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손숙 주연의 가족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신구, 손숙 주연의 가족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 이원우
  • 승인 2013.10.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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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야아.”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보고 나면 한 마디의 목소리가 관객의 귓가를 감돈다. 일흔 여덟 간암 판정을 받고 생의 마지막 국면에 진입한 아버지(신구)가 어머니 홍매(손숙)를 부르는 소리다. 기침소리에 묻혀 들릴 듯 말듯 하면서도 집요하게 끊어지지 않고 처를 찾는 그 목소리. “홍매야아.”

노년 세대의 많은 부부들이 그랬듯 두 사람의 날들은 결코 아름답기만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병마에 생명력을 빼앗겨 일상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는 와중에도 옆집 정씨(이호성)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결코 감내하기 쉽지 않았을 젊은 시절 그의 기세를 짐작케 한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17세에 월남한 이래 전국 팔도의 모든 사투리를 다 섭렵한 아버지의 말투 속엔 가족을 부양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친 한 남자의 애수가 서려 있다.

이제 무뎌진 그 결기는 어머니 홍매에 대한 애달픈 미안함과 집 앞뜰에 심어놓은 홍매나무를 바라보는 아련함으로 바뀌어 있다. 아버지의 “홍매야아”는 기억에서 지워진 어느 제국의 무용담처럼 작아서 더욱 구슬프다.

작품을 이끌어 가는 것은 삼류 연극배우를 하고 있는 둘째 아들(정승길)이다. 대기업에 취직해 해외 출장을 다니느라 바쁜 형이 이 연극에 출연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그의 말투는 냉소적이고 비틀어져 있다.

아버지가 형을 더 사랑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둘째 아들은 계속 아버지의 주변을 지킨다. 어머니 홍매가 그의 변을 받아낸다면 둘째 아들은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스러져가는 기억을 담아낸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서 마당 한 바퀴를 돌 때 그것은 두 부자의 인생이 하나의 접점을 형성하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새기는 순간이 된다.

극중의 아들은 이 연극의 작가 김광탁의 현신이기도 하다. 그의 자전적 스토리로 구성된 극본은 제6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했다.

사실주의를 지향했던 차범석의 정신을 계승한 듯 이 작품은 일방적인 신파로 관객을 몰아세우지는 않는다. 가라앉은 공기를 흔들어놓는 며느리(서은경)의 주책바가지 연기는 관객들에게 눈물을 닦을 기회를 준다. 사랑하는 만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 또한 이 작품은 숨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연기하는 원로배우 신구의 연기는 관객의 호흡을 빼앗는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웃음을 선사한 사람과 같은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의 부름에 곧바로 응답하며 합류한 여배우 손숙 역시 “신구 선생님에 대해서는 100%의 신뢰가 있었다”고 얘기하며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머니를 형상화 했다. 이 연극은 고마움과 미안함의 가운데 어디쯤에서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는 우리네 가족의 내밀한 고백이다. 서울 서초동 흰물결 화이트홀에서 10월 6일까지.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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