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인터넷 디스토피아
영화 속의 인터넷 디스토피아
  • 미래한국
  • 승인 2014.02.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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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영화 ‘네트’(1995)는 전산 기록이 사라지면 개인의 존재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상상한다. 미모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안젤라(산드라 블록)는 새로 나온 소프트웨어의 바이러스나 에러를 분석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는다. 그에게 인터넷 세상은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실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인터넷 주문으로 해결한다. 그에게 세상은 두가지로 나뉜다.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세상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이다. 집안에 앉아서도 필요한 일들을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것이 가능하니 바깥 나들이를 할 일이 거의 없다. 가끔씩 집을 나서는 것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할 때 정도다.

하지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할지어다’라는 말처럼 컴퓨터 전문가는 컴퓨터 때문에 심각한 곤란에 빠진다. 어느 날 안젤라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 의뢰가 들어온다.

늘 하던 일이라 기계적으로 작업을 하던 그가 프로그램의 비밀을 발견한다. 평범한 프로그램이라고 여겼던 그 속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극비 정보사항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된 것.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숨겨야 할 일을 알게 된 그에게 위험이 닥친다.

자신의 존재가 전산 기록에서 사라진다면?

일을 맡긴 친구가 비행기 사고로 죽는가 하면 낯선 사람들이 주변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개인 기록이 하나둘씩 지워진다.

휴가차 멕시코의 어느 휴양지로 떠났지만 그는 점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디지털 난민’ 신세가 된다. 신용카드와 여권을 누군가가 훔쳐 가버리고 난 후 재발급 절차를 밟으려 하지만 전산 기록에서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나타난다.

‘나는 나’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신상 조회가 되지 않으니 아무도 그의 말을 확인할 수 없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고 전산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만이 믿을 수 있는 정보다. 전산 기록에서 사라진 자신의 존재를 찾는 일이 가능할까?

‘네트’는 20년 전 쯤에 나온 영화라 영화 속 인터넷 환경이 요즘 같지는 않다. 집에서 피자가게에 배달주문을 하면, 정말로 배달을 해준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기던 시절이라 극장 예약도 인터넷으로 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외국에 주문하는 일조차 일상이 된 지금과는 여건이 크게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이 주도하는 사회가 됐을 때 개인의 행복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을 반영한 경우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전산망을 장악한 뒤 마음대로 상황을 조종하려는 범죄 조직의 음모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소재로도 관심을 받고 있는데, ‘파이어월’(2006)은 세계 최고의 컴퓨터 보안 전문가가 범죄 집단의 표적이 되면서 자신이 설치한 보안시스템(파이어월)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상황을 다룬다.

 

자신이 만든 방어벽을 뚫어야 하는 운명

잭 스탠필드(해리슨 포드)는 미국 어느 은행의 고위 간부. 해커들의 온갖 위협으로부터 은행을 지키는 일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뚫으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보안 수준이 높을수록 범죄 조직의 접근도 그만큼 진화한다. 범죄 조직은 직접 보안 시스템을 돌파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전략을 바꾼다. 보안 책임자를 이용해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보안 책임자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보안시스템을 풀어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무턱대고 패스워드를 알려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누가 순순히 응할까? 보안책임자의 개인적 취향과 가족들의 시시콜콜 사항을 빈틈없이 들여다보며 파악한 뒤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시작한다. 가족을 지킬래, 회사를 지킬래라며 협박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보안책임자는 자신이 설치한 보안시스템을 뚫어야 한다. 영화는 이 같은 상황을 설정하면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회사 상황을 바꿔 놓는다. 은행이 다른 회사와 합병되면서 보안시스템이 바뀌고, 관련 장비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차단한다. 그에 대한 보안 감시도 강화된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지면서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다. 뚫으면 엄청난 액수의 은행돈을 빼앗기고 못 뚫으면 가족을 잃어야 한다. 적이 풀 수 없도록 채우는 수갑을 자신이 차고 물속에 빠진 꼴이다.

‘다이하드’ 시리즈는 전산시스템을 장악하고는 공공시설이나 도시 전체를 인질로 삼아 협박하려는 조직을 악당으로 설정하고 있다.
LA 경찰서 소속 수사형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아날로그 시대의 베테랑. 뛰고 달리며 치고 박고 하는 수사 방식에는 익숙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범죄 조직의 수법은 점점 진화한다.

그렇다고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따로 배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점점 구세대로 몰리는데,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의 한쪽으로 몰리는 컴맹이다. 시리즈 두 번째 영화 ‘다이하드2’에서는 남미 마약 조직과 연결된 범죄 용병들이 공항 관제시설을 장악한다. 공항에 착륙하려는 여객기들에게 엉터리 관제 정보를 제공하면서 협박을 거듭한다.

 

일상에 잠복한 디지털 재앙

4편에서는 경찰 전산망을 장악한 컴퓨터 전문가가 대도시의 전기, 통신, 교통망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범죄단의 리더는 소수의 힘으로 도시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공군 전투기를 출동시켜 도시를 공격할 수도 있고 개인의 통화에까지 침투해 생활 방식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C 통신 시절이든 첨단 시대의 인터넷 환경이든 각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은 흥미를 끌기 위한 연출이며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는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이 일상 생활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대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통제 사회가 될 수 있으며 안전이 무너졌을 때 대재앙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잠재하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의 디지털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

최근 신용카드 회사의 고객 정보가 노출되면서 벌어진 우리 사회의 대혼란은 디지털 재앙이 일상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영화속 이야기가 마냥 상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전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작용이 무섭다고 인터넷 사용을 그만둘 수도 없고…

조희문 편집위원·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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