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모양 한국전 기념비 60년 만에 철거 운명, 왜?
십자가 모양 한국전 기념비 60년 만에 철거 운명, 왜?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1.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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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솔데드 산 위에는 십자가 모양의 한국전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세워진 이 기념비는 25년 전부터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여와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연방 법원은 결국 지난 12일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연방 정부 소유의 공공지인 이 산 위에 세워지는 것은 정교 분리라는 헌법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철거를 판결했다. 향후 90일 내 항소가 없으면 60년 동안 솔데드 산 위에 자리하고 있던 십자가는 사라지게 된다.

발단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신론자이자 베트남 참전용사인 폴슨은 십자가 모양의 이 참전기념비는 기독교인이 아닌 참전 용사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철거를 주장했다.

그는 솔데드 산은 샌디에이고 시 소유의 공공지이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모형을 두는 것은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라며 철거해야 한다고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제소했다.

12월 12일 철거 판결

주 법원은 그의 주장을 수용, 특정 종교 상징물을 공공지에 두는 것은 캘리포니아 헌법에 위배된다며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참전기념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이는 십자가 형태일 뿐 참전기념비라며 철거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샌디에이고 시는 참전기념비와 그 지부를 솔데드산기념사업회라는 비영리단체에 팔았다. 그 지역을 시 소유의 공공지가 아닌 민간 소유로 만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법원은 십자가와 그 밑의 땅만 파는 것은 시 정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것으로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2005년 샌디에이고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했다. 십자가 모양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기독교를 상징하기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조형물이라는 내용이라는 주민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기독교를 명백히 상징하는 십자가가 시 공유지에 세워지는 것은 헌법 위반이고 주민투표 의견 역시 위헌이라며 샌디에이고 시에 그해 8월까지 십자가 모양의 참전기념비를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교회 및 기독교 단체들은 십자가를 지켜야 한다며 참전기념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기독교 가치로 건국된 미국에서 십자가가 철거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였다.

역시 철거를 반대하던 던칸 헌터 등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연방의원들은 대안으로 샌디에이고 시 소속의 이 산을 연방 정부가 수용·관할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연방 정부가 이 산을 소유하게 되면 주법이 아닌 연방법에 따라 참전기념비가 관할되는데 연방법은 캘리포니아 주법보다 공공지에 특정 종교 상징물을 전시하는 데 유연하기 때문이었다.

그 법안은 연방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고 2006년 8월 1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법률로 확정됐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법안 서명을 두고 그가 십자가를 지키겠다는 사람들 편에 확고히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정교분리를 이유로 대립하고 있는 사건에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평가됐다.

연방 대법원도 유사한 판결

하지만 무신론자 참전용사 등은 다시 소송을 제기, 연방 정부가 소유한 공공지에도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된다고 계속 주장했다. 2011년 연방 제9순회 법원은 연방 정부 소유의 공공지에 십자가가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철거를 반대하는 측은 연방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심의를 거부하고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연방 순회법원은 지난 12일 철거를 명령했다. 연방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으면 솔데드 산 위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한국전 기념비는 철거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기독교의 상징들이 공공장소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미 시청 등 많은 공공장소에서 십계명을 새긴 조형물과 아기 예수 탄생을 보여주는 조형물들은 철거됐다. 무신론자들은 더 나아가 충성서약에 있는 ‘신 아래서(Under God)’와 화폐에 쓰인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 표현에서 ‘God’이라는 단어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텍사스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 법’이 통과됐다. 텍사스 주 내 공립학교 교사나 직원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학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거나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공립학교에서는 기독교 등 특정 종교를 나타내는 행위 등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사회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할리데이’(Happy Holiday)가 미국 사회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비기독교인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교분리원칙과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포용을 이유로 미국 사회에 깊이 배어 있던 기독교 색채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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