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 먼저 잡은 탈북민의 손
여고생이 먼저 잡은 탈북민의 손
  • 미래한국
  • 승인 2013.10.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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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외고 동아리 ‘투포원’ 다큐 만들고 공부방 열어 탈북민 돕기 나서
 

지난해 12월 북·중 국경 인근의 중국 연길시. 영하 15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에 우리나라 여고생 세 명이 또래의 탈북 소녀 한 명을 만났다.

옥별이라는 이름의 이 탈북 소녀는 북한 량강도 혜산 출신으로 앞서 9월에 탈북했지만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갖은 고초를 겪다 가까스로 구출됐다. 연길시에 할머니와 함께 피신해 있던 옥별 양은 국내 북한인권단체 세이브엔케이·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옥별 양의 기막힌 사연을 눈앞에서 목격한 여고생 세 명은 그녀의 목소리 하나하나와 표정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대원외고에 다니는 이들은 ‘투포원’이라는 탈북민 돕기 동아리 소속의 학생들이다.

탈북민의 절박한 현실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고사리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오예선(2학년), 차유진(3학년), 김희영(3학년) 양.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투포원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임순영(2학년) 양 등 네 명을 지난 9월 대원외고에서 만났다.

올해로 대원외고에서 7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투포원은 매주 토요일 탈북민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고 있다. 투포원의 동아리 회원은 모두 60명 정도. 2학년인 오예선 양이 회장이다.

“탈북 어린이, 직접 만나 친구 됐어요”

오예선 양은 “투포원은 둘이 하나가 되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북한인권법이나 통일 관련 세미나에 참가하는가 하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거나 직접 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는 대학로에서 춤과 노래 등의 길거리 공연을 해서 60만원 정도의 성금을 모아 탈북민에게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국회의사당에서 북한인권법을 주제로 모의국회를 열었다. 차유진 양은 “다른 나라에는 있는 북한인권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 아직 없는 상황에 대해 우리 청소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투포원 활동이 다른 탈북민 돕기 활동과 다른 것은 이들이 직접 손으로, 발로 뛴다는 점이다. 임순영 양은 “저희는 단순히 성금 모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부딪치면서 우리가 가진 것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희영, 임순영, 차유진, 오예선 양

공부하느라 한창 바쁠 때인데도 탈북민 돕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붇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들은 대학입시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질까봐 두렵지 않은 걸까?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6·25전쟁 때 북한에서 월남하셨어요. 큰 고모는 아직 북한에 계시고요. 북한 가족 얘기를 많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북한과 탈북민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오예선)

“투포원의 영어 공부방에 가서 막상 탈북민 어린이들을 대하고 보니 기존에 갖고 있던 북한인권에 대한 편견이 깨졌어요. 정말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이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겪었던 것을 알게 됐죠.”(김희영)

직접 만나본 탈북민 학생들은 나와 똑 같은 친구였고 후배였다. 노는 것도 먹는 것도 다를 바 없었다.

“북한 친구들을 만나고 처음에는 충격이 컸어요. 저희랑은 옷차림이나 말투가 너무 확연히 다르니까요. 그런데 시간을 계속 보내면 비슷한 게 눈에 띄어요. 얘도 나랑 똑 같은 청소년이구나. 노래방 좋아하고 놀이공원, 맛있는 것 좋아하는 또래라고 느꼈어요. 닭꼬치랑 고기에 미치는 것도 똑 같아요.”(차유진)

“전 한문을 많이 접하는 일본어과라서 주로 한자를 가르쳐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자존심이 세서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을 잘 풀어나가야 해요.”(임순영)

다른 친구들은 놀기 바쁜 토요일마다 탈북민을 돕기에 나서고 있는 여고생들. 학업과 병행하는 것도 그렇고, 탈북민과 씨름한다는 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쉬울 리가 없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차유진 양은 “어른들 편견이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어려운 애들 많은 데 굳이 왜 걔네를 도와주냐’고 할 때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탈북민에 대한 어른들 편견이 가장 힘들어

이들의 눈에는 통일에 관심 없는 어른들도 이상하기만 하다. 임순영 양은 “한번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어선생님이 실리적으로 따질 때 남한 입장에서 굳이 통일할 이유가 없다고 하셔서 놀랐다”면서 “투포원 활동을 하면서 어른들의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탈북민 돕기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차유진 양은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의 통일 준비가 안 됐다는 표시인 것 같다”며 “주변 친구들과 어른들의 인식을 바꿔 탈북민 친구들이 적응하는 데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게 어찌 보면 통일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옥별이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의를 보이는 것도 어른들에게 탈북민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옥별이를 사정을 알리고 싶어요. 아직 어린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면 어른들도 우리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탈북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겠죠.”(김희영)

“옥별이를 만나고 많이 놀랐어요. 우리는 사소한 것으로 불평도 많이 하는데 옥별이는 생존이 중요했어요. 특히 한국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처음 하고 싶은 일이 돈을 벌어서 북한의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것이었어요.”(오예선)

이 다큐멘터리는 옥별 양이 탈북한 후에 어떤 루트를 통해 얼마나 모진 고생과 위험을 뚫고 한국에 왔는지를 그리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제작을 시작해서 올해 10월 마칠 예정.

작지만 어리지 않은 이 여학생들은 앞으로의 꿈도 다부지다. 이들은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해서 “탈북민과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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