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공장에서 인삼을 재배하다
로봇 공장에서 인삼을 재배하다
  • 이원우
  • 승인 2013.11.26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농업이 미래다] (주)애그로닉스 주종문 대표

작렬하는 태양. 흐르는 땀방울. 오랜 기다림….

‘농업’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들이다. 우리는 항상 그들을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농업시장의 개방은 곧 제국주의에 대한 패배이며 굴복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농업시장의 개방은 속절없이 미뤄져 왔다.

FTA를 ‘기회’로 인식하고, 한국 농업이 살 길은 해외에서 모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농민들은 한국에서 힘없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숫자가 적다고 해서 그들의 색다른 생각이 참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래한국>은 농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조각내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전을 그려낸 농민들을 찾아 인터뷰한다. 그들의 꿈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면 전국팔도 어디라도 달려가 조명할 것이다. 지난호의 경기도 고양시 접목선인장에 이어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인삼이었다.

이 인삼, 어딘지 모르게 특별하다. 밭이 아닌 공장에서 로봇들의 손에 의해 자동 재배되고 있다. ‘식물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장본인은 주식회사 애그로닉스다.

(주)애그로닉스 주종문 대표이사

식물과 공장의 결합, 전통과 기술의 결합

식물과 공장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도 그렇지만 2011년 설립된 애그로닉스(Agronics)라는 사명 자체부터가 심상치 않다. 농업(agriculture)과 로봇공학(mechatronics)의 합성어로 명명된 이 회사의 대표이사 주종문 대표는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특이한 농민(?)이다. 밀레니엄의 설렘으로 온 세계가 요동쳤던 2000년에는 벤처 1세대로 IT업계에 종사하던 그가 지금은 울주군의 공장에서 수경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인삼이 자라는 곳은 일반적인 노지삼이 자라는 곳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로지 수경인삼의 생장만을 목표로 온도, 습도, 빛, 이산화탄소 등이 철저하게 통제된 식물공장 안에서 로봇들에 의해 재배된다.

이 ‘천국’에서 인삼은 일반적인 수삼에 비해 3배 정도의 속도로 자라난다. 이로 인해 1년에 3회 재배가 가능하며 사포닌 함량 역시 2년근 노지삼보다 73% 이상 높다. 주종문 대표는 ‘경상도 싸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애그로닉스의 밑그림을 그려 왔다.

- 특별히 인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여러 가지 품목에 대해 시장조사를 했죠. 경제성이나 시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적절하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삼에만 머무를 생각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인삼은 저희들의 첫 번째 작품이에요.

올해 처음으로 소량이지만 판매까지 완료해 경제성까지 확인했습니다. 아직 생산량이 많지는 않아요. 1년에 4톤가량이고 인삼 뿌리로 치면 5만 주 분량이죠. 대형마트들이나 인삼을 상품의 소재로 이용하는 회사 측에서는 몇 백 톤 단위로 요구를 하거든요. 저희도 대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준비해야죠.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사업이에요.

- 로봇들이 일하는 공장이라 그런지 ‘농업’의 느낌은 전혀 아니네요.

맞아요. 정부당국에서도 와서 보시곤 “이게 제조업이지 무슨 농업이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칭찬같이 들리지만 그게 아니에요. 지원을 안 해주겠다는 뜻이거든요(웃음). 저희가 식물공장을 운영할지언정 산출하는 건 분명히 인삼이고, 등록도 식물재배사로 허가 받은 건데도 농업이라는 인식을 안 가져 주시더라고요.

 

- 그러면 당국에서 받은 도움은 전혀 없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수경인삼을 재배하는 기술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전수받았어요. 요리로 말하면 레시피죠. 기술이 확정된 덕에 저희는 마음 놓고 생산 방식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공장 설립에 들어간 20억이 넘는 비용 중에서 상당액을 지원해 준 것도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었어요. 그 덕에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도 다른 곳보다 3배의 속도로 1년에 세 번 수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농업의 트렌드 자체를 바꾸고 싶다”

- 사람은 관리만 하고 로봇들이 일을 다 하니까 꼭 셀프주유소 같은 느낌인데요. 공간 활용도 굉장히 효율적으로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기존 재배시설의 30% 정도 밖에 공간을 쓰지 않고 있어요. 대부분의 과정이 로봇으로 대체됐고 공정의 시작과 끝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돼 있어요. 현재 저희가 구축한 인삼공장의 효율성과 기술력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일단 인삼을 재배하는 나라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가, 로봇공학에서 앞서가고 있는 일본도 저희만큼 자동화가 돼 있진 않거든요.

- 재배기술만 확립되면 반드시 인삼이 아니더라도 관계가 없겠군요.

물론이죠. 저희가 지향하는 것도 사실은 농업의 트렌드 자체를 바꾸는 거예요. 요새 유기농에 대한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유기농으로 우리나라의 농업을 떠받친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소량에 대해서 특화하는 거라면 모르지만요. 자동화된 식물공장과 유기농 재배가 서로 양극화되는 구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기농을 선호하는 사람은 다소 비싸더라도 고급화된 작품을 선택하고, 반면 식물공장에서 재배된 농산물 역시 농약을 전혀 안 쓰니까 전반적인 품질은 더 올라가겠죠.

