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감독이 되려면
배우가 감독이 되려면
  • 미래한국
  • 승인 2013.11.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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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톱스타'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배우 박중훈

박중훈·하정우처럼 이름난 배우들 중에서 감독활동으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가 더러 나온다. 유지태도 그랬고, 구혜선도 이름을 건 영화를 내놓았다.

이전에도 배우들이 감독으로 나선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성영화 시절 한국영화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나운규(1902-1937)는 배우와 감독 뿐 아니라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를 겸하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이 시나리오 배우 감독 무용안무 등을 모두 감당했던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역할을 감당했다.

뒤이어 나운규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윤봉춘(1902-1975)도 배우에서 감독으로 역할을 옮긴 경우다. 1960~7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김진규 최무룡 박노식 신성일 같은 인물들도 감독활동에 도전했다. 여자 배우들 중에서는 최은희가 손꼽힌다.

스타들의 감독 도전, 성과는 아직…

이후로는 감독하겠다는 배우가 거의 없었다. 유지태나 박중훈, 하정우, 구혜선은 배우감독 세대의 새로운 등장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에서 아직까지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경우는 별로 없다. 배우로서 가지는 인기나 유명세 덕분에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같은 사례들에 비해 색다른 흥밋거리 소재는 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박중훈이 만든 ‘톱스타’는 화려한 연예계를 비추지만 스토리를 이어가기에도 벅찰 정도로 사건만 나열하는 수준이다. 연예계 밑바닥에서 시작한 뒤 톱스타가 되고 다시 타락의 구조 속에 갇힌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엄청난 듯 하고 있지만, 상황이나 인물을 해석하는 내공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포장마차에서 술잔 앞에 두고 앞뒤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 할 때 안주거리 정도의 소재나 될까, 영화적인 구성이나 밀도, 깊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정우의 ‘롤러코스터’는 경쾌한 소동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하지만 이것저것 소란스러운 초반부를 넘기면서부터는 도대체 이후의 전개나 마무리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이럴까 싶을 만큼 아슬아슬하다.

비행기라는 공간이 한정되는 곳인데다 승객을 등장인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그 역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3~4분 짜리 노래 한곡 부를 때도 전체적인 길이의 조절과 소리의 강약, 감정의 높고 낮음 같은 것들이 들어가야 비로소 마무리할 수 있다. 음정, 박자, 감정 무시하고 목청껏 소리만 질러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긴 하지만 2시간 내외에 이르는 영화의 리듬은 완전히 다르다.

몇몇 장면에서 멋진 대사를 날리고, 웃기는 장면을 담으면 그럴 듯할 것 같지만 전체 구성은 그보다 훨씬 길다. 전체적인 구성이 맥락을 갖추고 흐름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은 효과를 더할 수 있지만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연결한다고 영화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구혜선의 ‘복숭아나무’(2012)도 미모의 여배우가 영화감독을 한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이상의 성과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마라톤 선수가 정장을 입은 상태로 골인지점에 들어온 뒤 자신이 달려온 과정이 이러저러하고, 마라톤을 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해설한다면 제대로 달린 것이라 하겠는가?

애초부터 너무 다른 그들의 역할

배우와 감독이 다른 것은 그 역할이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배우는 감독의 연출 지시를 받는다. 특정한 영화의 주제나 성격, 역할에 대한 해석이 나름대로 있을 수 있지만 그걸 자기 마음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감독이 구상하고 통제하는 수준에 따라가야 한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이 확실한 갑이 되고 배우는 아무리 유명한 스타라도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감독이 배우를 통제하지 못하면 영화가 오리무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러는 배우들 중에서 인기나 경력을 앞세우며 감독을 우습게 여기려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가 망할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 주는 것이다.

특정한 장면을 촬영한다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의 일부를 만드는 것이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그 장면이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체 구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감독의 연출에 따라 연기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역할의 차이와 구조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감독은 감독처럼 생각하고 배우는 배우처럼 행동한다. 배우로 활동하다 감독이 된다는 것은 타자나 투수로 활동하던 선수가 야구팀 감독이 되는 것이나 비슷하다.

선수는 자기 몫만 잘하면 되지만 감독은 타자 라인업은 어떻게 짜고, 투수 로테이션은 누구로 할 것인지, 언제 교체선수를 넣을 것인지, 오늘 게임을 진다면 다음 게임은 어떻게 하고, 한 시즌 전체로는 무슨 전략으로 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모드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몇 십 년째 감독활동을 하며 문제작을 내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경우는 배우로도 감독으로도 도사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감독 자리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만 감독은 감독만 하고 배우는 배우만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배우가 감독이 되고, 감독이 배우 역할도 할 수 있지만 역할에 대한 이해와 준비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배우감독들이 만들었다는 영화를 보고난 뒤의 소감이다.

조희문 편집위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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