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의 생존법
강용석의 생존법
  • 이원우
  • 승인 2013.07.27 0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썰전 논란’이 불편했던 진짜 이유
 

제목에 ‘강용석’이 들어가는 칼럼을 쓰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강용석 前 의원이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실언’으로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 과정은 포퓰리즘의 거대한 승리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술자리에 있었던 여학생이 성희롱으로 강용석을 고소했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정체불명의 여자아나운서협회가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한다니?

놀랍게도 법원 역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갈 줄 알아야 한다[愼其獨]”고 말했던 퇴계 이황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가 유죄임을 선언하는 전격적인 판결이었다.

내 눈에는 단지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눈치 보기 판결’을 내린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강용석이라면 미칠 만큼 억울할 것 같았다.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했을 때에도 저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용석은 미쳤다’라는 칼럼을 썼다. 이 글이 미래한국과 나의 인연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감정은 더 특별해졌다.

이후 그는 재선에 실패했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방송 진행자로 복귀했다. 한 번도 그의 방송을 본 적은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만큼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평생을 바친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낡은 연장을 집어 들고 다시 세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비로소 너는 어른이 된 것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강용석은 장난처럼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솔직함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선은 커녕 출마도 힘들어 보이는 정치인조차도 내밀한 꿈은 대통령인 게 현실 아닌가? 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정치인(지망생)도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나 싶었다.

게다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논란에서 봤듯 적어도 그는 실수(혹은 패배)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힐 수 있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하고 다니든 아니든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냄새’가 나면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다.

썰전 20회의 불편한 농담

JTBC의 ‘썰전’이라는 방송 역시 자세히 본 적은 없다. 강용석이 이 방송에서 보수진영의 대표 격으로 나온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19회 방송에서 그가 했던 발언(“노무현의 NLL발언을 ‘포기’로 볼 수 없다”, “서상기와 정문헌은 사퇴해야”)이 워낙 큰 파장을 일으켜서 관련된 부분 중심으로만 영상을 봤다.

강용석의 태도에서 모순점이 포착된 것은 19회 방송보다는 뒷수습을 시도한 20회 방송(7월 11일)이었다. 그는 “지난 주(19회) NLL 발언과 관련된 의견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없다고 답하며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텍스트를 해석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좌우 진영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말은 전가의 보도다. 언제 어느 때나 이 말은 박수를 받는다. 누군들 집단의 논리에 매몰돼서 앵무새처럼 똑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용석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보수진영의 대표로서 ‘썰전’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 별안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텍스트를 해석하겠다니? 썰전의 ‘전(戰)’이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진영 논리야말로 강용석을 그 자리에 앉혀준 동력이자 존재의 의미 아닌가?

강용석이 “지난주 발언 이후 팬카페 대문 사진이 내 얼굴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사진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더 놀랍다. 화면은 코믹한 음악과 함께 전사자들의 사진을 클로즈업한다. 킥킥거리는 출연자들.

본인들이 NLL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영정 사진을 희화화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있는 게 지금 ‘썰전’의 수준이다. 이런 방송에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걸 개룡남(개천에서 용 된 남자) 강용석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극복의 아이콘에서 배반의 아이콘으로

‘아나운서 실언’으로 논란이 되던 당시 강용석은 무력한 존재였다. 그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언론과 방송과 아나운서협회가 이야기를 만들면 그는 그 이야기에 지배당하는 존재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이야기를 지배해야 하고 나아가 이야기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이 시기는 강용석에게 더 큰 좌절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끝내 ‘썰전’에서 그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어쨌든 현역 정치인은 아니니 과거의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조차 그의 자유일지 모른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니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면 그 뿐이다.

다만 딱 한 가지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가 보수진영을 넘어서 ‘이야기에 지배당하던 과거의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지금 강용석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다는 그럴 듯한 명분을 대면서 과거 자신을 매도하고 난도질하던 대중이라는 ‘진영’에 투항한 것은 아닌가?

어떤 방송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하든 강용석은 투항이 아닌 극복을 했어야 한다. 자신을 나락에 떨어트린 상대와 어렵지만 정면 승부를 펼쳐 결국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강용석이 언젠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깨 너머로 관찰한 ‘썰전’은 대통령의 반대말과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대중을 우매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그들이 복잡한 경제이론과 정치공학과 법리적 판단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동시에 대중을 영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기가 막히게 ‘냄새’로 정치인을 판별해 내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배신자의 냄새와 바보의 냄새와 일꾼의 냄새를 면밀하게 구분해 회심의 한 표를 던진다. 땀 냄새에서 향수 냄새로 강용석의 체취가 바뀌고 있는 지금은 중요한 판단의 시간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남자는 어떤 냄새를 선택할 것인가?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