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새누리당에서 최고의 ‘선거 공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우연히 배석한 적이 있다. 이들도 오랜만에 만나는 분위기였다. 이들이 모시고 있는 주군(?)도 제각기 달랐다. 김무성계, 김문수계, 정몽준계 등등. 화제는 2017년 대통령 선거였다.
“아니 벌써”하며 놀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이나 마찬가지다.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듯, 이들도 다음 대선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이들의 대화는 정확한 분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직관에 의한 방담 수준이었다. 한 자칭 ‘기술자’(engineer)는 ‘10년 주기설’을 근거로 2017년 대선은 ‘보수’보다는 ‘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0년 주기설’이란 시계추가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움직이듯이 2번의 대선을 기준으로 그 방향이 바뀐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미국의 ‘공화·민주 8년 주기설’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으로, 87년 이후 대선을 분석해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노태우·김영삼에서 김대중·노무현으로, 그리고 다시 이명박·박근혜로의 시계추 이동. 그러나 반론도 간단치 않았다.
‘10년 주기설’의 실체는?
우선 미국의 ‘8년 주기설’ 자체가 잘못된 가설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치사를 살펴보면 남북전쟁 이후 이른바 ‘링컨구도’(反남부연합)에 의한 공화당 독주시대가 193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다. 그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의한 ‘뉴딜연합’(남부+북부 리버럴)에 의한 민주당 독주가 1960년대까지 지속된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가 당선되지만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후보라기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영웅’으로서 당선된 것이며 이른바 ‘뉴딜연합’(혹은 리버럴 컨센서스)은 계속 유지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리버럴 컨센서스’의 최고 절정기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기였으며 사실상 첫 도전은 1964년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에 의해 이뤄졌는데 그 결과는 완패였다.
리버럴 컨센서스는 린든 존슨 대통령 시기에 흔들리기 시작, 1980년 레이건 보수혁명으로 무너지게 된다. 그 이후 미국은 ‘보수주의 헤게모니’ 시대로 들어간다.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되지만 그의 강령을 보면 안보와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 보수주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었다. 단지 낙태·동성애와 같은 사회문제와 의료보장 문제를 비롯한 복지문제에서 공화당과 대립각을 형성했을 뿐이다.
즉 클린턴의 집권은 ‘리버럴 헤게모니’로의 복귀가 아닌, 클린턴 민주당의 우클릭에 의한 것이었다. ‘레이건 보수주의 헤게모니’의 종식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이뤄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 입장을 따를 때 미국 정치사는 링컨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직전까지 ‘공화당 헤게모니’가, 루즈벨트에서 레이건 직전까지 리버럴 컨센서스가, 그리고 레이건부터 오바마 직전까지 보수주의 헤게모니가 지배했던 시기로 구별될 수 있다. 즉 시계추는 8년이 아니라 30년 이상의 ‘세대’(generation)를 통해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세대’를 살고 있는가
그럼 한국은 어떤 세대 혹은 헤게모니 속에 있는가? 이른바 ‘80년대 세대’에 의한 ‘좌익 헤게모니’는 종식됐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리버럴 헤게모니 속에서 개인적 인기를 무기로 당선돼 리버럴 헤게모니와의 ‘화합과 타협’을 통해 정권을 유지해야만 했던 아이젠하워인가? 아니면 좌익 헤게모니에 지친 ‘침묵하는 대중’(Silence Majority)의 반발로 당선됐으나 결국은 ‘좌익 헤게모니’의 총공세(워터게이트)에 의해 무너져야만 했던 닉슨인가?
현재 좌익진영은 박 대통령을 닉슨으로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다행히도 시대의 풍향은 좌익 헤게모니를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레이건식 보수주의 혁명이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물론 우리는 박 대통령이 한국의 레이건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화제는 곧 내년 6월 지방 선거로 옮겨왔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새누리당의 우위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보수주의 헤게모니를 운운하기에는 시기상조지만 사회 전반의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하면서 새누리당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물이었다. 내년 지자체 선거의 꽃은 서울시장 선거인데 새누리당은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높은 당 지지율에도 불구, 박원순 시장을 이길 후보가 부재하다는 것이 그 자리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진영 전(前) 장관은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됐고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원희룡, 이혜훈으로는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황식 전(前) 총리 차출론이 나오고 있는데 김황식 총리의 대중 인지도가 놀랄 정도로 낮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몽준 대안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정몽준계는 펄쩍 뛰었다. 정말 그렇게 사람이 없을까?
