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국정원을 태우지 말자
촛불로 국정원을 태우지 말자
  • 미래한국
  • 승인 2013.09.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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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각의 세상보기
 

007영화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모험심 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서 기억된다. 적과의 숨 막히는 첩보전과 실전에서 초인적으로 활동하며 죽음의 위기 앞에 놓여 있는 숨막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스릴과 애정행각을 짜릿하게 벌인다.

결국 살아남아 황혼을 등에 지고 홀로 멋있게 걸어가는 주인공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정말로 아찔한 카타르시스적 짜릿함과 함께 마지막에는 홀로일 수밖에 없는 인생을 보여준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당국이 미성년자 극장출입을 단속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007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친구들과 몰래 극장에 갔다가 단속반이 떴다는 신호가 오면 혼비백산 튀었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더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는 정보전이나 전쟁 관련 만화나 영화는 인기 짱이었다.

정보기관에 대한 소싯적 로망

나의 대학 3학년 시절이었던 1961년 5·16군사혁명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국가정보기관이 창설됐다. 그 해 나는 학군단(ROTC) 제1기 후보생으로 지원해 대학생 시절을 일반 학업과 군사교육을 동시에 받기 시작했었다.

1963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육군소위로 임관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중앙정보기관에 취직하고 싶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중앙정보부는 1981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됐다가 1999년 1월 21일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해 국가정보기관으로 새롭게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나이들은 젊은 시절 007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정보(첩보)기관원으로 활동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좋지 않은 체력 때문에 첩보영화 속의 주인공 같이 과감하고도 몸을 던지는 행동 역할 보다는 배후에서 현실상황 감각과 판단으로 각종 정보를 분석하며 두뇌전쟁의 지도를 그리는 업무에 종사하는 일을 맡아 하는 것도 보람 있을 것으로 생각한 바 있다.

그러나 국가일이나 개인의 길에 대한 생각은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듯이 내 생각과는 달리 나는 정보원이 되지 못하고 평생 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따라서 평생 정보기관과는 전혀 근접함이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나의 지난 삶에 잊지 못할 개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는 대학 시절 박정희 장군의 군사혁명을 올 것이 왔다며 지지했었는데 그 후 1972년 미국 유학을 가서 한국학생들의 모임에서 당시 反박정희정서에 반대하며 나의 개인 소신을 표명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한인 유학생들 사회에서 나는 중앙정보부의 앞잡이라는 오해를 받아 얼마 동안 상당히 따돌림 비슷한 분위기에서 지내야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를 바로 이해하게 된 주위 유학생들의 생각들이 고쳐졌고 같이 모여 성경공부도 하며 유학 시절의 힘든 생활에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된 것은 젊은 날의 좋은 추억이다.

사실 나는 국가정보기관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국가존립의 보장과 국익증진을 위해 헌신하는 중요하면서도 좋은 국가기관으로 이해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정보당국의 권력이 막강해져 정치, 사회 모든 영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정치사는 권력의 불의와 탄압으로 왜곡된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 불의와 정치 탄압에 정보기관이 이용돼 왔던 경우가 많았다.

국정원 독립성 필요

사실 국민의 생명과 안보, 안전, 국가산업의 보호와 국제범죄로부터 국민보호를 책임지는 국가정보원은 정권이나 특정정당과는 독립적인 조직기관으로서 국가안전위원회와 같은 국민을 대표하는 하나의 범국민적 조직기구로 운영돼야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정부부처의 하나로 정권에 종속돼 있는 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독자적 존속력이 없는 한 청렴성이나 자주성을 지키지 못한다. 입법, 행정, 사법 및 정보의 4부체제로 국가권력을 분산하고 상호견제와 감시 하에 국익을 위해 협력하는 체제로 국가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위와 같은 국가조직 개편의 문제는 여론 수집을 통해 국회가 해야 할 장기적 과제라고 치자.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일들을 보면 불행하게도 지난해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야당인 민주당과 동조세력인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등 284개 좌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8월 17일 서울을 포함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촛불이라는 이름의 국정원 무력화 시도

야당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통해 밝히고 사과할 것과 책임질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면 국정원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면 된다.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정쟁만 일삼는 야당이나 국론분열세력들을 국민 앞에 노출시켜 정치활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좌파세력들은 국정원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려는 데 저항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답답하고 역겹게 여긴다. 오늘날 촛불시위 역시 옹졸한 정치 쇼로 밖에 보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이 극복하고 나가야 할 더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들이 앞에 첩첩이 쌓여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사시사철 사소한 시비로 촛불시위나 하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꼴은 한심스럽다.

귀중한 예산과 시간들을 낭비하며 시시콜콜 대통령의 국정 발목을 잡고 늘어지려는 꼴은 이제 보기에 민망하고 세금 내는 국민들은 울화가 터진다.

지금 이때는 여야 정치인들과 애국 시민들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매일 거리시위나 하면서 미래도 없는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주장만 부르짖기보다 나라와 국민의 실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할 때이다. 깨어 있는 국민들이 일어나 고장난 한국 민주주의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외쳐야 할 때이다.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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