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되풀이하려는가?
실수를 되풀이하려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3.09.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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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소위 ‘국정원 댓글사건’은 애초부터 야당의 무리수였다. 새삼 다시 드러나고 있듯이 사건의 본질은 매관매직을 미끼로 한, 국정원에 대한 민주당 발 선거공작이었다. 그런 사건이 이렇게 지루한 공방이 된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 둘째는 노무현 정권에 의한 NLL 사초 파기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물타기 책략이었다.

우선 검찰, 정치성향이 매우 의심스러운 검사에게 사건을 담당케 하고 결론을 예단해 증거를 그에 맞춰 편집했다. 피해자인 국정원 여직원을 야당의 억지 주장에 따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어버렸다. 원세훈 前 국정원장과 김용판 前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혐의도 매우 어처구니없다. 공소유지가 가능할지가 의심스럽다.

국정원 댓글 사건 시비의 정치적 배경

검찰이 왜 이런 희한한 일을 애써 벌이게 된 것인지는 따로 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나름 자신의 공명함을 과시하고 전임 이명박 정부와는 선긋기를 한다는 정무적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매우 아마추어적인 그런 발상에 ‘복잡한 배경의 불순한 의도’가 끼어들고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크게 볼 때 정부여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두 번째, 애초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미행 감금 자체가 당시 이슈가 된 NLL 문제를 덮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박영선 의원 덕분에 새삼 NLL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태는 확대일로가 돼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팔아먹으려 했고 그것이 기록된 사초마저 폐기하려 했다는 게 부인하기 힘든 사실로 확인돼가고 있었다. 마침내 검찰 수사로까지 넘어가 외통수에 걸린 것과 다름없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물고 늘어진 것은 그 교착에서 탈출하려는 생떼에 가까운 몸부림이었다.

촛불시위가 얼마나 성공적이냐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야당으로선 ‘NLL 관련 문제’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라면 촛불시위와 청문회 소동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광주의 딸’ 권은희에게 시선과 시비가 쏠리면서 민주당은 어쨌든 결정적 궁지에선 일단 빠져나온 모습인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야당의 생떼를 결정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결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해괴한 올가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야당은 국회로 복귀하라”는 소리만 애처롭게 거듭하고 있다.

파이팅 없는 웰빙족의 한계를 죽었다 깨나도 못 벗어날 새누리당의 늘 되풀이되는 한계다. 그런데 현 상황에는 이런 측면과는 별도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국정원이라는 정보기관에 대한 일반의 인식 문제다.

정보기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기능 약화

정보기관에 대한 각국별 인식 조사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에선 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적은 거의 없다. 독재정권의 하수인, 음습함과 공포, 적어도 ‘민주파’들은 늘 그렇게 받아들였다. 분명한 거명도 꺼리며 “남산” “이문동” 으로 빗대어 부르곤 했다. 대중들이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60%를 넘는 고공 양상이 지속되고 있으면서도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선 ‘뭔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 또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부의 ‘골수성향’과 ‘선동’ 탓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먹힐 대중적 선입견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좌파들은 이를 박정희 탓이라 주장한다. 5·16으로 권력을 잡자마자 중앙정보부부터 창설해 집권 18년 내내 정보통치로 권력을 유지한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뒤를 이은 신군부가 보안사라는 군 정보기관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고 국가안전기획부를 창설해 정보통치를 이어가 그 부정적 유산이 계속 연장됐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민주화로 비로소 바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게 공식적인 ‘민주적’ 견해다. 그런데 그 정상화는 간단히 말하자면 정보기관의 기존 권한을 하나하나 박탈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민주화요 개혁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대부분 그렇게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이미 이렇게 지속적으로 약화 과정을 겪으며 현재에 이른 국정원을 민주당 등은 이제는 아예 폐지하라고 떠들고 있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10년 동안은 뭘 하고 이제와 폐지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국정원이 폐지될 수는 없다. 국가적 차원의 정보기관의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사권을 폐지하라 국내파트를 없애라는 등의 요구는 집요하다. 국민들 사이엔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기류가 적지 않다.

정보기관 자신의 실수들도 이미지 실추의 원인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흠집 없이 순결하고 완벽한 제도나 기구는 상상에나 그려볼 수 있는 것이지 현실에 존재하는 법은 없다. 국가 자체부터가 그렇다. 따라서 정보기관을 사악한 어떤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물정 모르는 순진한 바보 아니면 위선자 둘 중 하나다.

편견 없는 긍정적 인식이 필요하다.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 국민 스스로를 위해서다. 칼은 법도에 맞게 바르게 쓰면 되는 것이다. 위험하다고 갖다버리면 칼을 든 또 다른 자에게 당하게 된다. 군이나 경찰이 그렇듯 정보기관도 마찬가지다.

