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더 큰 악으로 이길 수 있을까
악은 더 큰 악으로 이길 수 있을까
  • 이원우
  • 승인 2013.10.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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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것은 괴물에 대한 영화, 악(惡)에 대한 영화다.

석태(김윤석)를 비롯한 ‘낮도깨비’ 조직원 5명은 잔혹한 수법과 철저한 전문성으로 무장한 범죄 집단이다. 그런 그들이 한 아이를 유괴한다. 통상 유괴범들은 48시간 안에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아이에게 화이(여진구)라는 이름을 붙여 아들로 삼는다.

영화니까 가능한 얘기지만 화이는 그야말로 영화처럼 5명의 ‘아빠들’이 전수한 살인의 기술들을 익혀 나간다.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교복을 입고 다니고, 술에 취한 아빠 대신 트럭을 운전하며 경찰차를 따돌리는 소년. 5명의 아버지들이 악마답지 않은 애정을 가지고 화이를 양육한다는 부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영화적인’ 설정이다.

화이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괴물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 위협하는 망상을 보는 것이다. 영화는 세심한 CG로 괴물의 모습을 구현한다. 이 괴물을 낮도깨비 무리들이 끌고 다니는 악(惡)의 잔상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 석태는 선언한다. “네가 괴물이 되면 그 괴물이 보이지 않을 거야.” 화이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악의 에너지는 결국 5명의 아빠들을 향한 애증과 복수로 투사된다.

이 영화는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데뷔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동안 그는 배우 문소리와 결혼하거나 ‘타짜2’에 도전했다가 불발됐다는 뉴스 등으로 회자될 뿐 긴 시간 동안 새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10년 만에 내놓은 이 작품에선 오프닝 시퀀스부터 엔딩 타이틀까지 단 한 컷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한 번 밖에 출연하지 않는 여직원 역할에마저도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했을 정도다. ‘캐릭터의 과잉’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편이 온당하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19금 영화’에 출연한 1997년생 배우 여진구의 연기력도 발군이다.

한편 이 영화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묘하게 종교적인 집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주요 인물들이 활약하는 악의 현장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것은 십자가 문양이다. 속죄와 구원을 말하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비웃는 반(反)종교적 영화로 읽을 수도 있지만, 종교에 대한 기대와 미련이 극복되지 않은 채 인물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영화 후반에서 석태는 한때 자신의 악마성을 교정하기 위해 종교에 기대를 걸었음을 술회한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음을 깨닫고 선(善) 대신 최악(最惡)을 선택했다. 이것은 악의 관점에서 보면 성장이지만 구원의 관점에서는 비극이다.

이 비극적 성장이 어린 화이를 집어삼켰다는 설정은 영화의 파괴적인 주제의식을 강화시킨다. 선인과 악인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악은 더 큰 악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결국 도덕의 기준이 증발된 시대에 우리가 인지해야 할 모럴(moral)의 경계를 묻는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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