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 부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이 부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이원우
  • 승인 2013.10.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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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밀양 송전탑 현장에 가다
밀양역 플랫폼. 김종직을 소개하고 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밀양아리랑’의 가사다. 우리가 ‘밀양’ 하면 떠올리는 몇 안 되는 ‘특산품’ 중 하나다. 그런 밀양에 또 하나의 아이콘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대다수 국민들의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시설물이지만 인근 주민들에게는 불쾌함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765kV짜리 송전탑이다.

수많은 송전탑 중 유독 밀양지역 건설 현장에서 마찰이 격렬한 이유는 뭘까. 인근 주민들은 송전탑이 너무 가까운 곳에 세워져 생활의 터전이 위협받는다고 말한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밀양의 ‘집단이기주의’냐 한전의 ‘밀어 붙이기’냐 사이에서 관점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젠 그나마 있었던 관심마저도 조금씩 잦아드는 분위기다.

지금 밀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밀양의 사람들은 아리랑의 가사처럼 제발 ‘날 좀 봐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녀왔다. 산중에 묻힌 조용한 남쪽의 도시 밀양에.

“외지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은 듯”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행 열차를 타면 밀양역에 내릴 수 있다. 조용하고 아담한 느낌의 역 플랫폼에는 ‘내 고장 역사인물’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소개돼 있다. 밀양에게도 그렇지만 조선사에서도 김종직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성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중요한 저술을 많이 남긴 그는 조선 성리학을 확립시켜 영남사림의 종사(宗師)로 추앙되기도 했다.

김종직의 삶은 ‘선비의 도시’ 밀양의 특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뒷받침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밀양의 슬픈 향토사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종직은 사후 그가 지은 조의제문이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를 초래해 주검이 부관참시 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훗날 신원되기는 했으나 밀양의 대표선수 김종직이 얻은 불명예는 이 작은 도시의 역사에 작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플랫폼의 안내판에는 “큰 화를 당하였으나 후일에 신원이 되었다”고만 되어 있다.

역을 벗어나면 선비의 도시는 새로운 구호를 외친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성장하는 밀양.’ 그러나 기업과 성장이라는 단어가 흔히 연상시키는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밀양의 하늘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이 잠시 이곳에 남겼던 희망의 표적일까. 역 주변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40대의 여주인에게 최근의 밀양에 대해 물었다.

“송전탑이요? 글쎄요. 오히려 밀양 사람들이 더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요. (웃음) 오히려 외지 분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최근에 외부에서 들르시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졌기는 하네요.”

구 시가지 '전도연 거리'

예스러운 시가지와 ‘전도연 거리’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공사 현장은 밀양역에서 30k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엔 밀양시의 구 시가지를 통과한다.

이곳은 이창동 감독, 송강호·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의 주 무대가 된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전도연이 미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던 이곳에 밀양은 ‘전도연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번화가의 송전탑 민심은 어떨까. 다음은 40대의 한 남성 시민의 말이다.

“(논란이 있다는 게) 같은 지역 주민으로선 안타깝죠. 그런데도 인근 주민이 아니면 상황을 잘 모르고 무관심한 부분이 많기도 합니다. 반갑지 않은 일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요.”

시내터미널에 도착해 송전탑 공사 현장에 대해 물으니 고개를 내젓는다. 버스를 타고 당도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 89번 송전탑 공사 현장인 바드리 마을로 향한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그날 새벽 바드리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공사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경찰들은 이날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딪혔다.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절대로 송전탑 건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이들은 “경찰이 의도되고 기획된 체포와 수사, 과잉 대응으로 주민을 자극하고 일부를 연행해 구속하면서 주민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연히 박근혜 찍었죠”

