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재판과 법
영화 속의 재판과 법
  • 미래한국
  • 승인 2013.11.15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재판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의 공통점은 누구든 최고로 깔끔한 복장을 하고 좋은 인상을 주려 애쓴다는 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법정 영화가 있지만 재판에 나가는 인물들이 아무렇게나 차려 입고 나간 경우는 보지를 못했다.

미국처럼 배심제도를 동원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나 검사, 재판 당사자들 모두 짙은 색깔의 고급스런 수트에다 넥타이를 정중하게 매고 최대한 정숙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다.

말까지 잘하면 금상첨화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복 차림으로 나서거나 휠체어, 환자용 침대를 타고 법정에 나서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설득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기싸움은 차림새와 행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란 점에서 어느 경우나 의도는 마찬가지다.

<디즈씨 도시에 가다>(Mr Deeds goes to the town, 1936)가 법정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 영화의 원조 격에 든다. 본격적인 법정드라마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재판 장면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했다.

이후 수많은 법정 드라마에 영감을 준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순박한 시골뜨기 롱펠루우 디즈는 어느날 가까운 친척의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는 바람에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법정 영화 공통점, 깔끔한 정장의 신사들

친척의 재산을 관리하던 변호사들은 디즈가 계속 자기들을 고용하면서 일거리를 주도록 계획하지만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낀 그는 모든 재산을 시골의 어느 단체에 기부한다. 깜짝 놀란 변호사들은 디즈가 정신이상자라고 몰아세우며 돈을 다시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옥신각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유쾌하고 선량한 코미디 영화답게 결론은 해피엔딩이지만 변호사들이 비열하고 욕심 많은 캐릭터라는 인상은 강하게 남겼다.

산타클로스 재판을 다룬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 street, 1947)도 비슷한 사례.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에서 산타 역할을 하던 직원이 어느 여자 아이에게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진짜 산타 노릇을 한다.

그 일로 직원은 고발당하고 재판이 벌어지는데 진짜 산타가 있는가 없는가로 여론이 시끄러워진다. 검사와 변호인은 각각 배심원들을 향해 열변을 쏟아 낸다. 이후 TV와 영화로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다.

변호사들이 활약하는 영화들

<정부(情夫)>(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는 재판정을 무대로 한 멜로 스릴러이면서 본격적인 법정드라마의 등장을 알린 무게 있는 영화.

켄터키 치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변호사 찰스 로톤, 무고하게 살인 누명을 쓴 남편 타이론 파워, 남편을 매정하게 몰아붙이는 팜므 파탈 이미지의 마리네 디트리히 등 당시로서는 쟁쟁한 스타들이 연기 대결을 펼친다.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던 영화는 마지막 대목에서 거대한 뒤집기 한판을 연출한다.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To Kil a Mocking bird, 1962)은 앞의 영화들과는 달리 변호사를 원톱 주인공으로 설정한 기념비적인 영화. 흑백 인종 차별이 현실로 존재하던 시절의 미국 알라마마의 어느 작은 마을.

흑인 청년이 백인 처녀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다. 사실은 백인 처녀가 흑인 남자를 유혹하려다가 거절당하자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지만 누구도 흑인 청년을 도와주지 않는다.

오직 한사람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편견과 위협을 무릅쓰며 변호에 나선다. 정의와 신념을 위해 올인하는 양심적 영웅 캐릭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역을 맡은 그레고리 펙은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알라바마 이야기> <앵무새 죽이기> 등의 제목으로도 부른다.

<뉴렌베르크 재판>(1961)이나 <동경 재판>(1983, 다큐멘터리)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군이 주도하는 전범 재판 과정을 다룬 영화들.

<돌격>(Paths of glory, 1957)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 지휘부가 전투 패배의 책임을 하급 병사에게 뒤집어 씌워 처형하는 내용을 그린다. 무모한 판단과 명령으로 부대원을 몰살시켜 놓고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겨우 살아서 돌아온 몇 명의 부하들을 군사법정에 세운 뒤 결국 처형한다.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2000)는 군사재판의 정치적 이면과 용기 있는 양심의 반격을 작전하듯 다룬 경우이고 <어퓨굿맨>(1992)은 군사법정의 치열한 공방을 다룬다. 대체로 변호사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다.

