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말(馬)
영화 속의 말(馬)
  • 미래한국
  • 승인 2014.01.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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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세상 말들 중에서 가장 억울하게 죽은 경우는 신라시대 김유신의 말이 아닌가 싶다. 천관녀라는 기생을 좋아해 자주 그 집에 들른 덕분에 말도 길을 알고 있었던 터다. 주인이 워낙 자주 들락날락 하다보니 훈련이 된 것이다.

그런데 김유신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심히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큰일을 하겠다는 녀석이 기생집이나 들락거리다니 네가 제정신이냐 하며 야단을 쳤을 것이다. 아들도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김유신은 다른 이유로 술에 취한 채 말을 타다가 가물가물 졸았는지 말머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말은 주인이 늘 하던 대로 천관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고, 오랜만에 김유신을 본 천관녀는 반색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소란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인지, 술이 깰 때쯤이 된 것인지 하여튼 김유신은 정신을 차렸는데, 상황은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억울하게 죽은 말, 생고생만 한 말, 잘 달리는 말

어머니와는 약속을 했고, 왜 자주 오지 않느냐며 칭얼거리는 천관녀에게도 장부가 뜻을 품었으니 앞으로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이다 어쩌고 하며 폼을 잡았을 것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도 수군거리며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술 취한 사이, 말이 다니던 기생집 앞에 떡 등장하게 만들었으니 이런 낭패가 있나!! 김유신은 모든 책임을 말에게 덮어 씌우기로 작정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척하며 말의 목을 칼로 친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을 죽여 위기를 벗어나려는 행동이다.

말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에게 충성한 것 밖에 없는데, 그것이 죄라고 불문곡직하고 목을 치다니. 자르려면 자기 팔이나 다리를 자르든지 아니면 죽든가!! 그래서 ‘죽은 말(馬)은 말(言)이 없다’는 말이 나왔나? 믿거나 말거나!!

억울하게 죽은 말은 또 있다. 미국 영화 ‘대부’(1972)에는 말대가리로 영화제작자를 협박하는 마피아 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조니라는 가수는 영화 출연에 욕심을 내지만 제작자는 펄쩍뛰며 반대한다.

그 제작자가 마음에 두었던 전도유망한 신인여배우를 조니가 채간 것에 대해 원한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조니는 마피아 보스를 찾아가 제발 그 역을 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매달린다.

억울한 민원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마피아 행동대들이 나서고, 제작자가 아끼는 경주용 말의 목을 잘라 그가 자고 있는 침대 속에 밀어 넣는다. 그런 협박을 당하고도 버틸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 제작자는 손을 들고 조니를 영화의 주연으로 기용한다.

마피아를 동원해 배우가 됐다는 영화 속 에피소드는 가수 겸 배우였던 프랑크 시나트라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소설의 원작자이자 영화의 시나리오작가였던 마리오 푸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래도 프랑크 시나트라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정도로 고생한 말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는 ‘워 호스’(2011)다. 군인들이 전장에서 타고 다니거나 일을 부릴 때 동원하는 군마(軍馬)라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말 ‘조이’와 주인 알버트는 각별하게 친해지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말은 군마로 징발 당한다, 전장에서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오직 주인에게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끝까지 버틴다.

 

병들고 지친 말을 치료하는 말의 심리치료에 관한 이야기는 ‘호스 휘스퍼러’(1998)라는 영화가 있고 ‘시비스킷’(2003)은 대책 없이 잘 달린 덕분에 경마계의 전설이 된 경주마 시비스킷의 무용담을 다루고 있다.

우리 영화 중에서는 ‘마부’(1961)가 말을 중요한 캐릭터로 설정한 첫 번째 경우에 든다. 6·25 전쟁이 막 끝난 무렵의 서울, 짐수레를 끄는 말은 요즘의 화물트럭만큼이나 귀중한 자산이다. 서울역 주변을 오가며 짐바리를 나르는 마부 하 서방은 바람 잘 날 없는 자식 넷을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홀아비. 말 때문에 웃고 우는 동안, 자식들은 자라고 인생은 흘러간다. 전쟁 후의 가난한 풍경을 아련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말을 등장시켰지만 특별히 연출을 하거나 별도의 훈련을 시킬 필요는 없었다. 수레를 끄는 여러 다른 말처럼 그저 수레를 끄는 모습만으로 충분했고, 별도의 촬영 장소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았다.

‘애마부인’(1982)은 엉뚱하게 말에다 에로틱한 이미지를 덧붙여 야시시한 분위기를 연출한 경우인데, 첫 작품이 흥행 선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11편에 이르는 한국영화 최장 시리즈가 이어졌다. 이후에도 사극영화나 무협 액션영화들 중에는 말이 등장하는 장면이 자주 있었지만 말 자체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경우는 최근에 이르러서다.

‘각설탕’(2006), ‘그랑프리’(2010), ‘챔프’(2011)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배경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말과 사람 사이의 각별한 교감과 우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과 말이 새로운 인생을 향해 도전해 마침내 역경을 이겨낸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존재

하지만 사람이나 말이나 이야기를 극적으로 연출하려다보면 과장이 섞이기 마련. 다치거나 병들거나 나이든 말은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하다. 혹시 다리를 다친 말을 치료한다하더라도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다는 설정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말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한편으로는 감동을 유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턱없는 과장과 왜곡, 비현실적인 상황을 나열한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 속이든 영화 속이든 말이 사악한 모습으로 등장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욕이라면 ‘사쿠라’ 정도가 아닐까. 일본말에서 사쿠라는 벚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쇠고기 속에 섞여있는 말고기’라는 뜻도 있다. 비싼 고기 속에 싸구려를 섞어 속인다는 뜻이다.

한때 지조를 버리고 이익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정치인을 가치켜 ‘사쿠라’라고 욕하던 때가 있었지만 쇠고기 속의 말고기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도 엄밀히 보면 사람이 나쁘지 말이 잘못한 일은 없다.

위엄 있는 생김새, 빠른 속도, 억센 힘을 자랑하는 말은 시대나 지역, 문화권에 관계없이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존재해 왔다. 2014년 새해에는 모두 말처럼 도약하시기를!!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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