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시절의 추억
‘서편제’ 시절의 추억
  • 미래한국
  • 승인 2013.08.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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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서편제’는 한국영화 역사에서 전설이다. 처음으로 관객 100만 명 기록을 세웠고, 판소리를 현대문화 속으로 끌고 나왔으며 한국영화도 품격 있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93년 4월 9일부터 시작한 영화 상영은 그해 연말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1000만 관객 영화도 여러 편이고, 몇 백만을 넘긴 경우는 일일이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서편제’의 100만은 세상을 뒤집을 만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극장은 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되며 전국이 동시 개봉을 한다. 서울과 지방의 구분이 없고 개봉관, 재개봉관의 의미도 없다. 전부가 개봉관이고 전국에서 동시 상영을 한다.

최근 영화들 중 개봉 첫 주말 관객이 40만이니 50만이니 하는 것은 전국 집계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전산망에 나타난 입장권 판매 기록을 종합한 숫자다.

그러나 ‘서편제’ 시절은 달랐다. 서울과 지방의 흥행권이 나뉘어 있었고 서울에서도 개봉관과 재개봉관(2번관)으로 구분했다.

대한극장, 스카라, 명보, 국도,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허리우드, 아세아극장 등이 개봉관들이고, 명동의 코리아, 종로5가의 한일극장, 명륜동의 명륜극장, 신설동의 동보극장, 청량리의 오스카 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 남영동의 금성극장, 성남극장, 신촌의 신영극장 등이 서울의 재개봉관에 들었다. 종로의 파고다극장이나 충무로의 극동극장처럼 영화 두 편을 동시에 상영하는 동시상영관(3번관)도 그때는 있었다.

초대형 극장이라던 대한극장의 좌석이 2000석을 넘었을 뿐 대부분의 극장은 1000석 정도였다. 하루 5회 상영을 기준으로 전회, 전석 매진된다 하더라도 한 달 내내 상영해야 15만 명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시절에 ‘서편제’는 단성사 한곳에서만 100만명 관객 기록을 돌파했으니 초강력 토네이도급 태풍이나 다름없었다.

주연을 맡았던 오정해, 김명곤, 김규철 등은 스타가 되었고 감독 임권택, 촬영 정일성, 음악 김수철 등 여러 명이 이름을 드높였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부분은 제작자 이태원도 배우나 감독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

군납, 건설업 등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하면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그는 ‘무릎과 무릎사이’(이장호 감독, 1984)를 시작으로 ‘하류인생’(임권택 감독, 2004)에 이르기까지 16편을 제작했다.

그중에서 ‘아제아제바라아제’(1989) 등 11편을 임권택 감독과 작업했다. 정일성 촬영감독과는 9편. 임권택 정일성 두 사람은 12편을 함께 작업했다. ‘서편제’는 작품도, 흥행도, 성숙한 영화 열정도 그중에서도 백미가 된 것이다.

흔히 영화가 성공하면 주연배우나 감독이 주목받지만 보이지 않는 공로자는 바로 제작자다. 기획하고, 캐스팅과 스태프를 꾸리고, 제작비를 조달하는 일들은 모두 제작자의 영역이다. 이익이 나면 그만큼 더 챙기기도 하지만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것도 제작자다.

임권택감독 영화 중에서는 흥행이 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평균하면 별로 ‘남은 게 없다’는 쪽이다. 그런데도 11편이나 함께 팀을 이뤘다는 것은 손익계산을 넘어서는 의지나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원결의했던 유비나 관우, 장비 같았던 세 사람은 ‘천년학’(2007)을 계기로 갈라선다. 이 영화의 제작에서 이태원은 빠졌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길어올리기’(2011)에는 정일성도 빠졌다.

지금은 세 사람 모두 한자리에서 만나면 불편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세상일을 옳고 그름만으로 가리기는 어렵고,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콩이야 팥이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편제’의 그늘은 무겁고 아쉽다.

조희문 편집위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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