12인의 노한, 1명의 배심원이 주장한 무죄

<12인의 노한>(12 Angry men, 1957)과 <주어러>(The Juror,1996) <런어웨이> (Runaway Jury, 2003)는 배심원들의 활약을 다룬 경우들. 헨리 폰다 등이 출연한 <12인의 노한>에서는 12명의 배심원 중 11명이 살인죄로 기소된 소년이 유죄라고 주장하지만 오직 한명의 배심원은 다른 진실을 주장한다. 집단적 선입관과 편견, 포퓰리즘에 맞서는 외로운 용기 같은 문제를 부각한다.

<주어러>는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을 협박하는 범죄조직과의 대결을, <런어웨이>는 배심원들 사이에 파고든 한명의 배심원이 교묘하게 다른 배심원들을 조정하며 거대 기업의 음모를 격파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미국식 재판 과정, 배심제도의 구조를 영화적 상황으로 재현한 경우들이다.

<판사 로이빈>(The Life and Times of Judge Roy Bean, 1972)은 미국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법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집행하는 엉터리 판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밖에도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 1958) <암흑가의 두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1973) <피고인>(The Accused, 1989) <피고인>(The The Amy Fisher Story, 1993) <야망의 함정>(The Firm, 1993)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1997) <라이어 라이어>(Liar Liar, 1997) <아미스타드>(Amistad, 1997) <더블크라임>(Double Jeopardy, 1999) <에린 브로코비치> (Erin Brockovich, 2000) <하이크라임>(High Crimes, 2002)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2011) 등 재판 과정을 다루거나 변호사의 활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한국 영화에 재판 장면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검사와 여선생>(1948).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옛 스승을 기소하면서 한편으로는 변론하는 검사의 눈물어린 사연을 그린 흑백 무성 영화. 작품 자체의 수준보다는 변사 공연의 레퍼토리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뒤이어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여판사> (1963) <아들의 심판>(1960) <표류도>(1960) <사랑하는 아들의 심판>(1972) <삐에로와 국화>(1982) <이혼법정>(1984) 같은 영화들이 나왔다.

정의의 최후 보루 또는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는 성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는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으로 매도당하는 문제를 그린 경우이고 <박대박>(1997) <생과부위자료청구소송>(1998) 같은 영화들은 재판 과정을 유쾌한 소동처럼 다룬다.

<도가니>(2011)에도 재판 장면이 비중 있게 등장하고 <부러진 화살>(2012)은 재판 과정 자체에 집중하지만 검사나 판사, 경찰관들은 돈이나 권력에만 빠져있는 부패 집단처럼 비춘다. <의뢰인>(2011)은 변호인들 간의 치열한 법리 다툼을 설정하며 법정 드라마로 엮어 내지만 별다른 감동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7번방의 선물>(2012)이나 <소원>(2013)에도 재판 장면이 살짝 들어 있다.

법정 영화들은 법을 진실과 정의 수호의 최후 보루라고 설정하며 재판에서 승리하는 것은 곧 진실의 승리, 정의의 승리라고 환호하는 것으로 결말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에 대한 존중이 희박해지는 것과 함께 재판의 결과를 조종하고 조작하려는 시도도 드물지 않다.

재판 결과가 돈이나 권력에 휘둘리고 정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할수록 법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더티 하리> 시리즈 두 번째 영화 <이것이 법이다>(Magnum Force, 1973)에서는 경찰관들이 직접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하려는가 하면 <아이 더 쥬리>(I, The Jury, 1982)처럼 정의를 실현하려는 배심원의 역할을 스스로 집행하며 방패 역할을 하려는 경우도 있다.

법은 사회 정의를 지키려 하지만 그곳까지 도달하는 과정에는 온갖 장애물이 나타나며 길을 막는 데 대한 반발이다. 영화는 그 법이 특정한 사회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창이다.

조희문 편집위원·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