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로 구현된 로봇 애니메이션의 향수
블록버스터로 구현된 로봇 애니메이션의 향수
  • 미래한국
  • 승인 2013.07.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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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시픽림>
영화 <퍼시픽 림>

할리우드 로봇이 더 커지고 더 세졌다. 지난 7월 11일 개봉한 영화 <퍼시픽림>은 도심 속 고층빌딩 높이의 거대 로봇이 일본 인근 태평양 심해에서 나타난 외계의 대형 괴물과 맞선다. 초대형 사이즈 트랜스포머가 전투용으로 업그레이드 된 고질라와 지구의 운명을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셈이다.

그런데 이 로봇은 트랜스포머와는 많이 다르다. 트랜스포머가 의식이 있는 독립형이었다면 이 영화의 로봇, ‘예거’(독일어로 사냥꾼)는 인간 파일럿 두 명이 그 속에 들어가 조종한다. 마징가Z나 건담, 에반게리온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로봇들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영화에는 덕분에 트랜스포머에는 없던 인간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인간 파일럿들은 ‘드리프트’라고 불리는 뇌신경 인식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된 채 로봇에 접속한다.

이 때 조종 능력을 좌우하는 건 파일럿 간의 소통이고, 로봇과의 연결 강도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다른 할리우드 로봇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 내면의 상처 치유 같은 인간적인 면도 조명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철인28호’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인터뷰를 모르더라도 퍼시픽림에는 ‘원조’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 성 모티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괴물에 맞서 각국이 해안가에 대형 벽을 쌓아올려 맞서려는 시도에서는 최근 화제가 된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벽이 떠오른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이름은 퍼시픽림 로봇의 명칭과 같은 ‘예거’다. 영화에서 괴물을 부르는 이름이 일본어로 괴수를 뜻하는 ‘카이주’인 것도 일본 SF괴수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일종의 표식이다.

한국 관객에 익숙해서인지 이 영화는 재밌다. 그런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티브들을 실사 영화에서 구현해 냈다는 것만으로도 장쾌한 볼거리를 준다. 특히 예거들과 괴수들이 벌이는 격투 장면들은 ‘킬링타임’ 이상의 시원함을 준다.

그리고 감독이 일본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제작사가 아시아 시장을 주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퍼시픽림에서 진하게 보이는 아시아 색채도 반갑다. 영화에서 로봇과 괴수가 전투를 벌이는 무대는 홍콩이고 주인공 롤리의 파트너 마코는 일본인 배우 키쿠치 린코가 맡았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아시아계 출연진과 함께 중국어, 일본어 등의 간판(한글 간판도 스쳐 지나간다)을 만나는 것도 그간 미국 영화에 질린 관객들은 즐길 만하다. 더욱이 전편에 흐르는 동료애나 희생정신은 동양문화에서 흔히 보이는 ‘무인’의 모습이다.

다만 이런 SF로봇영화에서도 최소한의 개연성을 기대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인류가 다른 모든 군사력을 포기한 채 해안가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것에만 의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감독이 애니매이션에 나온 장벽이 마음에 들었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정부 연합이 예산 문제를 들어 예거 부대를 갑자기 포기함으로써 이들을 영화의 표현대로 괴물에 외롭게 맞서는 레지스탕스로 만든 것도 다소 작위적이다. 이제는 할리우드마저도 주인공이 정부 편에 서면 ‘올드’해 보여서인가. 이건 좀 너무 ‘한국적’이이서 어색한 대목이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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