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영화, 풍요속의 불안
2013 한국영화, 풍요속의 불안
  • 미래한국
  • 승인 2013.12.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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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2013년 한국영화는 넘치고 넘쳤다. 흥행이 잘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월별 단위로 보면 한국영화가 시장을 압도하는 현상이 수시로 등장하고 연간단위로 보더라도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의 체감 분위기로는 일방적인 싹쓸이 수준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영화 관객이 1억명(11월 20일)을 넘어섰지만 올해는 그보다 빠르게(10월 31일) 그 기록을 넘었다. 1999년 ‘쉬리’가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이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흥행 목록을 보더라도 상위 10편 중 8편을 한국영화가 차지할 정도다. 올해 흥행 최고는 ‘7번방의 선물’이 1280만 명을 돌파했고 ‘설국열차’(932만), ‘관상’(913만)이 뒤를 이었으며 ‘베를린’(715만),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 ‘숨바꼭질’(560만)들도 500만 명을 넘겼다. 대작이라는 미국영화 ‘아이어맨3’(900만), ‘월드워Z’(523만)도 한국영화의 융단폭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국영화 열풍, 다양성은 없어 … 이념 영화도 많아

흥행이 잘되고 분위기가 들뜨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과열상태가 아닌지 불안함도 떠 오른다. 국내 관객이 한국영화로 몰리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이 넘는다. 간간이 얼굴을 디미는 미국영화 몇 편을 포함한다 해도 우리 관객은 한국영화에만 몰리는 듯하다.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성과라고 할 만한 흥행은 없다. 우리끼리 우리영화만 줄창 보고 있는 셈이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호혜적인 교류도 빈약하다.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지슬’은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오락이라고 하기에는 실제 사건을 깊게 끌어들이고, 다큐라고 하기에는 슬그머니 픽션을 더하며 초점을 흐린다.

결과적으로는 한국 현대사를 좌파적 관점으로 평가하려는 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천안함 프로젝트’와 함께 영화가 이념선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올해의 사례들 중 하나.

영화 관련 기관이 부산으로 이전한 것도 올해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10월에 서울에 있던 본사를 부산으로 옮겼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한 데 이어 영화진흥위원회까지 부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됨에 따라 부산은 영화행정까지 포괄하는 도시로 변모하게 됐다.

영진위의 부산 이전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에 다른 기관들의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추진한 것이다. 이전 비용과 부산 사옥 등 관련 시설 건립은 서울의 사옥과 남양주 종합촬영소 시설을 매각하는 대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 사옥은 매각이 완료됐으나 남양주 촬영소는 몇 차례 매각 공고를 냈지만 계속 무산된 상태다. 결과적으로 영진위 이전은 적절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선 이전만 한 상태인데, 현재 상태에서 부산에 새로운 사옥과 촬영소까지 마련하겠다는 계획은 빚을 내서 추진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과연 계속 필요한가

더불어 지금까지 서울이나 그 주변에서 진행되던 여러 가지 지원 시스템이 모두 부산으로 이전하는 상황은 서울을 공동화 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낭비와 비효율이 있나 싶을 정도다. 지역에 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균형 배치를 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마땅하다.

또 다른 문제는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지원기관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라는 점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1971년 2월 13일에 민간기구로 발족한 영화진흥조합이 1973년 정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로 개편되고 당시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체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기관이나 조직이 출발하던 때의 한국영화 사정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영화제작에 필요한 자본은 취약했고 인력의 규모나 수준도 미약했다. 배급 유통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가 산업적 활력을 키우며 자립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육성은 성과와는 무관하게 필요성에 대한 당위는 있었다. 그 같은 인식에 따라 난립하고 있던 영세한 영화사들을 통폐합하도록 해서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하는 한편 외국영화 수입제한(외화쿼터),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제(스크린쿼터) 강화, 제작지원, 기반시설 지원과 인력양성(한국영화아카데미)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지원 사업을 펼쳤다.

일부 사업에서는 성과를 낸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부의 과도한 지원과 보호가 영화 시장을 교란하거나 왜곡시키는 현상이 더 많이 드러났다. 지원 정책이 강화될수록 한국영화의 질은 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과 수입 분야의 개방(1986년), 스크린쿼터 축소(2006년) 등 전면적인 경쟁체제로 전환한 이후 한국영화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민간의 역량은 커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존립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영화는 들뜨고 흥청대기는 했지만 과도한 열기와 집중, 정책의 표류 같은 불길한 기운이 스멀거리는 2013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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