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모험하는 맬서스의 후예들
이탈리아를 모험하는 맬서스의 후예들
  • 이원우
  • 승인 2013.08.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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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읽는 남자: <인페르노> (댄 브라운 著)
댄 브라운 著, 안종설 譯, 문학수첩 刊, 2013

오늘의 베스트셀러는 미국의 유명 작가 댄 브라운의 책 <인페르노>입니다.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등이 대표작인 그는 2005년 미국 TIME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작품은 읽지 않았더라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셨거나 적어도 제목이라도 들어보신 분들은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를 포착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을 볼 때마다 ‘음모론 전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음모론을 발굴(?)해 줄거리를 구성한 것이 소설가 댄 브라운의 집필 방식 아닌가 싶어서인데요.

‘증거가 없는 게 증거’인 음모론의 기본적 골격을 꾸준히 반복해 왔던 댄 브라운이 이번엔 모든 종말론과 음모론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에 주목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댄 브라운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천재 미술사학자 ‘로버트 랭던’입니다만 작품에서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은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라는 이름의 천재 과학자입니다.

그는 “중세 유럽의 흑사병은 축복이었다”는 주장으로 학계에서 ‘왕따’가 됩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숨어들어 21세기 인류를 위한 자기만의 ‘특단의 조치’를 고민합니다.

단테의 <신곡>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도 한 조브리스트는 ‘인페르노(inferno)’의 구절 속에 음모의 비밀을 숨겨 놓습니다. 로버트 랭던과 이 소설의 여주인공 격인 또 한 명의 천재 시에나 브룩스는 조브리스트의 의중을 파악해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피렌체 곳곳을 활보하며 모험담을 만들어갑니다.

말미에는 굉장히 강력한 반전(反轉)이 들어가 있기도 한데요. 소설 내내 인물들이 다소 경직된 채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소설 내내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의 관광지를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해 준다는 점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됩니다. 올 여름 이탈리아로 떠날 예정인 분, 혹은 이탈리아 여행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좋은 간접 체험이 될 수 있겠네요. 단테의 명작을 한 구절 한 구절 톺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반면 소설의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지적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산업혁명의 위력을 모른 채 사망한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하는데 생산성은 천천히 증가한다”는 비관적 전망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습니다만 그의 예언은 결국 빗나갔습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운명적으로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때때로 한계를 극복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구 폭발이 아니라 낮은 출산율을 염려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댄 브라운은 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주요 인물들이 전부 천재인데도 맬서스식 논리가 내포한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인지도 모르겠네요.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였습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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