을 가진 대원들이 ‘SJ홀딩스’라는 가짜 간판을 내걸고 일한다. 죽이 척척 맞는 대원들의 찰떡궁합을 감상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관찰력과 집중력을 가진 여주인공 하윤주(한효주 분)는 ‘꽃돼지’라는 코드네임을 하사받고 감시자들의 일원이 된다.

영화는 신입 대원인 그녀의 성장기를 써내려감과 동시에 강박적인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추구하는 그림자(정우성 분)의 주변을 감시하고 추적한다.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두 시간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의 호흡을 빼앗는다.

구차한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미덕은 이 작품의 명료성을 배가시킨다. 그 흔한 ‘러브 라인’ 하나 없다. ‘그림자’라는 거대한 악의 축에 차근차근 다가갈 뿐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은 용의자 주변에 다각도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택시 기사, 편의점 직원, 교통경찰 등으로 위장해 그의 주변을 맴돈다. 사생활 침해의 아이콘인 CCTV는 그들의 원군(援軍)이며 미행과 변장은 이미 일상생활이다.

‘밀착수사’와 ‘불법사찰’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면서도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경찰)의 편에 서도록 만드는 힘을 잃지 않는다. 한효주와 설경구는 공익광고처럼 ‘지나치게 건전한’ 장면들마저 투명하고 소탈한 매력으로 기분 좋게 녹여낸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정우성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준다.

‘꽃사슴’이 되고 싶어 하는 꽃돼지 하윤주에게 송골매는 말한다. “이게 우리 일이야. 지치면 지는 거고 미치면 이기는 거다.” 개봉 2주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 속 하윤주의 모습은 ‘국정원 여직원’으로 대표되는 현실 속 감시자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세상에는 직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숨어야 하는 게 본분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현실 속 감시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의 존재를 ‘7급 공무원’ 쯤으로 격하시키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관객들이 편안하게 ‘감시자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진짜 익명의 감시자가 돼야만 한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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