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K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이원우
  • 승인 2014.02.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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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트렌드
 

“가수들이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틀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자주 들려온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대중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건 곧 스타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순간의 관심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가수들은 언제나 대중들의 통념을 뛰어넘는 시도를 감행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걸그룹이 구사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원성의 목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2014년이 시작하자마자 대한민국의 수많은 걸그룹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섹시 코드’를 내세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팀만 해도 걸스데이, 달샤벳, 레인보우블랙, 스피카, AOA 등이 예외 없이 노출이 심한 의상이나 안무를 내세워 무대를 꾸미고 있다. 걸그룹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아가 K팝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14년의 K팝을 조망해 본다.

세계를 활보하는 보이그룹 춘추전국시대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차이는 단지 성별만이 아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완전히 별개의 접근을 요구한다. 일단 보이그룹의 경쟁은 2014년 한층 다채로워질 전망이다. 이는 2013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엑소(EXO)가 ‘으르렁’이라는 히트곡을 통해 무대를 구성하는 접근법을 한 차례 일신했기 때문이다.

12명의 멤버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영리하게 시간을 배분하며 무대 위에서 협업하는 모습은 퍼포먼스에 대한 발상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엑소는 빅뱅과 비스트, 샤이니와 인피니트가 분할하고 있던 보이그룹의 경쟁 구도를 뒤흔들면서 등장한 ‘현재 가장 뜨거운 보이그룹’이다. 한편 성시경, 박효신, 서인국 등 남자 솔로가수들의 소속사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가 데뷔시킨 6인조 빅스(VIXX) 또한 작년 12월 KBS 뮤직뱅크 1위를 차지하며 도약을 예고했다.

국내의 신흥 강자들이 발판을 다질 때 2006년 데뷔해 한국 보이그룹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빅뱅은 작년과 올해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하며 총 81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특히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일본 6대 돔 투어는 일본 최고의 가수들도 시도하지 못하는 대형 공연으로서 티켓매출액만 770억 원에 달했다. 올해 여름 빅뱅의 정규 앨범이 새로 나오면 다시 한 번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빅뱅(BIGBANG)

한편 빅뱅에서 가장 주목받는 멤버 지드래곤(GD)은 빅뱅 활동을 차치하고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2013년 솔로 앨범을 발표한 지드래곤은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트렌드 세터들에게서도 유의미한 반응을 끌어냈다. 민요를 샘플링한 지드래곤의 노래 ‘늴리리야’는 미국의 콤플렉스 매거진에 의해 ‘2013년의 노래’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미 스스로도 세계를 의식하고 있는 듯 지드래곤은 이 곡에서 “이건 랩으로 하는 국제적 외교”라고 노래했다. 그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또한 국제스타 싸이의 신곡 뮤직비디오에 지드래곤을 함께 출연시키는 등 그를 국제스타로 만들려는 시도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2014년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지드래곤의 이름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싸이와 지드래곤이 있다면 일본 오리콘 차트에는 또 다른 한국 보이그룹 2PM이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정점을 찍은 뒤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상승세다.

지난 1월 29일 일본에서 발매한 2PM의 세 번째 앨범은 발매 당일 오리콘 일간차트에서 1위로 진입했다. 2011년의 한류 거품이 빠진 뒤임을 고려하면 매우 고무적인 성과다. 한일 양국의 관계가 경색된 시점에서도 대중문화에서는 의미 있는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AOA

걸그룹들이 ‘섹시 코드’를 내세우는 이유

소녀시대 역시 일본에서 순항 중이다. 2013년 1월 1일 신곡 ‘I Got A Boy’는 끝내 한국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지만 걸그룹의 정점에 서 있다는 소녀시대의 상징성만큼은 굳건하다. 한 해 동안 신곡을 내지 않아 활동이 뜸한 느낌이었지만 국제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작년 6월 한국의 시작으로 아시아와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단독 월드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역시 오리콘 주간차트 1위에 오르며 건재한 인기를 과시했다. 오리콘 차트에 2장의 앨범을 1위에 등극시킨 여성그룹은 소녀시대 밖에 없다. 1990년대 SM엔터테인먼트의 선배인 S.E.S가 오리콘 차트 정복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해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한편 소녀시대가 한국을 비운 사이 국내 걸그룹의 판도는 그야말로 혼전 그 자체의 격렬한 경쟁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2009-2010년 사이 걸스데이, 나인뮤지스, 레인보우, 미쓰에이, 시크릿, 씨스타, 애프터스쿨, 에프엑스, 티아라, 포미닛, 2NE1 등의 걸그룹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던 시기에 이미 예고됐던 것이기도 하다.

