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 드러낸 ‘하루키 신드롬’ 과도한 기대는 글쎄…
모습 드러낸 ‘하루키 신드롬’ 과도한 기대는 글쎄…
  • 이원우
  • 승인 2013.07.3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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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읽는 남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著)
무라카미 하루키 著, 양억관 譯, 믿음사 刊, 2013

1년 전 한국인들은 한 권의 책에 열광했습니다. <안철수의 생각>이었죠. 주말을 이용해 기습 출간됐던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에 긴 행렬이 만들어졌는데요.

1년의 시간이 지나 이 행렬이 다시 한 번 재현됐습니다. 바로 이 책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때문이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작가 친필 사인본을 구하기 위한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4월 12일 출간된 이 책은 출간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하며 굉장한 화제가 됐는데요. 이 신드롬은 한국에서도 이어지며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모았습니다. 선인세만 최소 10억 원이라는 추정 기사가 나기도 했고요. 당연히 출간과 동시에 모든 서점의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한 제목입니다. 다자키 쓰쿠루(多崎作)야 주인공 이름이라고 치면 되지만 ‘색채가 없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알고 보니 매우 단순한 뜻이더군요. 이름을 표기한 한자에 색(色)을 의미하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작품 속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설정입니다. 주인공 쓰쿠루에게 특별한 의미가 됐던 네 명의 친구들은 전부 이름에 색채가 있었기 때문이죠.

사춘기 시절, 공동체에서 혼자만 이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미묘한 감정을 유발하게 마련입니다. 혼자만 색채가 없다는 사실 또한 쓰쿠루에게 일종의 소외감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무 살의 여름, 그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맙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일방적으로 쓰쿠루에게 결별을 통보하고 일체의 연락을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절망 속을 헤매던 쓰쿠루는 어느덧 36세가 되고, 애인 ‘사라’의 조언에 힘입어 자신의 어두운 과거 - 즉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골간입니다. 순례(巡禮)라는 단어는 과거의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 ‘순례의 해’를 뜻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친구 네 명이 각각 이름 속에 빨강, 파랑, 하양, 까망의 원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 쓰쿠루가 어른이 되고 난 뒤 최초로 사귄 친구의 이름에는 회색[灰]이 들어가 있다는 것 등의 설정은 이 소설을 ‘이름에 관한 우화’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원색의 세계에서 회색의 세계로 넘어가며 마주하는 과거와의 조우, 그리고 그 극복이 하나의 주제 의식을 형성합니다.

하루키는 애초에 이 소설을 단편으로 생각하고 집필에 돌입했지만 쓰다 보니 장편으로 완성됐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루키의 오랜 팬으로서 읽기에도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이 진하게 남았네요.

휴가철을 맞아 부담 없이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지만, ‘신드롬’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에 과도한 기대감을 갖는 건 금물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였습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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