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서양 문명에 날리는 독설의 강펀치
정체된 서양 문명에 날리는 독설의 강펀치
  • 이원우
  • 승인 2013.08.02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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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위대한 퇴보>
니얼 퍼거슨 著, 구세희 譯, 21세기북스 刊, 2013

책의 원제는 ‘The Great Degeneration’이다. ‘The Great Depression’을 ‘위대한 공황’이라고 하지 않듯 이 책의 제목도 정확히 번역하자면 ‘대(大) 퇴보’ 쯤이 되는 게 맞다.

BBC 라디오 ‘리스(Reith) 강좌’에서 ‘법치주의와 그 적들’이란 주제로 방송된 니얼 퍼거슨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간(新刊)은 아니다. 하지만 전작 <시빌라이제이션>에서 그가 장대하게 펼쳐놓은 관점을 그대로 이어간다. ‘시빌라이제이션’이 과거의 성공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현재의 실패에 주목한다.

서양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만든 것은 ‘제도’였다는 것이 니얼 퍼거슨의 일관된 관점이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를 핵심 부품으로 꼽는다. 현재 서양 문명이 경험하고 있는 쇠퇴는 바로 이 제도적 얼개에 결함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결점을 드러낸 민주주의, 현세대의 책임을 미래로 전가시키는 경제 제도, 변화의 주도자 역할을 포기한 변호사들, 기업과 정부 사이에서 무책임한 시민사회 등이 쇠퇴의 주원인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에 ‘오랜 정체 상태’에 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한때 ‘풍요로웠던’ 국가가 성장을 멈춘 것이다. 스미스는 중국이 정체 상태가 된 것은 관료주의를 포함해 결함투성이였던 그들의 ‘법률과 제도’ 탓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무역과 소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관료주의와 정실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것, 이것이 스미스가 중국의 정체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제시한 처방이었다. (…) 이 책의 핵심 가설은 스미스 시대의 중국에 해당되었던 내용이 오늘날 서양의 대부분 국가들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책은 네 가지 블랙박스(정치, 경제, 법, 시민사회)의 쇠퇴를 챕터별로 분석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서 그는 현재 미국 내부에서 득세하고 있는 ‘큰 정부적(的)’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2007년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시초는 바로 지나치게 복잡한 규제에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는 제2장의 시나리오식 서술은 읽을거리다. 책의 마지막 역시 오바마의 연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여전히 세간에서는 ‘긴축 재정’과 ‘경기 부양책’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펼쳐진다. 미국과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 서양 문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렇다. 니얼 퍼거슨은 “채무가 문제 자체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더 심각한 제도적 오류의 증상일 뿐이다. 복잡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퍼거슨은 1989년의 미국을 희구한다. ‘서양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거두고 위대한 재건이 시작되었던 때’다. 그 날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다 같이 힘을 모아 해변을 청소하자”고 이 스타 역사학자는 일갈한다. 한국이 돌아가야 할 ‘그 때’는 언제일까.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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