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12.3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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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두 영장류의 DNA는 98%까지 동일하다. 이 2%의 차이가 인간의 그 무엇인가? 그렇긴 하지만 수치상으론 좀 작아 보인다.

사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지나치게 유사하다. 인간만의 특질로 보았던 많은 요소들이 침팬지 등 대형 유인원뿐만 아니라 그보다 덜 진화한 원숭이에서도 발견된다. 영국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인간을 아예 “털 없는 원숭이”라고 했다.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다. 도구를 만드는 존재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인간을 정의한 인류학자도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도구를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도 널리 통용된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선 인간의 조상인 유인원이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이 멋있게 묘사된다. 그런데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개미집 구멍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어 개미를 잡아먹는 정도가 아니다. 단단한 껍질을 가진 열매를 돌을 사용해 깨뜨려 먹기도 한다. 어떤 침팬지 무리가 몇 세대에 걸쳐 한 곳의 바위 위에서만 열매를 깨뜨려 먹어 바위가 움푹 패여 있는 사례도 있다.

문화는 어떨까? 확실히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 인간에겐 어떤 점에선 생물학적 유전보다 문화적 유전이 더 중요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도 인간에겐 생물학적 DNA 이상으로 문화적 자기복제자 밈(Meme)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문화체계와 전승구조는 인간집단의 두드러진 특징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조금 무리해서 보자면 동물에게도 문화라 할 만한 게 있다. 침팬지는 물론 많은 영장류가 서식지의 조건에 따라 각각 독특한 삶의 양식을 갖고 있다. 만약 단지 타고난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습되고 세대 전승으로 이어지는 삶의 양식을 문화라 한다면 이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

영장류만이 아니다. 코끼리도 나름의 문화가 있다. 코끼리는 문화 밖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특정의 코끼리 무리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 염분을 섭취할 수 있는 장소 등을 대대로 전승해 준다. 그래서 무리에서 탈락하게 되면 사실상 생존이 힘들게 된다.

동물에게 나름의 의사소통체계도 있다. 침팬지는 여러 가지 구분된 소리와 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습득시키는 실험을 한 영장류 학자도 있다. 코끼리는 특유의 저주파음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는데, 고래도 비슷하다.

어느 고래학자는 만약 외계인이 언어를 주제로 지구 생물을 연구한다면 혹등고래의 신호체계가 가장 고도화돼 있다고 볼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그 내용을 해독하지 못할 뿐, 집단적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종류의 동물은 의사소통을 위한 나름의 신호체계가 있다.

장 자끄 아노의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가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불을 접하고 마침내 두려움을 넘어 스스로 불을 지펴 사용하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된다. 분명 인간은 동물 가운데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용하는 유일한 종이다.

그런데 라이터로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침팬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물론 이것은 특수한 사례다. 하지만 어떤 영장류 학자는 침팬지에게 총을 주고 사용법을 가르친다면 그들도 그것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치를 인간의 특징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를 둘러 싼 인간의 온갖 갈등과 지략의 난무를 보면 어느 동물이 인간 같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 (Chimpanzee Politics)>를 보면 그렇게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을 탐구하는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는 인간의 인간다운 특징이 아니라 차라리 동물다운 면모다. 드 발의 관점에선 인간은 정치적 행동의 특성에서 침팬지와 구분이 없다.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게 달라 보이는 인간 특유의 행동양식 하나를 주목해보자. 그것은 바로 교환이다. 침팬지 세계는 속된 표현으로 힘센 놈이 임자다. 욕망의 충족은 그것이 먹이든 성적 기회든 힘의 서열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인간은 교환을 한다.

인간 세계에도 힘의 서열은 있지만 인간은 욕망의 충족을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인간은 주고받는 교환행위를 통해 충돌을 회피하며 욕망 충족의 기회를 확보하는 법을 안다. 독일의 인류학자 페터 푹스(Peter Fuchs)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에겐 비즈니스 유전자가 있다.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아니 달리 표현하면 교환이 바로 인간의 태초다. 인간은 어떤 계기로 교환이라는 행동양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써 다른 모든 유인원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됐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욕망의 존재다. 욕망은 생명력의 본성이며 존재의 권리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결코 선악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의 추구는 당연히 충돌을 낳는다. 힘겨루기를 하고 싸우고 그 승패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고 그 서열을 통해 욕망의 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좀 다르다.

교환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이 되다

인간 사회에서도 서열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서열은 결코 육체적 힘만으로 결정되지도 않을 뿐더러 서열만으로 욕망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인간은 매우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갖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교환이다.

침팬지 사회는 폭력지수가 좀 높다. 인간 사회의 100배 정도까지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이 수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침팬지 사회는 문제 해결을 일상화된 폭력에 크게 의존한다.

인간이라는 ‘털 없는 원숭이’도 침팬지의 이웃답게 곧잘 힘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은 폭력만으로 갈등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만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사회조차도 많은 갈등을 호혜적 교환으로 해결한다.

교환은 자아와 타자에 대한 동시자각이라는 상호성을 전제로 한다. 상호 공동의 이익을 위한 교환! 이때부터는 확실히 인간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인간은 교환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교환행위가 재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거래라고 부르는데 쉬운 말로 ‘장사’다. 인간은 장사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상행위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역사 이전부터 이미 물물교환이라는 거래를 했다.

경제의 본질은 체계화되고 고도화된 교환행위다. 거기에는 상호성에 대한 자각, 자기 이익에 대한 타산, 공동 이익의 균형점에 대한 통찰 등 인간의 고도화된 정신활동이 모두 집약돼 있다.

상행위에는 어쩌면 문학의 뿌리였을지도 모를 달콤한 거래 언어의 수사도 동원된다. 수학의 기원이 됐음직한 계산도 빠지지 않는다. 거래 기록의 필요가 문자를 낳았을 수도 있다. 문명이 상거래를 낳았을까 아니면 상거래가 문명을 낳았을까? 후자다.

좌익적 발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행위를 불결하게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행위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호모사피엔스의 빛나는 자랑이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할 줄 아는 지혜가 문명을 낳았다. 상(商)의 반대편에 서면 나라가 망하고 문명도 몰락한다. 인간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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