대한관찰부 설립 구상의 좌초

한국 정보기관의 역사가 5·16 이후 중앙정보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사(前史)가 있었다.

건국 당시부터 국가적 정보기관 창설이 논의되고 시도됐다. 국가적 차원의 정보기관의 필요성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 점을 당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건국 전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정보기구라 할 수 있는 대한관찰부를 창립했다.

대한관찰부는 미군정 당시의 미 육군 방첩대 CIC의 기능과 역할을 모두 넘겨받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9년 1월 대한관찰부 요원들이 대한청년단원 37명을 대통령 암살음모자들로 간주해 수사를 벌이다 헌병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비밀리에 추진해오던 대한관찰부 설치작업과 존립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해체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1월 25일 국회에 대통령실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대한관찰부 예산을 포함시켰으나 국회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해체수순을 밟게 됐다. 그러나 대한관찰부의 좌초는 해프닝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정치적인 문제였다. (한국의 정보조직, 정규진)

반대는 상반된 정치적 성향 모두에서 나오고 있었다. 한민당 등의 우파는 이승만의 권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좌파는 신생 대한민국이 빠르게 안정화되고 힘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북한은 공산정권의 공식적인 출범만 한국보다 늦었을 뿐 이미 정부체계 수립을 완료하고 대남공작조직까지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었다.

남로당 자체가 지하공작조직망이었으며 공산세력은 이를 바탕으로 남한 도처에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국회는 물론이요 정부와 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침투해 있었다. 제주 4·3폭동, 여순반란사건, 국회프락치 사건은 바로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불거진 사건들이었다.

反이승만에 몰두했던 한민당의 실수

따라서 이에 대한 대항체제 구축은 필수였다. 그러나 국회프락치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당시는 국회에도 좌익세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도 이승만의 정보기관 설립 구상을 사적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매도하는 시각이 팽배하듯 그때도 정적 감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국회 동의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승만에 대한 한민당의 견제는 당리당략의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자유민주적 과정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 견제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론 신생 대한민국의 안정을 방해하려는 좌익의 의도에 활용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국가적 차원의 정보기관이 무산되자 그 공백은 일단 육군 정보국이 메웠다. 여순반란 사건 연루로 군복을 벗은 박정희는 6·25 발발 전 민간인 신분으로 정보국 북한상황실장으로 근무했다.

박정희는 당시 6개월 전 북한의 남침을 예상하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전쟁에 미연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뼈저린 회고를 한 바 있다. 국가정보기관 무산의 대가였다.

박정희가 5·16 후 곧바로 중앙정보부 창설을 지시한 건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편 제3공화국 중심세력은 대부분 육군 정보국 출신이었다. 정보 분야는 곧 엘리트의 산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반복인가? 대한관찰부가 진통 끝에 무산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선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세도 그렇고 이슈도 그렇다. 민주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핑계로 통진당과 연합,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거슬러 오르자면 보수정당인 한민당이 뿌리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더 이상 보수의 흔적이 없다. 정치적 영혼이 바뀌어 버렸다. 민주당은 이제 명백히 좌파정당, 그것도 종북적 성향에 대해서도 전혀 제동을 걸지 않는 그런 좌파정당이다. 그 정당이 노골적인 종북세력 통진당 등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보수 야당이 아예 소멸한 상태라는 점에선 현재가 60여 년 전 당시보다 훨씬 가파른 상황이다. 게다가 그때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사회 전역에 걸쳐 종북좌익 세력이 넓고 깊게 포진해 있다. 국회에도 내논 종북들이 배지를 달고 활개치고 심지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국정원 직원 심문까지 하는 꼴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의 반복, 되풀이되는 실수

이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강력한 대처는 커녕 국민들에게 사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데도 실패하고 있다. 심지어 엉뚱하게도 한때는 국정원 국내파트 폐지를 운운하기도 했다.

핵만이 아니다. 종북세력 또한 북한의 전략무기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누적된 실책으로 종북세력을 진즉에 제압척결하는 데 실패한 채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북한은 지금 “애국세력 요청 시 전시선포”까지 운운하고 나섰다. 국정원 국내파트를 없애라는 것은 그 종북을 활개치게 방치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대한민국을 종북에 넘겨주고 북한에 갖다 바치라는 것인가?

현재의 국정원은 더 보강하고 강화시키면 시켰지 빼고 약화시켜야 할 곳은 결코 없다. 바보짓을 되풀이하면 대가가 참혹하리만큼 클 수도 있다. 60여 년 전, 6·25가 있었다. 또 당하고 싶은가?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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