- 지금은 내수에 충실하지만 대량생산이 실현된다면 수출산업으로도 확장될 수 있겠군요.

충분하죠. 또 이 로봇농업이 재미 있는 게, 마치 자동차산업처럼 전후방 연결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 식물을 기르는 거니까 언제든 빛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광원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면 LED 업체들이 연관돼요. 냉난방과 습도관리가 필요하고 로봇까지 들어가니까 기계 산업도 연관되고요. 식물을 길러야 하니까 생명공학도 연결됩니다.

단순히 농작물을 수출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를 수출할 수 있어요. 식물을 키우기 어려운 북유럽이나 러시아, 중동지역 등은 식물공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여러 당사자들을 포섭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저희도 단순히 많이 만들어서 판다는 개념보다는 네트워크 그 자체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가공업체나 생명공학업체는 물론이고 화장품회사, 제약회사, 학교 등과 연결해서 새로운 항암제나 신약 개발을 해볼 생각도 있어요. 공장의 조건만 바꾸면 얼마든지 한 가지 성분이 극대화된 인삼을 표준화해서 재배할 수 있으니까요. 변수가 무한하게 많은 노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 아직은 초기인데 대량생산은 언제쯤 실현될까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려고요. 농업이라는 게 바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서류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지금까지의 과정도 충분히 서두를 수도 있었지만 돌다리 두드리는 심정으로 인내심 있게 천천히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어요.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 새로운 대규모 공장을 건립할 부지를 선정하고 그 다음에 현재의 20배 규모에 해당하는 공장을 지을 생각이에요. 연간 평균 40톤 정도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대형마트나 화장품회사 등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겠죠.

- 최근에 중국의 업자들이 금산에서 고려인삼 씨앗을 가지고 가려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는데요. 중국산 인삼의 위협은 없나요?

일단 중국 쪽의 스케일이 굉장히 큰 건 사실이에요. 백두산 인근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제곱킬로미터(㎢) 단위로 농장을 운영하거든요. 헬기를 띄워서 관리할 정도니까 말 다했죠. 실제로 우리나라 인삼농가 하시는 분들 중에서 크게 하시는 분들은 중국에 땅 보러 다니고 계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문제가 되는 건 저희가 아니라 한국에서 소규모로 인삼 농가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죠.

사실은 인삼종주국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2012년 인삼수출액이 1억8000만 달러였는데 그건 유럽의 한 업체가 인삼 사포닌 성분으로 만든 제품 하나의 매출액보다도 못한 금액이거든요. 우리나라 600개 인삼업체가 다 모여도 유럽업체 한 제품보다도 못한 거예요.

생산과 품질의 혁신 없이는 인삼산업의 존립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한국 상황만 보고 있으면 안 돼요. 부가가치가 높은 곳에 파고들어서 똑똑하게 밀집화(化)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귀농하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도시에서보다 더 힘들다는 건데요. 식물공장의 경우 힘든 일은 기계한테 시키고 관리만 하면 되니까 좀 편할 것 같은데 정말 그런가요?

이것도 일이 적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패턴이 좀 다르죠. 귀농하신 분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저도 많이 봤습니다. 사실 농업이라는 게 결코 낭만적인 게 아니거든요. 온 가족이 달라붙어 하루 종일 7만원어치 마늘을 깠는데 저녁 식사로 2만5천원어치 중국음식 시켜먹으면 참 허탈해지는 거죠(웃음). 농담이긴 하지만 그런 식의 안타까운 광경들이 많아요. 너무 막연하게 낭만적으로만 접근한 까닭입니다.

반면 농업 자동화는 작년 대선 무렵에 유행했던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요. 밤에는 기계들이 알아서 일을 하도록 세팅만 해주면 되니까요.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한 번 시스템이 구축되면 저녁 6시에 깔끔하게 카드 찍고 퇴근해서 가족들하고 있을 수 있어요. 농업을 3D업종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거죠.

농촌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 살 수 있다

- 식물공장이 들어설 수 있는 특별한 입지조건 같은 건 없나요?

사실 저희처럼 대규모로 하려는 계획이 없다면 반드시 넓은 부지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이를테면 저희가 구축한 식물공장 시스템은 옥상형이거든요. 옥상이라고 하면 도심에서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는데 여기를 농업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설계했어요.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를 절감시키는 효과도 있고요. 도시 안에서 농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애그로닉스의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 노하우가 널리 전수되면 경쟁자가 많아져서 고달파지는 것 아닌가요?

천만에요. 저는 오히려 경쟁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시장이 커지고 성숙해질 테니까요. 우리만 대규모로 만들어서 얼른 팔고 이윤을 내겠다는 데에서 그칠 필요가 없어요. 가능성이 무한한 산업이기 때문에 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서 파이가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사진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