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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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4.01.2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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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

음험한 거래를 주도하는 마피아 보스는 사업대상자에게 접근할 때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들이댄다. 남몰래 젊은 여비서와 바람이 난 정치인에게 ‘우리 부탁을 들어줄래 아니면 연애하는 사진을 언론사에 보낼까?’ 라든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으면 당신 딸을 술집에 팔아버리겠어!’라는 식이다.

그야말로 ‘맞고 줄래 그냥 줄래?’라는 식인데, 최소한의 선택권을 상대에게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협상의 모습을 갖추기는 하지만,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잔혹한 폭력이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 1972)는 갱 영화의 전설로 불리지만 장르를 뛰어넘는 걸작으로도 평가받는다. 원작 소설의 명성, 주연을 맡은 말론 브란도를 비롯해 제임스 칸,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 등 조연급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압도적인 연출 등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던 요소들은 많았다.

그보다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부분은 이전의 미국 영화들이 다뤘던 범죄자에 대한 방식의 변화였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아담과 이브, 그들을 유혹하며 나락에 빠트리는 뱀이 등장하고,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은 형제이지만 하느님의 차별에 대한 시기와 분노로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세상을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보며 천사와 악마의 이미지를 상징화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선악의 대립과 권선징악의 찬양은 전설과 신화, 소설, 연극 등의 소재로 변모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과 악당의 모습은 천사와 악마, 영웅과 악당의 현대적인 재현이다.

세계 영화의 앞머리를 열었던 미국 영화에는 특히 영웅과 악당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유럽에서 이주한 청교도 백인들이, 미지의 땅을 개척하고 종교적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당은 대체로 역할이 정해져 있다. 악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문명사회에 잠시 위협을 가하기는 하지만 영웅이 나타나는 순간 판세는 뒤바뀐다. 악당이 가는 길은 크게 반성하며 개과천선하거나 악당으로서의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영화속 세상은 언제나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모든 일은 제자리를 지킨다.

‘대부’는 그런 인식을 밑바탕부터 흔들었다. 마피아 두목 돈 코를레오네는 악당이지만 이지적이며 침착하고, 냉철하기까지 하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아끼고 부당한 폭력에는 가담하지 않으려 한다.

마피아 세력은 자기 세력권 안의 상인들에게서 자릿세나 보호비 명목으로 푼돈을 뜯어내는 정도를 넘어 지역의 경찰이나 판사를 조종하기도 하고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을 보호자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범죄자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

거대한 조직과 막강한 영향력, 현실적 세력으로 존재하는 마피아가 미국의 도시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사회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오랫동안 믿어왔던 미국 사회에 대한 믿음, 법과 정의가 언제나 승리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에 대해 격렬한 비판 여론이 일고,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며 빅 브라더 역할을 하도록 누가 허락했는가 등의 논란이 확산되면서 미국의 정당성에 대한 성찰을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다.

미국 중산층의 허위와 방황, 새로운 각성을 다룬 ‘졸업’, 서부에서 동부로 오토바이 횡단을 하며 미국 청년 문화의 폭발을 그린 ‘이지라이더’, 백인과 인디언 사회를 오가며 자기 정체성을 혼란스러워 하는 ‘작은 거인’, 인디언과 전투를 벌인다면서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무차별 학살하는 기병대의 잔혹한 행태를 그린 ‘솔져부루’ 같은 영화들이 주목 받았다.

미국 사회에 대한 지독한 비판과 반성, 자조를 그린 경향이 이전의 미국 영화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새로운 미국 영화’라는 뜻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또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는 그중에서도 영화를 통해 미국의 다른 모습을 보인 경우로 꼽는다. 이후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피아 범죄 영화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언터처블’에서는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격파하기 위한 재무부의 비밀수사조직 ‘언터처블’(1987)이 등장하면서 법과 정의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을 의리가 넘치고 규율과 예절이 가득한 환상적인 세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종로를 무대로 폭력조직을 이끌었던 김두한을 협객이니 하면서 영웅적인 캐릭터로 미화하는 것이나 홍길동, 임꺽정을 의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 주연의 ‘신세계’(2013)도 보기에 따라서는 범죄조직의 영웅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마피아’라는 말은 여러 곳에 등장한다. 패거리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폐쇄적인 행동을 한다면 마피아의 조직 행태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조 마피아’ ‘공무원 마피아’ ‘국회 마피아’ 처럼 우리 주변에 마피아는 많다.

재무부(현재 기획재정부) 출신 고위 관료들이 경제계, 금융계 등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며 막강한 네트위킹과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모피아’라고 부르는 것이나 원자력 발전소 사업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고위직 인물이 비리 혐의로 논란이 됐을 때도 ‘원전마피아의 두목’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그들끼리만 통하는 세계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라고 하면서도 ‘마피아’가 등장하는 것은 역설이다. 영화 속이든 현실에서든 ‘마피아’가 어른거리는 풍경은 불안하고 불공정하다.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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