혈투 속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한 2013년의 승자는 걸스데이, 에이핑크, 씨스타 정도다. 2011년 데뷔한 에이핑크는 청순한 여자 친구 같은 매력을 어필하며 현재 활동 중인 걸그룹 중 크레용팝과 함께 섹시한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는 몇 안 되는 팀이다.

한편 걸스데이와 씨스타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데뷔 초기에는 별로 시선을 받지 못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를 얻은 ‘크레센도형’ 걸그룹이라는 점이다. 2012년부터 또 한 차례 홍수처럼 등장한 일련의 걸그룹들이 꿈꾸는 것이 바로 걸스데이와 씨스타와 같은 상승곡선이다.

이 경쟁에는 기존의 3대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라 유니버설뮤직이나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직배사들도 가세했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때로는 과하다 싶은 퍼포먼스가 동원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녀시대(少女時代)

열성적이지 않은 걸그룹 팬들 … 부수 전략 쉽지 않아

걸그룹들은 왜 필연적으로 섹시 코드를 선택하게 될까. 우선 섹시 코드 전략에는 통계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쉽게 말해 성공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2013년 ‘멜론’ 디지털 음원차트 베스트 10에 들어간 노래들 중에서 4곡이 걸그룹의 곡이었다. 이 중 에이핑크의 ‘NoNoNo’를 제외한 3곡이 모두 씨스타, 포미닛 등 섹시 코드를 내세운 걸그룹의 노래였다. 기본적으로 좋은 곡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긴 하지만 섹시 코드 전략에는 시선을 집중시키고 히트의 질량을 불려놓는 장점이 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다.

전략의 하나로써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모든 걸그룹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섹시 코드를 내세우는 풍경은 좀 특이하게 여겨진다. 이유가 뭘까. 정답은 다시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차이, 더 나아가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소비하는 팬덤의 차이로 귀결된다.

보이그룹은 주로 여중·여고생들에게 소비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보이그룹과 관련된 각종 상품 - CD, 사진집, 공연용품, 달력, 캐릭터 스티커 등 - 을 열성적으로 구매한다.

이른바 ‘아이돌 굿즈(goods)’로 불리는 이 상품시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돼 하나의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보이그룹의 이미지가 철저히 만들어진 가상의 것이라 할지라도 소녀들은 그 이미지를 ‘실질적으로’ 소비한다.

반면 걸그룹은 소비 포인트가 마땅치 않다. 걸그룹을 따라다니는 열성적인 남성 팬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TV나 행사장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 굿즈의 세계로까지 넘어가지는 않는다. 소년들은 걸그룹의 이미지가 ‘눈앞에’ 비쳐지기만 하면 더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 남녀 소비자의 차이가 보이그룹과 걸그룹의 전략 차이를 만든다.

걸그룹은 철저하게 무대에서 승부를 봐야만 하는 존재다. 퍼포먼스의 심오한 패러다임까지를 제시할 여유가 없다. 그런 가운데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엔 가장 쉽고 빠른 섹시 코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걸그룹의 섹시 코드는 결국 새로운 승자와 패자를 탄생시킨 뒤 변증법적 대안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솔로가수들의 ‘위대한 비상구’ OST 시장

한편 솔로 가수들의 약진도 2014년 K팝의 볼거리다. 특히 인기 드라마의 삽입곡이 음원 차트 상단을 접수하는 광경은 이미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4년 2월의 경우 SBS ‘별에서 온 그대’가 커다란 인기를 끌면서 삽입곡인 효린의 ‘안녕’ 케이윌의 ‘별처럼’ 린의 ‘My Destiny’ 등도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OST의 경우 드라마가 수출돼 국제적인 인기를 얻으면 가수들에게도 시장이 확장되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에 보이그룹-걸그룹과는 색다른 형태의 해외진출이 성립할 수도 있다.

K팝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SM 엔터테인먼트는 1996년 H.O.T를 데뷔시킬 때부터 한글 노래제목 옆에 영어 제목을 병기했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전략에 대해 비아냥대는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K팝의 세계화는 너무도 당연한 룰이 됐다. 이제는 노래 제목만이 아니라 가사에도 영어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올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시도와 혁신은 언제나 낯선 모습을 하고 온다. 경쟁은 언제나 지나친 것만 같고 시장은 언제나 과열인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K팝이 보여준 짧은 역사만 보더라도 혁신과 경쟁은 늘 새롭고 멋진 길을 열어왔다. 2014년의 K팝은 어떤 새로운 길을 개척할까. 모두가 똑 같은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혁신자들의 주사위는 새로운 지평 위에서 던져지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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