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철도 민영화가 실패라는 거짓말
영국 철도 민영화가 실패라는 거짓말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2.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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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영국 철도 민영화의 실패이야기다.

요금이 민영화 이전에 비해 최고 400%나 올랐다느니, 열차 통근자의 요금이 소득의 25%를 차지한다느니, 민영화 이후에 회사들의 이윤 추구로 안전성이 훼손돼 사고가 잦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영국의 철도 민영화를 지나치게 반시장적 입장에서 본 이야기들이며 심지어 정확하지도 않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의 결과는 철도 이용객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 진실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 보자.

영국의 독립적인 시민교통 연구기관인 ‘Passenger Focus’는 매년 국민들의 교통만족도를 설문 조사하여 발표한다. ‘국민교통조사’(NPS)라는 이 보고서는 영국 전역에 걸쳐 약 6만명의 철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총 100여개에 가까운 항목의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설문 통계를 내왔다.

2013년 봄에 이뤄진 NPS의 철도 이용자 만족도 지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철도 민영화 실패와는 거리가 멀다.

우선 이번 조사에서 영국의 철도 이용자들의 82%가 철도 서비스에 만족감을 보였다. 이 수치는 2012년 가을 조사에서 나타난 85%의 만족도에 비해 조금 떨어진 수치다. 민영화된 열차회사별로는 75%에서 95%의 범위로 승객들은 철도 서비스에 만족감을 보였다.

영국의 철도 이용자들이 1996년 철도 민영화를 계기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증한 사실과 민영화로 1700대의 열차가 늘었다는 사실은 영국 철도 민영화가 수요자 관점에서 성공적임을 말해준다. 철도의 안전성 역시 초기 민영화의 부작용이 개선돼 2013년 유럽철도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영국 철도가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철도로 평가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英 철도

그렇다면 우리 철도노조와 민주당과 진보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영국 철도 민영화의 실패라는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1월 영국의 BBC는 ‘민영화로 철도요금 올랐나 내렸나’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일단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철도 민영화 20년이 지난 현재 철도 요금이 많게는 400%이상 올랐다는 인식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BBC가 국민 인식에 의문을 표하는 제목을 달았던 이유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가 영국 노동당이나 노조, 그리고 좌파 단체들의 주장처럼 ‘일방적인 실패’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가렛 대처 정부에서 준비돼 1993년 제정된 영국의 철도회사법은 그동안 정부가 독점 운영하던 철도사업을 민영화로 돌렸다. 이때를 기준으로 2013년 상반기까지 영국의 인플레율은 약 60%에 달했다. 이 기간 영국의 철도운임은 두 가지 형태로 크게 나뉘어 있었는데 민영회사들이 책정하는 요금과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묶어 놓은 요금으로 대별된다.

이때 정부가 통제하는 요금은 ‘시즌티켓’이라고 해서 집과 직장을 열차로 통근하는 사람들의 정기권 요금제다. 이 요금의 인상률은 민영화 이후 철도 구간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대부분 인플레이션율에 준하는 60%대보다 약간 높거나 낮았다.

반면에 장거리 이용요금이나 예약티켓의 요금 상승률은 구간별로 많게는 200%에 달하기도 했다. 쉽게 설명하면 열차를 주로 사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요금 부담이 없었던 반면 여행이나 장거리 출타의 승객들에게는 이전 보다 훨씬 높은 요금체계가 적용됐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영국의 철도 민영화가 요금 상승을 가져왔다는 것은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요금체계를 합산한 결과다. 하지만 수요자별로 요금체계가 달랐기 때문에 실제로 철도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은 요금의 큰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장거리 여행객들의 경우 요금이 오른 만큼 영국의 기차들은 출발과 도착시간이 정확해졌고 열차내 환경과 서비스는 몰라보게 좋아진 점에 만족했다. 이 점이 승객들이 철도 민영화에 불만을 갖지 않게 된 배경이다.

 

국민들이 민영화에 만족한 이유

물론 철도 민영화 이후 초기에는 사고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가 노선을 함께 민영화한 것이 아니라 열차 운행만을 민영화했기 때문이었다.

철도 민영화로 열차 운행은 급증했지만 70% 이상 감원된 철도 공무원들로서는 선로 보수 유지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철도 민간회사들이 선로에 투자하지 못하는 바람에 선로의 피로 상태를 철도회사들이 파악할 수 없었던 점이 사고의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안정화돼 가고 있는 추세다.

영국 철도 민영화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사실 효율성이다.

일본 국철 민영화와는 달리 영국 철도 민영화는 시장지향적이 아니라 정부가 통근자들의 철도요금을 묶어 두는 대신 철도회사들에게 보조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영국 철도의 비용 분석은 비용-편익면에서 분명하게 평가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 문제로 일부 철도 민영화 비판자들은 민간 철도회사들이 요금을 올릴 대로 올린 후에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수익을 내는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철도회사들의 복잡한 요금체계로 인해 승객들은 시간별로, 구간별로 요금의 차등제를 적용받음으로써 같은 구간의 열차를 탈 때마다 요금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철도 민영화 비판자들은 민간 철도회사들이 ‘요금 장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한 비난들은 영국 철도를 다시 국유화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영국 정부가 민영화된 철도를 다시 사들일 정도의 재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철도 이용자들이 원하지 않을 거라는 여론이 유력하다. 아무도 과거의 비좁고 더럽고 냄새나며 제 시간에 맞춰 오지 않는 열차를 더 이상 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철도 민영화는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과연 통근자들에 대한 요금 혜택이 정의로운 것이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선뜻 하지 못한다. 이미 영국 철도 산업은 수요자를 향해 진화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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