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 만으로 농구스타가 된 소년이야기
한 손 만으로 농구스타가 된 소년이야기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1.2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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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고 4분만에 스코어는 9대0으로 벌어졌다. 밀튼고등학교 크래머 코치는 작전타임을 요청했고 벤치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벼락 같은 소리에 선수들은 땅만 쳐다봤다.

“9대0이 뭐야? 연습한 대로 하란 말이야? 정신 차려!”

경기는 다시 시작됐고 9점을 뒤지던 밀튼고는 선수를 교체했다. 3학년 잭 홋드킨(Zack Hodskin)이 투입됐다. 신장 185센티인 잭은 가드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전열을 가다듬고 빠른 드라이브와 패스로 상대편 수비를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상대편이 자기를 막으려는 것을 이용해 동료 선수들이 슛을 할 수 있도록 패스했고 밀튼고는 첫 2득점을 올렸다. 이어 연거푸 3점슛을 성공하며 순식간에 11대9로 역전했다. 고등학교 농구는 분위기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처럼 승기를 잡은 밀튼고는 이후 4쿼터 내내 앞서갔다.

잭이 반칙을 얻어내 자유 슛을 던지게 되자 상대방 응원팀은 야유했다. “너 그래가지고 플로리다 못 간다, 우~” 하지만 백발백중이었다. 잭은 오는 6월 조지아 알파레타에 소재한 밀튼고를 졸업하면 미국대학농구리그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농구 명문 플로리다 대학에서 선수로 뛸 예정이다. 그의 기량을 높이 산 플로리다 대학이 그를 영입한 것이다.

대학리그 가는 한 손 농구선수

그러자 잭은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언론들이 그를 취재했다. 이날도 뉴욕타임스 기자가 잭과 그의 부모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그에 대한 기사 제목은 동일하다. ‘한 손 밖에 없는 농구선수가 플로리다 대학농구에서 뛰다.’

잭은 오른손 밖에 없다. 왼손은 물론, 왼쪽 팔꿈치 아래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그런 그가 농구 코드에서 양손을 가진 다른 선수들과 겨뤄 농구 명문 대학에 영입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큰 감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날 경기장에는 잭처럼 태어날 때부터 왼쪽 팔꿈치 아래가 없이 태어난 8세의 소년 데이비드와 그 가족이 잭이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오기도 했다.

잭은 이날 경기에서 여러 차례 중거리 슛을 하고 빠른 드리블로 골대 밑까지 파고들어가 레이업 슛을 넣는 등 활기찬 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끝났고 결과는 62대48. 밀튼고의 승리였다.

잭의 부모는 오늘은 아들의 슛 성공률이 낮았다며 웃었다. 그들은 잭이 태어난 후 다짐한 것이 다른 두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잭의 부모는 이런 아들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고 잭은 믿었다. 그는 축구, 야구, 서핑, 철인 3종경기, 크로스 컨트리 등 다양한 운동을 했다. 부모는 손을 많이 쓰지 않는 축구를 하라고 권했지만 잭의 마음은 농구에 있었다. “농구 선수가 하고 싶었다. 최고 선수가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의심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잭의 부모는 아마추어 농구대회 코치들에게 아들을 맡겨 한 손으로 드리블과 슛을 하는 등 장애를 최소화하는 훈련을 받도록 했다. 지기 싫어하며 경쟁을 좋아했던 잭은 체육관, 공용 농구장, 잭의 집 뒷마당 농구대에서 연습에 연습을 이어갔다.

 

부모는 잭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자 그동안 살던 테네시 내쉬빌을 떠나 고등학교 농구에 대한 기반시설과 호응이 있는 조지아 애틀란타로 이사했고 농구 명문인 밀튼고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다.

밀튼고 농구팀 코치인 크래머는 처음에는 한 손 밖에 없는 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잭을 만났는데 자신을 다르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그냥 다른 아이들 중의 한 명으로 다루기로 했다. 똑같이 팔굽혀 펴기 시키고 똑같이 대했다.”

장애에 떳떳해야

잭은 팀의 주전선수로 뛰었고 지난해 한 경기당 평균 11포인트, 2.3어시스트를 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잭은 졸업을 앞두고 대학 농구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한 스카우트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경기하는 장면을 담은 1분짜리 비디오를 만들어 1년 전 유튜브에 올렸다. 지금까지 약 400만명이 그 유튜브를 보았다.

플로리다 대학 농구팀 코치인 빌리 도노반은 유튜브를 보고 잭을 자신의 팀에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도노반은 잭과 그의 부모에게 전화해 “우리는 잭을 영입하기로 했다. 잭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잭을 뽑은 것은 훌륭한 농구선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손으로 미국 대학에서 농구선수로 활동하는 사람은 잭이 처음이 아니다. 뉴욕 맨하튼 대학을 졸업한 케빈 류(Kevin Laue)가 처음이다. 신장 2미터의 케빈 역시 오른손 한손으로 미국대학농구리그에서 활약해 얼마 전 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Long Shot : The Kevin Laue Story’가 제작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잭이나 케빈처럼 한 손으로 ‘일’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잭과 케빈처럼 오른손만 있는 한 아가씨가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경우다. 니콜 케일리는 2013년 아이오와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으로 선발됐다. 미국 미인대회에서 한 손의 여성이 우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자라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받았던 시선을 이기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서 ‘NO’에 굴하지 않는 외향적인 성격 또한 배웠다. 나는 야구, 춤, 다이빙 등 시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이 허락되는 곳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니콜은 대학에서 극장 경영을 공부한 후 맨하튼 브로드웨이에서 인턴 등을 하며 무대에 서는 꿈을 키웠다. 그러다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미스 아이오와가 돼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미스 아이오와가 되는 것이 제게 딱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장애는 극복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엄청난 영예이다.”

지난해 6월 8일 그녀가 미스 아이오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미인대회에 출전한 니콜이나 그녀를 미스 아이오와로 뽑은 심판자들에게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경기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잭은 자신을 만나러 온 8세의 데이비드와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에 매우 겸손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 화나는 것이 자기와 같은 장애 아이들이 두꺼운 옷으로 자신의 장애를 숨기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할 필요가 있다. 나를 보라. 농구 코트에서 다 보여주고 뛰지 않은가. ‘이게 나다’하며 당당하게 뛰는 것이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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