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독립 선언’은 언제쯤
영화제목 ‘독립 선언’은 언제쯤
  • 미래한국
  • 승인 2013.07.2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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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說과 口樂


‘비포 미드나잇’, ‘맨오브 스틸’, ‘노킹 온 헤븐스’, ‘아이 오브 더 스톰’. 최근 국내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의 제목이다. 영화 광고에 각각 제목을 붙인 것이니 제목이긴 한데, 그냥 제목이라고 하기에는 ‘거시기’한 느낌이 든다.

국내에서 상영하는 외국영화들의 제목이 원제목을 그대로 옮겨 한글표기로만 바꾼 채 등장하는 현상은 어느덧 일상화한 상태다. 한국영화 시장이 비약적으로 커진 덕에,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 중에서 세계 첫 상영을 시작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더불어 한국영화 시장이 커지고 국내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영화 광고에 대한 인식이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은 측면도 있다.

외국영화 직배(1988년)가 시작되기 전까지 외국영화 수입은 주로 일본을 통해서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의 세계화’ 어쩌고 하는 말은 꿈도 꾸기 힘든 분위기였다.

한국영화는 국내시장을 벗어나지 못했고, 외국영화를 일방적으로 수입하던 형편에 머물렀다. 아시아 시장의 중심은 일본이었다. 중국은 닫혀 있었고, 인도는 자체 시장이 컸지만 교류는 미미했다. 홍콩 영화는 아시아 시장을 주도했지만 시스템이나 문화는 우리와 달랐다.

일본은 특별했다.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 등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세대도 넓었다. 소니 텔레비전이나 녹음기, 니콘 카메라처럼 일본산 제품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문화도 선진국 수준으로 꼽았다.

일본에는 정말로 많은 영화들이 들어왔다. 미국영화는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영화, 남미나 아프리카 영화들까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영화수입사들은 일본의 흥행 결과를 지켜보면서 눈길이 가는 영화를 골라내곤 했다.

‘형제는 용감했다’(All The Brothers Were Valiant, 195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같은 영화들은 일본에서 만든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전략대작전’(Kelly’s Heroes, 1970) ‘공군대전략’(Battle Of Britain, 1969) 같은 영화들은 한자 제목까지 그대로 사용한 경우다. 일본식 표기가 들어간 경우에는 그 부분을 지우고 우리말로 바꿔 넣었고 한자식 제목은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한때 방송국 프로그램 개편 때면 담당자들이 부산으로 가 일본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관행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부산에서는 일본 방송 시청이 가능했던 것을 기회로 새로운 아이디어인 것처럼 베끼는 일을 반복했다.

신문 편집이나 출판 편집, 가요, 법조 등 어느 분야 가릴 것 없이 사정은 비슷했다. 대기업 총수들 중에서도 일본 산업계를 둘러보며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는 일이 흔했다.

그런 시절에 영화가 일본 영화계를 벤치마킹(!)하는 일은 별다른 스트레스나 죄책감 없이 오랫동안 이뤄졌다. 당시 국내에 수입된 외국영화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만든 광고와 디자인을 그대로 인용했다. 한국영화 광고도 패턴이나 스타일은 외국영화 광고 만드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미국영화 직배는 영화 개봉 시기 뿐만 아니라 광고 방식까지 바꾸는 큰 전환점이었다. 일본 스타일에서 미국방식으로의 변화였다. 그래도 ‘원초적 본능’이나 ‘쥬라기공원’ 정도의 수준은 지켰다. 지금 같으면 ‘베이식 인스팅트’나 ‘주라식팍’으로 붙이지 않았을까? 한국영화 수준이 높아진 만큼 영화광고가 독립하는 시절은 언제쯤 되려나.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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