택시기사는 밀양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토박이 주민이었다. 30분 이상 달리게 된 김에 그에게도 밀양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게 딱 양반들의 도시 같네요”라고 했더니 “그 ‘양반’이라는 것 때문에 더 발전이 못 되지 않았나 싶어요. 너무 뒤떨어져 있어요”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취재차 만난 밀양 주민들 모두가 이렇게 자신들의 고향이 성장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밀양이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인구가 24만 명까지 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 절반도 안 됩니다. 공장 같은 것도 전혀 유치가 안 되고, 남은 건 저 같은 노인네들뿐이에요. 밀양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3선, 4선 하면서도 발전시키는 게 전혀 없어요. 임기 끝나면 얼굴 한 번 비치지도 않고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혹시 어떠세요? 노년층 인구 비중이 높은 걸 보면 아무래도 정부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많이들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혹시 지난 대선 때 누구 지지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나요?”

“당연히 박근혜 찍었죠. 그런데 참 이런 안 좋은 상황이 돼서 안타깝습니다. 밀양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시위하고 데모하고 한 적은 아마 역사상 없었지 싶어요.”

현재 밀양의 국회의원은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으로 2008년에 이어 재선한 정치인이다. 15~17대에는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3선을 해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했다. 현직 엄용수 시장 역시 새누리당 소속이다.

중장년·노년층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은 박근혜 정권 탄생에 밀양도 작지만 분명한 공헌을 했던 셈이다. 길게는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송전탑 갈등은 그런 박근혜 정권과 밀양이 예기치 못한 형태로 부딪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바드리 마을 전경

산으로, 또 산으로…

‘바드리 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기 시작하자 점점 경찰 인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20대 초반의 앳된 의경들이 마을 초입에서 택시를 세우고 행선지를 묻는다. 몇 가지 간단한 답변을 하고 나자 그때부터는 줄곧 고갯길, 또 고갯길이다.

바드리 마을은 해발 고도 550m 지점에 위치한 고산 마을로 농촌체험장(farm stay)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마을까지는 다행히 길이 포장돼 있어 차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두 대가 지나가기에는 좁다. 공사를 하더라도 이 좁은 도로의 확장을 먼저 진행한 뒤에 하라는 것이 바드리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정성스럽게 조성된 꽃밭과 정자는 외지인을 맞이하기 위한 바드리 마을의 의지를 보여준다. 백마산을 끼고 조성된 이 마을은 예로부터 산천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는 게 주민들의 자랑이다.

바드리 마을의 기원은 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곳에서 군수 물자를 취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됐다. 현재 남아 있는 가구는 17~18가구인데 다른 지역에 따로 집을 두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상주중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마침 동네 어르신들을 차로 모셔다 주고 돌아오는 장창명 반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밀양 출신인 그는 다른 지역에서 대학원 코스까지 밟은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두 형제들과 함께 바드리 마을에서 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89호 송전탑 건설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벌써 8년이 넘은 얘기예요. 지칩니다. 농사라는 건 다 시기가 있어서 어떤 때는 1시간을 놓치면 1년 농사를 다 망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 이곳에 이런 일이 있으니 주민들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나 있겠습니까? 8년쯤 지나니까 대부분은 못 버티고 포기하는 거죠. 지금 데모하는 사람들은 아주 일부만 남았어요.”

“외부세력이라도 있어야 우리 의견이 전달돼요”

“나머지는 다 통합진보당이나 환경단체 같은 이른바 ‘외부세력’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외부세력, 외부세력 많이들 얘기하시는 데요. 물론 외부세력이 있죠. 그런데 저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저희 목소리가 서울까지 전달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저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밀양 시장조차도 공약을 안 지키고 이젠 거의 정부 입장을 반복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마을 초입에 경찰들이 와 있고해서 팜스테이 영업하시는 덴 상당히 방해가 되겠더군요.”

“당연하죠. 10월 2일에 공사가 재개됐는데 그 이후 6일까지 닷새간 저희 쪽으로 들어오게 돼 있던 예약이 전부 취소됐어요. 저는 그 피해액을 1200만 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피해까지 합산하면 액수는 더 커지겠고요.

