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2PM’ 1년을 돌아보며
‘미래한국 2PM’ 1년을 돌아보며
  • 이원우
  • 승인 2013.08.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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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만큼 쉽게 휘발되는 오후 2시의 기억
 

매일 오후 1시58분이 되면 휴대폰의 알람이 울린다. 곧 오후 2시가 된다는 신호다. 하던 일을 멈추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접속해 숫자가 2:00으로 바뀌길 기다린다.

정각이 되면 1분 안에 실시간 검색순위 1위부터 10위까지의 키워드를 캡처한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이자 인터넷이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시간, 오후 2시에 한국인들이 선택한 10개의 키워드들이다. 이 중 하나를 골라 왜 화제가 됐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나름대로 밝히고 나면 그 날의 ‘미래한국 2PM’ 칼럼이 완성된다. 2012년 8월 17일 시작된 이 코너가 어느새 1년을 맞았다.

오후 2시를 지배하는 자가 여론을 지배한다

첫날의 검색어는 ‘대마도’였다. 작년 8월 10일 이명박 前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14일 일왕(日王) 사과요구 발언 이후 폭발한 반일 감정이 ‘대마도는 한국 땅’ 논리로 번졌던 것이다. 그 이후 태풍 ‘볼라벤’이 찾아왔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사망했으며, 속칭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 폭풍이 불어 닥쳤다.

계절이 가을로 바뀌고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뚜렷해진 경향은 정치 이슈의 증가였다. 최대 변수는 역시 안철수였다. 9월 7일 올라온 ‘안철수 여자’라는 검색어는 안철수 측 금태섭 변호사와 새누리당 대선공보위원이었던 정준길의 통화 때문에 불거진 엉뚱한 사건이었다. 대중들은 복잡한 정치공학보다는 가십에 반응한다.

2주 후 9월 19일,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정치인이 되기를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바로 그 시점부터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시점을 궁금해 했다.

두 캠프의 갈등은 심각해졌다. 11월 23일 안철수 캠프의 ‘박선숙’은 문재인 캠프를 향한 독설을 날려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는 국회의원 안철수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전언이다. 1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의 검색어는 ‘이정희’였다. 전날 밤 치러진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통합진보당 후보 자격으로 출전한 그녀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방송사고 수준의 막말을 퍼부었다. 문재인 후보를 ‘형님’으로 호명해 귀를 의심케 만들기도 했던 그녀에 대해 19.2%의 국민들은 ‘토론을 가장 잘했다’고 평가했다(중앙일보 여론조사).

대선 1주일 전 터졌던 ‘네거티브 연발탄’

12월 1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박근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연발탄’이 터졌다. 문재인 후보는 11월 28일 ‘문재인 의자’ 사건 정도를 제외하면 인터넷 여론에서는 늘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매일 무기를 바꿔가며 이어지는 공세에 새누리당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장악해야 여론을 장악한다는 이 시대에 그들은 대체 얼마나 뒤처져 있는 걸까.

12월 11일의 검색어는 ‘박근혜 아이패드’였다. 반입이 금지된 아이패드로 박 후보가 TV토론에서 커닝을 했다는 의혹을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제기했다. 이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민통당은 사과를 할 시간에 새로운 공격을 준비했다. 12월 12일에 터진 ‘국정원’ 폭탄은 아직까지도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13일엔 나꼼수 김용민이 박근혜 후보와 ‘신천지’가 연계되어 있다는 설을 제기해 다시 한 번 여론을 흔들었다. 14일엔 KBS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사무실을 급습한 뉴스를 방영하면서 ‘십알단(십자군 알바단)’이 검색창에 올라왔다.

KBS가 ‘십알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검색어가 통일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꼼수 주진우 기자가 트위터에 “오늘의 검색어는 ‘십알단’입니다”라고 지시(?)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17일에는 도올 김용옥이 혁세격문(革世檄文)을 발표해 ‘투표를 꼭 하라’는 레토릭 속에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찍으라는 의도를 숨겨 전달했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투표율은 꽤 높았고, 그렇게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검색어 추이만 보면 역전승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기억의 저편으로 잊힌 사건들

대선이 끝난 이후 검색창이 정치색으로 물드는 경우는 줄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의혹과 루머의 폭탄이다. 오후 2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 뒤 ‘나쁜 놈’에게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기도 하다.

2013년 1월 25일 ‘서초구청장’이 검색창에 등장한 계기는 허준혁 前 서울시의원의 칼럼(‘구청장님 주차가 늦었다고 사람을 얼려죽이다니…’)이었다. 이 한 편의 글에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 서초구청의 홈페이지는 가볍게 다운됐고 DAUM 아고라에서는 ‘서초구청장 구속 서명운동’까지 펼쳐졌다.

 

그날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칼럼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결국 6월께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지만 그때 이미 한국인들은 ‘갑을 문제’에 꽂혀 있었다.

오후 2시에는 이런 식의 루머폭탄이 수도 없이 터진다. 1월 9일 ‘다케시마 후원기업’, 2월 19일 ‘조웅 목사’, 7월 29일 ‘대웅홀딩스’ 등은 전부 합리적인 근거 없이 감정적인 판단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단어들이다. 뜨거운 만큼 감정은 쉽게 휘발돼 버린다. 2주 정도만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정도다.

이런 모든 장면들이 그 자체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라면 계속 추적해 볼 생각이다. 올가을부터는 더 많은 분들께 오후 2시의 풍경을 알리기 위한 새로운 포맷도 구상 중이다. 뜨거운 문제엔 차갑게, 차가운 문제엔 색다르게 접근할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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