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성재기"를 검색했다
[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성재기"를 검색했다
  • 이원우
  • 승인 2013.07.2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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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5일 오후 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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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이 뉴욕 한복판에 탱크를 끌고 나타났다. 새롭게 출시한 ‘버진콜라’의 미국 출시를 알리는 이벤트 때문이었다.

- 브랜슨 회장은 미국의 상징이자 콜라의 상징인 코카콜라 광고판에 대포를 쏘는 퍼포먼스를 통해 “버진콜라가 코카콜라를 제압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비록 그 호언장담은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버진콜라가 출시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진콜라 그 자체보다 더 유명해진 ‘게릴라 마케팅’의 대표 사례다.

- 오늘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공언해 화제가 된 투신 예고는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게릴라 마케팅으로 읽힌다.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성재기, 내일 한강에 투신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배너가 뜬다. 클릭하면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계좌번호 목록이 뜬다. 후원금이 필요하단 얘기다.

- 남성연대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시민단체가 겪고 있는 문제다. 더욱이 정부의 지원을 신청하면 남성연대의 ‘주적’인 여성가족부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에 남성연대는 철저히 독립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표현을 꼭 투신 예고로 했어야만 할까.

- 남성연대 측에서 작성한 ‘투신 예고서’에는 생각해봄직한 말들이 많이 적혀 있다. “남녀평등이 아닌 인간평등으로 가는 사회를 말하고 싶었다”는 말 역시 곱씹어 볼 만하다. 그들이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 또한 모르는 바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설득력은 “이제 저는 한강으로 투신하려 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로 증발되고 마는 것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는 한국의 ‘목숨에 대한 감수성’은 이 정도로 옅어져 버린 것인가? 이젠 자살도 얼마든지 마케팅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시점이 오고 있는 것인가?

- 투신 예고에 비난이 빗발치자 성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투신과 자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며 진화에 나섰다. “왜 다들 투신하면 제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투신해도 전 거뜬히 살 자신 있습니다.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덜 구차하려고 이런 짓을 한다는 정도로만 봐주십시오.”

- 힘없고 인기 없는 시민단체가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하는 건 조금도 구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표가 너무 가볍게 투신을 운운한다면 그건 순식간에 남성연대라는 단체 자체를 구차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극단적인 동정심은 남성연대가 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성연대가 맞서야 할 바로 그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좀 더 유쾌하고 지적으로 고난을 돌파해 나가는 남성연대의 모습을 보고 싶다. 대한민국은 ‘성재기’를 검색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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