또 밀양에는 대추가 유명한데 10월 초가 대추 수확기간이거든요. 그것도 망쳤어요. 전체적으로 저희가 입은 피해에 대해 1억2800만원의 피해보상을 한국전력에 청구했는데 오늘(21일) 답변이 왔어요. 공익사업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에요. 전혀 소통이 안 됩니다.”

“듣기로는 정부에서 밀양에 태양광 발전시설비 같은 보상 방법을 모색했다고 하던데요.”

“그게 다 탁상공론이라는 거죠. 주민들한테 다가오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저희가 지금 농사짓고 팜스테이하고 하는데 태양광이 무슨 소용입니까. 주변에 거대한 송전탑이 들어와 있는 마을에 누가 농촌 체험을 하러 오겠느냐고요.”

“정부쪽에서 그 밖에 다른 보상은 없었나요?”

“있었다 한들 턱없이 부족하죠. 특히 저희 바드리 마을의 경우 9개 송전탑 중에서 피해가 가장 큰데, 저희가 생각하는 금액의 25% 정도밖에 지금 보상이 안 되고 있어요. 그리고 공사비 줄이려고 통보 없이 원래 계획과 다른 지점에 탑 건설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요. 공청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행정 편의주의에다가 굉장히 위압적이에요. 주민들도 이젠 하나둘씩 지쳐서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우리 얘길 듣고 와 준 거죠.”

마을 초입. 경찰과 반대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전력 “저희도 서운한 게 많습니다”

이번엔 89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자동차는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길에서 때 아닌 산 타기가 시작됐다. 안전모를 쓰고 공사 현장으로 진입하자 굴삭기 두 대와 함께 아직 초기단계인 현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침 한국전력공사 부산경남개발처 박창집 차장이 128m짜리 89호 송전탑이 들어설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공사 착공은 2008년 8월부터였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체적으로 총 11번 정도 중지가 됐습니다.”

“주민들이 한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서운함이 굉장히 큰 것 같은데요. 팜스테이 하고 농사짓는 주민들 입장에서 송전탑으로 피해보는 부분은 분명 크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저희도 인지를 하고 있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했고, 또 그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드리 마을의 경우 진입로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문제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원래부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일인데다 요구 사항이 계속 까다로워져서 참 곤란한 부분이 많아요. 주민 분들은 저희가 소통을 안 한다고 하시지만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공사 추진하면서 동네 주민들한테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이젠 저도 담당자로서 서운한 마음도 많이 생기더군요.”

“오늘 아침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는데요. 신고리 3호기, 4호기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면서 송전탑의 필요성이 시급하지 않다는 여론도 함께 생긴 것 같습니다.”

89호 송전탑 건설 현장

“저희는 그것과 관계없이 송전탑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금 이 사태가 이렇게 길어지면서 또 언제 공사가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인데요. 이러면 올해 여름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서 내년 여름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희로서는 정말 피가 마르는 일이에요.

저희도 어떻게든 감정을 풀어보려고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다가가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작게는 대추나 콩 수확 작업에 손이라도 보태려고 해보고 주민들 불편함을 파악하려고 나름대로 정성도 쏟아 본 거죠. 아마 이건 다른 지역 공사 현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도시 차원에서도 전기료 혜택을 준다든지 국가적인 차원의 인센티브를 준다든지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밀양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송전탑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력과 공사 현장 주변 주민들의 의견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주민들 사이에도 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백마산을 내려와 시내로 가면 시가지에는 서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의견들이 있다.

이 모든 견해들은 각자의 주변에서만 배회할 뿐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논란은 밀양 시민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뒤처졌다’는 의식이 각자의 관점을 통해 투사되면서 일어난 혼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시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지들은 이 작은 도시를 섬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주 먼 옛날부터 전승돼온 이 상실의 감정이 밀양아리랑의 첫 소절을 “날 좀 보소”로 채우게 했던 것일까. ‘언제나 밀양만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번 논란을 해결할 관건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KTX에 올라탔을 때 스크린에는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의 상경 투쟁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글·사진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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