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북한 권력
영화 같은 북한 권력
  • 미래한국
  • 승인 2013.12.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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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보스의 여자를 좋아하다가 죽도록 혼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더러 있다.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2005)은 범죄 조직의 보스가 아끼던 애인이 바람이 나는데 상대는 옛날 남자친구다.

모멸감과 분노에 치를 떨던 보스는 남몰래 심복 킬러를 보내 걸리적거리는 녀석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냥두면 애인도 잃어버리고 권위도 잃어버릴 판이다. 그런데 정적을 없애라고 보낸 킬러가 사고를 친다. 맡은 일을 실행하려는 대목에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목표물을 살려 보낸다.

아마도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린 때문일 것이다. 이 일로 상황이 역전된다. 킬러는 조직의 목표물로 바뀌고 피바람이 분다.

이미숙 안성기 주연의 ‘내시’(1986)는 궁녀를 좋아하다가 죽음에 내몰리는 내시 이야기를 그린 경우다. 오래된 미국영화 ‘왕과 나’(1956)에도 왕궁을 지키던 호위무사와 도망가는 궁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두 사람은 연인사이였지만 왕의 여자가 된 이상 한눈을 판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케빈 코스트너와 매들린 스토우 안소니 퀸 출연의 ‘리벤지’(1990) 역시 보스의 애인과 위험한 사랑에 빠졌다가 피의 복수를 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영화는 모두 최고 권위에 도전(의도적이든 아니든)했다가 불경죄로 죽음으로 몰리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결론은 대체로 분노하던 권력이 오히려 무너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분노하는 권력은 이미 권력으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권위에 도전, 결과는 비참한 최후

2013년 말 북한 최고 권력 서열에 있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갑작스런 처형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다. 김일성 시절부터 최고 권력자 주변에서 충성을 맹세하며 실세 권력 서열에 들어 있던 인물을 갑작스럽게, 처참한 방법으로 극형에 처한 일은 북한을 주시하던 모던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북한 방송은 ‘군대를 동원해 정변을 획책했다’고 발표하면서 온갖 험악한 수사를 갖다 붙였다. 죽어서도 묻힐 땅이 없다는 식의 표현도 나왔다. 처형당한 뒤 화염방사기로 소각처리됐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장성택이 권력을 바꾸려는 모의를 했다 하더라도 처벌 과정은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고도 남았다.

김정은은 가혹한 처벌을 통해 경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 권력이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데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히려 권력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은 덤으로 얹었다. 안정된 권력이었다면 반역의 기운이 자랄 틈이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살벌한 방법으로 처단하지 않아도 우습게 여길 세력이 있었을까?

그런데 더 궁금한 것은 그 후의 분위기다. 북한의 발표대로라면 장성택이 인맥과 자금을 동원해서 계획적으로 반역을 기도한 것이 분명한데 그것에 비한다면 뒷풀이가 너무도 조용하다. 장성택의 반역 음모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북한 내부도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권력의 동향은 관계 전문가들이 분석할 일이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내놓는 곳은 없다. 추측과 추정만이 오갈 뿐이다. 그만큼 북한 사회가 폐쇄적이며 권력 주변의 동향에 대해서는 더 미궁 상태다.

‘리설주 게이트’의 진실은?

그 중의 하나는 장성택과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의 이상한 관계다. 장성택이 은하수 관현악단에 리설주를 가입시켰다가 김정은에게 추천까지 했다는 설이다. 말하자면 김정은과 리설주의 중매를 한 셈인데 관현악단들이 출연한 음란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상황이 묘하게 비틀린다.

 

리설주도 동영상에 등장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장성택과도 그렇고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진다. 연결하면 자기가 희롱하던 여자를 보스에게 상납한 불경을 저지른 셈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추측과 상상력을 동원해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면 ‘보스의 여자를 훔쳐본 심복의 배신’을 플롯으로 설정할 수 있다.

멋진 여자를 소개해주며 충성을 다하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썩은 사과를 건네줬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폭발하자 반역의 누명을 씌워 단칼에 처단한다는 구성이다. 자신의 여자에 대한 추문을 공식화한다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무너트리는 것이나 같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서둘러 처단한다는 장면은 영화적 구성에서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하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로마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고 반역자의 머리를 성문 앞에 내다 걸어도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지 못한 사례는 역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사태의 진실이 무엇이든 북한 ‘최고 존엄’의 권위는 심각하게 흔들린다는 것을 드러냈다. 공포를 앞세워 추스를 것인지, 맥없이 무너질지는 알 수 없다. 김정은이 주연하고 연출하는 권력투쟁을 소재로 한 조폭영화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2014년의 다음 장면이 어찌 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일은 드라마틱한 긴장감이 넘친다.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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