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역사관
카이로스의 역사관
  • 미래한국
  • 승인 2013.10.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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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이종윤 상임고문‧한국기독교학술원장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이를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32:7)

우리나라나 세계 모든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객관적, 보편적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는 식민사관에서 민족사관으로 이제는 글로벌시대의 사관을 갖고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와 목표를 찾아 이웃 나라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 후소사의 역사교과서는 근현대사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고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으로 부각시키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의 역사를 파괴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일본의 속국이 되게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들도 대부분은 대한민국 건국사를 왜곡한 것을 비롯해 6·25 한국전쟁의 북침설, 맥아더는 한반도 영구분단의 원흉이라는 등 실로 어처구니없는 종북좌파 논리가 역사 교과서에 기록돼 있다.

역사의 외형적 현상은 그 내면적 부분과 연결돼 있다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다. 그것이 종교로서 역사의 한 현상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입증돼 있는 특별한 외적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역사 속에서 결정적으로 행동해 오셨으며 앞으로도 이 역사를 예정하신 종국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 행동하실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영지주의나 실존주의와 구분된다. 나사렛 예수의 출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으로 역사 속에서의 결정적인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심판의 기초 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인간 구원의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볼 수 있어야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여러 개 있다. 날을 의미하는 헤메라(hemera), 시간을 의미하는 호아(hoa), 계절을 뜻하는 카이로스(kairos), 연대기적 시간을 말하는 크로노스(chronos), 시대 혹은 세대를 의미하는 아이온(aion) 등이 있다.

특히 카이로스는 시간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하거나 유리한 시점을 지칭한다. 벨렉스왕이 바울에게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24:25)할 때처럼 의미 있는 시간을 뜻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말할 때 쓰였다. ‘내 때가 가까웠다’(마26:18) 즉 예수님의 수난과 영광의 때를 언급할 때 카이로스를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삶은 역사적인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historic) 것이다. 그분은 모든 역사의 출발이고 AD와 BC가 갈라지는 중심이며 의미가 되시고 역사의 목적이 되신다. 그에게 자신을 맡기느냐 아니면 그와 그의 역사를 거부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시간에 또 하나의 성경적 단어는 지금(nun)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요했다면 현재의 우리 삶이 그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카이로스인지를 알아야 한다.

기독교적 역사관에서만 보편적, 객관적 역사 이해가 가능

역사에 대한 순환적 시각이나 역사를 진보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 성경의 역사관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창조, 섭리, 계시, 구속, 심판 등에 들어 있다.

역사에 적용시켜 볼 때 성경은 포괄적이고 우주적인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진행하는 방식과 목적을 지닌다는 것,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구원을 행하신다는 것,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자기가 하는 혹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헬라인들에게는 창조의 개념이 없었다. 모든 것은 영구적이고 인간 또는 인종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 또는 구상의 일부분 같은 포괄적 시각이 없었다. 오스왈드 슈펭클러와 아놀드 토인비의 인류 전체의 보편적 역사 서술이 서구 몰락을 예견할 수 있었고 문명 중심의 역사 연구를 하게 했다. 그들은 모든 인류는 하나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보편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역사관을 갖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거기서부터 보편적 역사관이 흘러나온다는 성경적 역사관이다.

하나님의 섭리 교리는 생성, 성장, 쇠퇴, 몰락과 같은 자연주의나 칼 맑스의 변증법이나 유물주의와는 다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나라가 해방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신다. 구속의 가르침과 최후 심판을 역사를 통해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표

‘때가 차매’(갈4:4-5) 즉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성경은 역사를 하나님의(His) 이야기(Story)라 하며 하나님의 역사적 계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즉, 그의 몸이다.
그분의, 그때에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를 위해 오늘을 결단하는 믿음과 지혜를 가져야 역사를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이종윤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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