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왕자’가 답해야 할 질문들
‘어른 왕자’가 답해야 할 질문들
  • 이원우
  • 승인 2013.09.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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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펴 들며
 

안철수가 정치할 의사를 밝힌 기점은 2012년 7월 ‘안철수의 생각’ 출간이었다. 주말에 기습적으로 나온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에는 인파가 몰렸다. 그러더니 이후엔 구매 행렬만큼이나 긴 ‘반품 행렬’이 이어졌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책을 팔아봐야 지금은 1000원 밖에 못 받는다. 중고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안철수의 생각’은 2012년의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기이한 한 장면의 사료로서 충분한 보존 가치가 있다. 이 책은 B612 소행성에서 장미 한 송이를 키우며 인생에 대해 논변하던 어린 왕자 안철수의 마지막 동화(童話)인 것이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

이석기 사태가 터지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를 떠올렸다. 정계에 투신하기 전 안철수가 그의 부친에게 했다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

지난 5일 인천 YMCA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철수는 처음으로 이 멘트에 대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간첩의 ‘위치’가 궁금했던 거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처럼 대화의 소통의 자리가 마련된 것 같아 다시 한 번 그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았던 책 ‘안철수의 생각’을 펴본다. 이 정도면 거리에 떠도는 소문보다야 훨씬 정확한 출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약 270페이지의 분량에서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9페이지에 불과(3.3%)하지만 하나하나가 워낙 주옥같아 지금 읽어도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이석기 사태가 온 나라를 패닉 상태로 만들어 버린 지금, 안철수 의원은 부디 답해주시길 바란다. 이 책에서 한 말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먼저 91페이지. 안철수는 전쟁과 정치를 구분한다.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치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을 믿으면서 싸우는 것,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면서 대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얘깁니다.”

“평화가 없다면 존립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담자 제정임 교수조차 너무 순진한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정치가 빨리 변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적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를 두고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국회의원 이석기를 위시한 통합진보당은 믿을 수 있는가? 그들과 ‘타협’할 수 있겠는가?

안철수는 이 책에서 세 단어를 강조한다. 복지, 정의, 평화다. 안철수 가라사대 그 중에 제일은 평화다. 평화가 없다면 모든 것이 존립할 수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p.89). 그러면서 남북은 평화적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을 평화의 파트너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 말은 이석기 사태 직후 안철수가 내놓은 논평과 상충된다. 그는 지난 1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시민 대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의 양심적 민주진보세력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친북세력과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질문: 북한이 평화적 관계의 파트너라더니 친북세력과는 왜 선을 긋나?

이 토론회에서 안철수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논평했다. “여야 정파를 떠나, 통합진보당 사태를 민주당과 연결시키려는 어떤 정치적 음모나 논리적 비약에도 반대한다”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어린 왕자의 입에서 ‘음모’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격세지감이지만, 안철수는 남 걱정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행보가 이번 사태에 나비 효과를 일으킨 것부터 해명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은 5% 정도였다. 이 숫자는 안철수의 양보 이후 50% 이상으로 치솟아 결국 박원순 후보는 53.4%의 득표율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민주당에 입당한 박원순 시장은 2012년 총선 전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에 대해 “큰형인 민주당이 더 큰 양보를 해야 국민들이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오늘날의 사달에 일조했다. 나는 박 시장이 통합진보당의 광기를 결코 모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질문: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온(p.50) 안철수는 자신이 명예롭게 양보해서 당선된 박 시장의 저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북한 같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안철수를 ‘100미터 미남’에 비유한다. 가까이에서 보니 별 것 없더라는 실망감의 표출이다. 대중의 마음이란 그토록 급변하는 것일까. 어쩌면 안철수가 대중을 낚은 것이 아니라 대중이 안철수를 낚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격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안철수가 만들어온 ‘사실’의 궤적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의 앞일만 생각하고 내뱉은 발언들이 불과 1년 만에 기억의 파도를 거슬러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를 비판하기만 하면 지지율이 상승하던 논평 정치는 이미 끝났다.

이젠 당신도 기득권 정치인이 되었다. 응답하라 안철수.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에 있는지를. 요즘 세상에 3대 세습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는지를. 그렇지 않으면 ‘간철수’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간첩수’로 진화시켜 버릴 테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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