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 받은 혁신학교
성적표 받은 혁신학교
  • 이원우
  • 승인 2013.11.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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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혁신학교 31% ‘학력 미달’ … 문용린 교육감 “추가지정 없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혁신학교 학생만을 위한 예산 지원 어렵다"

혁신학교의 역사는 2010년 6월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를 필두로 좌파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역시 혁신학교를 공약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결국 야성(野性)이 강했던 당시 지방선거의 분위기는 서울, 경기, 강원, 전북,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좌파성향 교육감들을 당선시켰다.

혁신학교 모델은 학부모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를 다수 갖추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숫자를 25명 이하로 대폭 줄인다는 점,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권을 확대해 준다는 취지는 자율형 사립고와 같은 제도에 위화감을 느낀 학부모들에게는 최적의 대안으로 생각됐다.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체험학습, 자연교육, 평등과 공동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로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교운영위원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교육감의 허가를 받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연평균 1억 원 정도의 재정이 지원된다. 이로 인해 대다수 혁신학교에서는 체험학습 비용을 받지 않으며 학생이 개별적으로 챙겨야 할 준비물도 거의 없다. 학교가 전부 준비해주는 까닭이다.

만약 자금과 자원이 무제한이라면 혁신학교는 한국 교육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이 희소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지나치게 훌륭한’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다.

겉모습과는 다른 혁신학교의 불편한 진실

나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은 것이기 쉽다. 압도적인 지원을 받는 까닭에 혁신학교가 약속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들은 입학생들을 구름처럼 끌어 모았다.

일례로 경기도 광명시 구름산초등학교에는 혁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잡아내는 기구인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과밀특위)’가 생긴 바 있다. 또한 혁신학교는 학교 주변 전세값을 폭등시키기도 했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포함한 좌파성향단체들이 혁신학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자주 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혁신학교의 ‘공짜 마케팅’이 공적 예산으로 집행된 교육서비스를 복권 추첨하듯 무작위로 배분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국민 세금이 위장전입을 해서 혁신학교에 입학한 사람에게 투입되느라 형편도 어렵고 혁신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가 도출되고 마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주의자들’은 혁신학교를 더 늘리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집행돼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서 모든 학생들을 혁신학교에 보내느니 자율형 사립학교를 늘리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혁신학교의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은 이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을지언정 ‘졸업’시키기는 싫은 결정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학력 저하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10일 공개한 ‘2013년 서울형 혁신학교 평가 연구 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45개 혁신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일반 학교의 80%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14개교(약 31%)가 교육과정과 예산편성 등 10개 평가항목 중 세 항목 이상에서 C등급(개선 요망)을 받았다.

광우병 시위에 나선 협동조합 아이쿱

전교조 교사들 많아 … 협동조합과 닮은 꼴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는 데이터도 있었다. 혁신학교의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초등학교의 경우 일반 학교보다 높았지만 중·고교에서는 낮았다. 한국교육개발원은 “학생들이 학원 등 사교육을 통해 뒤처진 학업을 보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혁신학교에 지원된 교육예산은 학생들에게만이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집행된다. 그리고 혁신학교에는 유독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많이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결국 막대한 예산이 전교조 교사들에게 지원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된 걸까.

혁신학교에 전교조 교사들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대다수 현직 교사들에게 인사평정은 가장 민감한 문제다. 보통 교육부나 교육청으로부터 연구학교, 시범학교 등으로 지정되면 소속 교사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인사평정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경우 교사간의 ‘평등’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에 교사들에게 일체의 가산점을 주지 않고 있다. 이는 비(非)전교조 교사들에게는 불합리한 구조로 여겨지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전교조 교사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초기부터 혁신학교가 전교조 교사들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일련의 상황은 협동조합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탈(脫)이념적이지만 그것이 시의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됨으로써 미묘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른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종북’들이 기반을 마련하고 노동을 할 수 있는 원점으로서 협동조합이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협동조합 아이쿱의 경우에서 보듯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협동조합들이 광우병 시위와 같은 정치적 이슈가 터졌을 때 얼마든지 반(反)정부의 숙주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다. 이 공간이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위기에 처한 전교조의 입장을 설명하고 정치적 현안을 편향적으로 변명하는 공간이 된다면 기존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학교를 그저 여러 형태의 학교 중 하나로 마음 편하게 바라보지 못 하는 이유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혁신학교 관련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한 데 이어 추가 지정까지 당분간 중지할 방침을 밝혔다. 성적표를 받아든 혁신학교의 미래에 또 다른 주사위가 던져졌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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