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뉴스9’ 감상문
‘손석희 뉴스9’ 감상문
  • 이원우
  • 승인 2013.11.28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왼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를 만들겠습니다.”

JTBC 손석희의 뉴스9이 시작된 지난 9월 무렵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에 등장한 말이다. 손석희가 직접 썼다는 이 문장은 나를 무섭게 했다. 이것은 뉴스9이 이 세상을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으로 나눠 보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손석희가 중립적인 사회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편향(偏向)이라는 낱말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편향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힘’이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이 세상을 분할한 뒤 한쪽에게 ‘두려움’을 주겠다는 것이야말로 편향적 자세다.

그렇게 뉴스9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4개월째다. 최근까지의 반응은 ‘기대만 못 하다’ ‘손석희 별 것 아니었다’ 등으로 요약된다. 1% 전후의 시청률에 그나마 9월 27~30일 간에는 종편 채널 중 꼴찌를 기록하면서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손석희는 이대로 끝난 것일까?

내 예감은 달랐다. 그래서 지난 11월 18일 월요일, 펜과 메모지를 들고 뉴스9을 ‘감상’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뉴스9은 보수진영, 나아가 자유시장경제에 충분히 위협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분석한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다. (왜 하루밖에 관찰하지 않았느냐고 묻지는 말아주시길 바란다. 나는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tvN 시트콤 ‘감자별’의 팬이니까.)

45분간의 ‘감성 질주’

11월 18일은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에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손석희는 날씨와 관련된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다음과 네이버를 통해서 만나게 된 시청자들도 환영한다”고 반겼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생중계된다. 뉴스9의 포인트 하나: 이것은 인터넷 세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이다.

18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날이기도 했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순경과 몸싸움을 벌이며 뜨거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뉴스9이 시정연설의 내용을 요약했을지언정 강기정과 관련된 내용은 그저 언급만 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감히 그 이유를 추측하지는 않겠다. 다만 매일 오후 미래한국 2PM 칼럼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그 날 가장 뜨거운 인물이 강기정이었다는 점만큼은 확언할 수 있다.

세 번째 뉴스는 시정연설에 대한 여야의 반응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국회의원 1명씩을 전화로 연결해 의견을 들어보는 순서가 이어졌다. 상당히 중립적으로 진행하고자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스9의 포인트 둘: 이것은 MBC ‘100분 토론’ 역사상 최고의 사회자로 평가받는 손석희의 장점이 전면에 부각된 프로그램이다.

굵직한 뉴스가 지나가자 그때부터는 좌우간의 균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뉴스9이 보도한 다섯 번째 뉴스는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새누리당 재입당 소식이었다. 그의 성추행 경력 역시 놓치지 않고 짚었다. 분명 그날 있었던 사실(fact)이긴 하지만, 이게 다섯 번째로 중요한 뉴스였던가?

그러더니 다음으로는 참여정부 조명균 前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스튜디오로 불러 NLL 대화록 문제와 관련된 ‘피의자의 변명’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이날의 뉴스9이 매우 편향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 결정적인 뉴스는 뒤의 2개였다. 그 중 첫째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분향소를 옮겼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뉴스9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을 현장 연결해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전부 들어줬다. 손석희의 마지막 인사는 거의 응원처럼 들렸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그 다음으로 나온 북한 마식령 스키장 ‘홍보’ 뉴스였다. 최신식 시설로 설계된 이 스키장이 외화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며 광고 영상에 가까운 화면을 띄운 것이 이날 뉴스9이 다룬 북한 뉴스의 전부였다.

그날은 중국 쿤밍(昆明)에서 동남아시아 3국을 통해 입국하려던 탈북자 13명이 공안에 붙잡혀 압송될 것으로 알려진 날이기도 했다. 뉴스9의 포인트 셋: 방송이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아예 뉴스의 소재 자체가 편향적으로 선택된다.

뉴스가 끝날 무렵이 되자 특이하게도 젊은 남성 기상캐스터가 나와 내일의 날씨를 예보해줬다. 그러더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에는 이루마의 연주곡 ‘Be My First - 그 길엔 눈이 내린다’가 흘러나왔다.

뉴스9은 매일 이렇게 마지막 음악을 바꿔가며 그날의 테마를 감성적으로 매듭짓는다. 이 구성의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뉴스9의 포인트 넷: 이것은 20~40대의 ‘여성’을 겨냥한 프로그램이다.

TV조선은 뭘 하고 있나?

나는 뉴스9에게 중립성과 균형성을 추구하라고 말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들에게는 쌍용자동차와 마식령 스키장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수 있다. 균형은 착각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편향의 자유’가 있다.

다만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들 - 이를테면 TV조선에게 묻고 싶다. JTBC와는 다른 관점, 다른 뉴스를 보도할 ‘자유’를 왜 허비하고 있는가? 뉴스9의 현재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이 프로그램을 뇌리에서 지워버린다면 TV조선은 훗날 대단히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시청자의 하나로서 현재의 부실한 뉴스 프로그램에 개혁을 촉구하는 바다.

(※아무런 특종도 특징도 캐릭터도 없는 채널A에 대해서는 기대를 접기로 했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그 방송국의 이름이다. 연극에서 비중 없는 배역들을 남자A 남자B라고 호명하듯, 그들은 스스로 매우 겸손한 채널 이름을 지음으로써 존재감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실로 닌자 같은 방송국이다.)

손석희의 끝인사는 매일 똑같다.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이 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미국 HBO의 드라마 ‘뉴스룸’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크게 성장할 ‘우연한 계기(black swan)’일 뿐, 능력이 없어서 이 모양 이 꼴로 고전하는 게 절대 아니다.

광우병 파동이 우파의 열세로 귀결된 기점은 ‘원래는 정치에 관심 없던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순간부터였다. 그 장면이 재현되는 걸 보기는 절대로 싫은가? 그렇다면 조갑제 기자를 불러놓고도 저열한 질문밖에 던지지 못하는 지금의 TV조선 뉴스앵커들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차라리 정미홍 앵커는 어떤가? 학습만 잘 됐다면 무명의 여성앵커를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TV조선이 ‘강적들’ 같은 어이없는 짝퉁이나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의 FOX뉴스를 지향하며 크게 한 판을 붙여볼 타이밍이다.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