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的’이라는 수수께끼
‘일본的’이라는 수수께끼
  • 미래한국
  • 승인 2013.08.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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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명화산책: <源氏物語 : 천년의 수수께끼>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대표적 착각은 일본을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일본을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더 그런데,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려니 한다. 일본문화라는 게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갔고, 좋든 싫든 일제 36년도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차라리 한국과 미국이 더 비슷하지 일본은 정말 다르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일본의 그 독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이다. 11세기 일본의 헤이안(平安 평안) 시대, 천황궁의 궁녀 무라카미 시키부(紫式部)가 작자이며 발표년도는 1008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에도 길이 남는 걸작으로 인정된다.

사실 ‘겐지 모노가타리’ 같은 수준의 작품은 11세기 세계 어디에서도 예를 찾기 힘들다. 흔히 유럽 근대소설의 효시를 17세기의 ‘돈키호테’로 꼽지만 논자에 따라선 ‘겐지 모노가타리’가 더 근대적이며 우수하다고까지 평한다.

치밀한 구성, 격조 높은 표현력에 유려한 필치, 그리고 엄청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자랑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2명 배출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대단한 작품이 다루고 있는 건 그저 연애담이다. 게다가 요즘 표현을 빌자면 완전히 막장 드라마다. 간통 밀통 불륜이 끝없이 이어진다. 등장인물이 400여명에 무려 70년 세월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모두가 또 연애담이다.

중국은 언제나 정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일본은 매우 달랐다. 특히 헤이안 시대 일본 천황가와 구게(公家, 귀족)들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미의 추구에 몰두했다. 덕분에 권력은 결국 무가(武家)로 넘어갔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무사들은 천황가, 구게들이 구축한 고전문화를 경외했다. 무가는, 정치는 자신들이 직접 장악했지만 그 문화는 숭배했으며 그래서 천황가와 구게들은 여전히 권위를 누렸다. 정치권력과 문화적 권위의 분할이다.

일본에선 일반인이 정치를 자신들의 직접적인 몫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약하다. 그저 현대판 사족(士族)인 정치인들을 떠받치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긴다. 세습정치가 일반화돼 있지만 권위는 탈정치 영역에 따로 있다. 대표적인 존재가 천황이다.

일본인은 정치이념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양식에 더 집착한다. 천황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일본적 문화양식을 대표한다. 그 문화양식이 종교까지도 대신한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일본적이라고 여긴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바로 그 일본적 양식이 형성되던 시기의 이야기다.

소개하는 영화는 2011년 개봉작이다. ‘겐지 모노가타리’ 발표 천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 한다. 이전에도 드라마로 애니메이션으로 또 다른 영화로 반복해서 제작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특이하게 주인공 겐지 히카루 이야기와 작자 무라카미 시키부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그와 관련 시키부와 같은 시기 실존했던 ‘음양사’의 주인공 아베노 세이메이도 등장한다. 헤이안 시대의 실력자 후지와라도 시키부의 연인으로 나온다.

이야기 못지않게 놓칠 수 없는 것은 영상이다. 재현된 헤이안 시대 궁정생활의 모습과 복식 등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일본적 형식미와 색채의 미학을 보여주는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의 느낌이다. 영화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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