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의 살 길은 바깥에 있다”
“농사꾼의 살 길은 바깥에 있다”
  • 이원우
  • 승인 2013.11.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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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농업이 미래다] 접목선인장으로 세계 진출한 김건중 고덕원예무역 대표
김건중 고덕원예무역 대표

많은 사람들이 ‘선인장’하면 사막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선인장’을 기입하면 ‘선인장 종류’ ‘선인장 키우는 법’ 등의 연관검색어가 뜬다. 선인장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선인장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이 그렇다. 선인장은 올 한 해 동안 수출물량 170만 톤, 매출 18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거래국가 역시 화훼의 상징인 네덜란드를 포함해 미국 호주 이스라엘 콜롬비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하다.

‘대한민국표 선인장’은 사람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여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선인장 농사꾼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고덕원예무역을 이끌고 있는 김건중 대표다.

“만날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나와요. 농사꾼이 다 이런 거죠.” 오전 11시께 만난 그는 사진 촬영을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투박한 손이 노동의 힘겨움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까만색의 고급 외제차에서 내려 기자를 안내했다는 사실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얘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은 더 의외였다. FTA를 ‘기회’라고 단언하는 농사꾼, “무조건 바깥(해외)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 속에서 한국 농업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 선인장은 으레 초록색인 줄 알았는데요. 와서 보니까 빨간색 노란색 등 색상이 다섯 가지나 되네요. 따로 품종이 있나요?

이게 ‘접목선인장’이라는 겁니다. 저희가 수출하는 선인장은 접목선인장 하나예요. ‘접목’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뿌리 부분과 색깔을 내는 윗부분을 강제로 붙여서 만든 거죠. 머리 부분을 ‘자구’ 몸통 부분을 ‘대목’이라고 불러요. 색깔을 내는 종자는 뿌리가 약하고, 뿌리가 강한 종자는 색깔이 없기 때문에 둘의 장점을 취합해서 만든 겁니다.

세계 유일의 접목선인장 종자 개발

- 굉장한 기술 아닌가요?

그럼요. 국제 특허까지 난 기술입니다. 전 세계에서 접목선인장의 종자를 개발하는 곳이 딱 두 곳 있는데 전부 한국이에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입니다.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들에서 조금씩 도전하긴 하는데 아직까지는 한국 종자를 훔쳐 쓰는 수준이죠.

- 해외에서 반응이 대단히 좋다고 들었는데요. 이것도 종자 덕분인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접목선인장의 수요는 결국 관상 가치거든요. 관상 선인장의 종주국은 남미 쪽이지만 지금 저희가 칠레며 아르헨티나까지 다 수출하고 있어요.

- 특별히 한국 선인장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있나요?

색깔을 내면서 오래 가는 선인장이 없어서 그렇죠. 보통은 가시가 크고 푸른색 일색이거든요. 우린 색깔도 다섯 가지나 되는데다 생존성이 아주 좋습니다. 접목선인장을 사려면 한국에 올 수밖에 없으니 엄청난 특화를 하고 있는 거죠. 이 분야에선 경기도 고양시가 특히 앞서가고 있고요.

- 기술이 개발된 과정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접목기술 자체는 30여 년 전에 일본에서 개발됐다고 해요. 그런데 손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인건비 문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농진청에서 종자 개발에 진출했고, 지금은 경기도농업기술원 선인장연구소가 따로 운영되고 있고요.

30년의 노하우가 쌓여서 오늘날의 특화가 이뤄진 거죠. 제가 이걸로 먹고 살아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경기도 시책 중에 제일 잘한 게 농업기술원인 것 같습니다. (웃음)

- 한국에만 있는 기술이니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갑(甲)의 입장인가요?

그런 셈이죠. 농민들이 바이어 입맛에 딱 맞게 생산해 주기도 하고요. 1년이면 10가지 이상의 종자를 개발하는데 매년 바이어들을 불러다가 선발 테스트를 해요. 그래서 선택된 것만 양산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제 농가들이나 수출업자들이 어느 정도 바이어들의 선호를 잘 알아서 맞춤 생산이 가능하죠. 바이어들이 선인장연구소에 직접 가서 요구를 하기도 하고요.

 

경기도 도움으로 자생력 갖춰

- 농민들은 보통 관(官)에 만족하는 부분보다는 서운한 부분, 바라는 부분이 많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별로 그렇지 않으신 것 같네요.