갑자기 ‘김진태 의원 서울시장 후보론’이 거론됐다. 첫 반응은 “말도 안 돼”였다. 그러나 “안 되는 이유는?”이라는 반문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일변했다. “젊은 보수의 아이콘, 김진태”가 “늙은 진보의 대부, 박원순”에 맞서면 안 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현실정치를 ‘더러운 것’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향은 점잖은 보수주의자일수록 더 심하다. 문제는 이 ‘더러운 정치’를 ‘더러운 인간’에게 맡겨 놓으면 놓을수록 그 악취는 심화된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생각해 보라. 더럽다고 방치할 경우 화장실은 그야말로 갈 곳이 못된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해 있는 이상, 대변과 소변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화장실은 피할 곳이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할 곳이다.
이 같은 고민 속에서 데이비드 프리스크(David Frisk)의 <우리가 아니면, 누가?>(If Not Us, Who?)를 읽었다. 이 책은 미국 보수정론지 내셔널리뷰의 발행인이었던 월리엄 러셔(William Rusher, 1923∼2011)의 전기이다. 러셔는 ‘내셔널리뷰 이론가들과 우익 실천가들 사이에서의 연결고리’로서 ‘현실정치와 보수주의 지식인 세계 양자를 이어준 대사(ambassador)’였다.
러셔가 내셔널리뷰에 발행인으로 합류했을 때만 하더라도 내셔널리뷰는 소수 보수주의 지식인들의 동호인 잡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내셔널리뷰를 미국 보수주의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러셔이다. ‘러셔가 없었다면 내셔널리뷰는 소수 지식인들의 이론지로 끝나고 말았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러셔가 골드워터를 점찍은 이유
러셔는 프리스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러셔가 정치세계에 발을 담은 것은 대학 시절 ‘청년 공화당’(Young Republicans)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공화당 청년당원으로 활약한 러셔는 처음에는 온건파 공화당원이었으나 하원 산하 기관에서 미국에 침투한 친소 공산분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하면서 강경 보수주의자로 전환된다.
현실정치와의 연결부족을 고민하던 내셔널리뷰에 들어간 러셔는 한편에서는 당시 보수주의 지식인들의 정치 혐오 분위기와 공화당 내부의 ‘리버럴 추종 공화당’(me-too Republicanism) 및 ‘웰빙 공화당’(country club Republicanism)과 격렬히 투쟁한다.
러셔는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배리 골드워터를 후보로 내세울 것을 주장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러셔는 보수주의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이상주의적 청년 보수주의자들을 위한 ‘집결 지점’(rallying-point)이 필요하며 골드워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러셔의 계획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리버럴 헤게모니’의 총아였던 존 F. 케네디와 대립각을 세울 인물이 골드워터였기 때문이었다. 케네디와 골드워터는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미남이었지만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케네디가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라면 골드워터는 강인한 서부의 사나이였다. 또 케네디는 명문 하버드대를 나온 동부 리버럴 엘리트들의 상징이었다면 고졸 백화점 주인 출신의 골드워터는 서부 서민 대중을 대표했다.
러셔는 ‘5가지 교훈’이란 글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의 공화당 장악과 경선 및 대선 승리 가능성을 주장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수주의는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둘째, 돈 선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셋째,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넷째, 언론의 밴드왜건효과(band wagon effect)보다는 언더독효과(underdog effect)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소심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1963년 11월 22일은 절망의 날이었다. 대립각의 정점이었던 케네디가 암살된 것이다. 케네디 대타로 나온 린든 존슨과의 각이 서질 않았다. 같은 서부 출신, 그것도 같은 고졸, 동부 리버럴 귀족들과의 대립으로 대선을 몰고 가려던 러셔의 구도는 처음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골드워터는 참패했다. 그러나 골드워터의 선거 참패는 미국 보수주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교두보 확보’였다.
골드워터는 대선 출마를 원치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이 대선 출마를 종용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골드워터는 거부했다. 그때 보수주의자들은 말했다. “당신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징집’됐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징집 영장’을 전달하려 왔을 뿐입니다.” 골드워터는 징집 영장을 받고 전투에 나가 장렬히 전사했다.
우리 보수주의 진영은 누구에게 징집 영장을 보낼 것인가? 우선은 김진태 의원이 떠오른다. 아니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람 혼자 전사하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하자. 죽어도 함께 죽는다는 각오로 ‘징집’하자. 이제 우리에게도 ‘보수주의 현실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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