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갈등, 본질을 놓쳤다
밀양 송전탑 갈등, 본질을 놓쳤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0.18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양(密陽)의 옛 이름은 密城(밀성)이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땅 가락국에 속했다. 지증왕 때 신라에 복속됐다가 고려 충렬왕 때는 부곡(部曲)이라는 천민집단으로 강등됐다. 밀양은 그런 피지배와 차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 기억은 조선시대에 이르면 예약 향교의 중심지로 변화된다. 밀양향교는 김종직(金宗直)을 종주로 하는 영남학파의 본영이었다. 하지만 김종직은 그가 지은 조의제문이 문제가 돼 연산군 4년 무오사화가 초래되고 그의 주검은 부관참시됐다.

억압과 차별, 영예와 오욕의 향토사는 주민들에게 ‘국가공동체’보다 더 오래되고 단단한 관습공동체를 만든다. 그런 문화의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대한 애착과 외부에 대해 배타적 경계심을 갖기 마련이다. 대대로 이어지는 공동체 교육 속에서 아이들과 청년들은 항상 ‘마을을 지켜라’라는 말을 듣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에서는 지역개발에 반드시 문화인류학자들을 참여시킨다. 향토 문화와 그곳에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밀양은 갈등과 분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765kV짜리 송전탑 때문이다.

문제의 열쇠는 문화인류학에 있다

부산 신고리 원자로로부터 전력을 송전할 이 송전탑은 국민들의 전력난을 해소해 줄 유일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밀양 주민들에게 그 송전탑은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리는 ‘핍박’에 다름이 아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주민들과 협상하는 한전과 정부의 안일하고 일방적인 태도 그리고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기회주의가 불러왔다. 물론 여기에는 통합진보당과 환경단체들의 이념적 외부 개입도 한 몫한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70,80대 고령의 주민들이 그런 이념선동에 좌우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의 문제는 경제문제도, 이념문제도 아닌 ‘밀양’의 문화인류학적 문제였다.

밀양 송전탑 사업의 주체인 한국전력은 과거 5년이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주민 보상비에 쓴 돈은 530억원에 달했다. 그 외진 산골 마을들에 530억원의 보상비를 지불했다면 필요한 지역의 땅을 다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전의 보상방식은 엉뚱했다.

시세 평가로 1억은 되는 논밭의 토지보상은 기껏해야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을 넘지 못했지만 마을에는 태양광 발전이라든지, 마을회관 건립과 같은 비용을 보상으로 삼았다. 특히 마을 태양광 발전시설비가 보상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것은 주민들이 바라는 보상의 내용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송전탑으로 인한 터전의 파괴 그리고 주민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문제로 여겼다. 그렇다면 한전은 그런 관점에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옳았다.

밀양 송전탑은 국가적으로 막대한 편익을 주는 시설이다. 그렇다면 그 편익에 맞는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옳다. 밀양 주민들은 막대한 현금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요구는 그저 과거처럼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전이 주민들에게 현금으로 얼마를 보상하는 문제보다 주민들의 자녀나 가족이 송전탑 시설과 관련해 안정적인 취업의 기회를 주는 방안을 모색했다면 문제는 달랐을 수 있다. 어느 주민이 그 외진 산골에서 자기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감자나 캐먹고 살기를 바라겠는가 말이다.

만일 송전탑 사업이 국영기업인 한전이 아니라 삼성과 같은 민간기업이었다면 이 문제는 진작에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시장의 원리는 교환이고, 그 교환은 물질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가치의 교환이다. 송전탑에 반대해 분신을 마다하지 않는 밀양의 고령 주민들은 자신보다 자신의 자녀들 삶이 송전탑으로 더 윤택해지고 미래가 생긴다면, 전자파 같은 것에 연연해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밀양이 가진 향토문화에 비춰 봐서도 그렇다.

한전은 공무원 마인드의 협상, 즉 官이라는 권위를 내세워왔고, 밀양 주민들은 오래된 집단적 트라우마, 즉 핍박받는 民이라는 저항의 관습을 내세웠던 것이 지금 밀양 송전탑 갈등의 본질이다.

가장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다.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와 달라

국회는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가 지명한 전문가들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현지조사와 보고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보고서에서 밀양 송전탑은 우회송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 신고리 원자로의 송출 전력이 크기 때문에 우회송전을 할 경우 사고를 수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송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 문제 역시 10년간 12조원이 투자돼야 한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야권 단체들이 이 보고서가 과거 연구자료를 베꼈다고 비난하자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방기해 버렸다. 전문가들은 반발했다. 도대체 객관적 연구가 이전과 이후 결과가 달라야 옳으냐는 문제 제기였다.

결국 밀양 송전탑은 한전이 법원에 청구한 대로 행정대집행이 이뤄졌고 공사가 강행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환경단체들과 통합진보당원들은 이 지역에 내려가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3자들이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법이 허용한 질서가 아니다.

밀양 송전탑의 문제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로만 보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자로 부품비리로 인한 원전 가동중지, 이로 인한 전력난이 신고리 원자로의 가동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한전은 530억원이라는 보상비를 지불하고도 결국 협상에 실패했다.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권은 손을 놓아 버렸다. 진보좌파단체들은 주민들을 선동했다. 국민은 간단하게 이를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밀양 송전탑의 현실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국가는 적어도 밀양 주민들에 대해서는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논리보다는 관습과 문화적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선진적 마인드가 필요한 때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