적어도 경기도에 대해서는 그럴 이유가 없죠. 선인장 수출에 대해서는 농가들이 이미 자생력을 갖추고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때야 시설비가 목돈으로 들어가지만 개·보수에 큰돈이 드는 건 아니고, 종자는 연구소에서 공급해 주는 걸 받아다가 스스로 늘리면 되니까요. 재배방법도 매뉴얼화가 딱 돼서 책자에 다 나와 있어요. 온도 몇 도. 습도 몇 퍼센트. 아주 쉽죠.

- 선인장연구소의 힘이 결정적이었겠군요.

전 세계 접목선인장의 80%가 경기도산(産)이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가 보이죠. 그런데도 아직 세계시장의 수요에 비하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급이 수요의 60% 수준이에요. 귀농 열풍이 불면서 유기농 무농약 농사에 대한 환상이 커졌다지만 그런 꿈 같은 얘기보다는 이렇게 확실한 수요가 있는 산업에 다들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경쟁자가 늘어나도 관계없으신 건가요?

괜찮습니다. 많이들 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한 사람이 운영할 수 있는 양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비즈니스 하기는 쉬워요. 작년부터 나이 드신 사업자들이 2세들에게 선인장 사업을 권유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좋은 사업인지 알 수 있겠죠. 정부에서도 좀 더 구체적인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농민에 대한 시책을 고민할 때 자꾸 대단위 단지조성 얘기를 하는데요. 돈은 돈대로 들고 농가들한테도 좋은 소리 못 듣는 시책이라고 봅니다. 선인장 사업에 국한해서 봐도, 차라리 개별 농가별로 원하는 사람에게 시설비 몇 천 만원씩만 지원해 줘도 양상이 크게 달라질 거예요.

우리나라의 경우 농사짓는 사람보다 농업에 관계된 공무원이 더 많다는 건 아시죠? 농업에 대한 지원을 고민할 때 액수를 더 달란 얘기는 이제 의미가 없겠고요.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 융통성 있는 지원을 고민할 때라고 봐요.

- 농사짓는 분이 “지원 액수는 의미 없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해외시장을 주로 상대하시는데 FTA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가요? 고덕원예무역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니 전부 영어던데요.

우리나라 인구도 점점 줄고 소비 패턴도 서구화되는 상황에서 결국 농업이 살 길은 외국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FTA는 사실 기회죠.

한·EU FTA 같은 경우를 볼까요? 화훼산업 같은 경우는 네덜란드를 통해서 유럽으로 수출되는데 관세 6.8%가 2011년 7월 FTA 이후 없어졌어요. 네덜란드 바이어는 원래의 자기 마진 5%에 추가 마진이 생긴 셈이죠. 그러니까 기를 쓰고 더 팔려고 열심이에요. 접목선인장도 올 한 해에만 네덜란드 시장에 250만 달러 정도 나갔습니다.

많이 나가니까 마냥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아요. 지금 만나는 해외 바이어들은 전부 도매 거래처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내 거래처가 아닌 거예요. 도매상에서 소매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가가치는 우리가 취하질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물량 부족이죠. 누군가 정부에서 마음먹고 20억 정도만 개별 농가들에게 지원해 준다면 현재 300~350만 달러인 선인장 사업이 1000만 달러 시장으로 변모하는 데 2년도 안 걸릴 겁니다. 그러면 마음 놓고 완제품을 내보낼 수 있겠죠.

- 현재 수출하고 있는 국가들은 어디죠?

제가 거래하고 있는 국가는 17개국입니다. 네덜란드 호주 미국을 포함해서 남아공 터키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콜롬비아 방글라데시 대만까지 아주 다양해요. 매년 11월이 되면 네덜란드에서 화훼 박람회를 여는데 아주 중요한 행사예요. 전 세계 바이어들이 여기로 다 모이거든요. 매년 30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큰 행사인데 이번에 경기도에서 거의 대부분을 지원해 줘서 아주 커다란 힘이 됐어요.

농민들이 반드시 관(官)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가 선구적으로 선인장 산업에 투자를 한 덕분에 저희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시장의 경우 5000달러로 시작해서 현재 3만-4만 달러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른 나라 거래처도 이런 식으로 조금씩 키워 나가야죠. 농민들은 바깥을 보고 전략을 짜야 할 것이고 정부는 목소리가 큰 쪽보다는 사업이 되는 쪽에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해요.

연신 거침없이 얘기하는 고덕원예무역 김건중 대표의 말투는 농민들이 늘 ‘피해자’로서 침울해 하고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정부에 대해서도 생색내기식의 막대한 지원보다는 소액이라도 냉철한 지원을 해 주길 주문하는 이 농사꾼의 머릿속에는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인터뷰 / 사진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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