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영화, 정치와 종교 사이에서
파키스탄 영화, 정치와 종교 사이에서
  • 미래한국
  • 승인 2014.03.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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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스크린 뒷담화
이슬라마바드의 현대식 멀티플렉스 극장

파키스탄에서 영화를 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절반 정도는 과장이지만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2월 2일과 12일 페샤와르 지역의 영화관에 폭탄 테러가 연달아 터졌다. 2일의 사고에서는 수류탄 2발이 터져 35명의 관객이 죽거나 다쳤고 12일 사고에서도 역시 수류탄 폭발로 그만큼의 관객이 죽거나 다쳤다.

어떤 영화를 보던 중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국영화를 상영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나 라호르, 카라치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도 호텔이나 마켓 같이 대중이 출입하는 주요 시설에 대해서는 총을 든 경비병들이 경계를 서고 큰 도로에서도 검문을 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런데도 그 정도는 보안이 좋은 편에 든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페샤와르 지역은 긴장감이 흐르는 위험지역으로 비친다.

영화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시선이 강한데 이슬람 원리주의적 입장에서는 특히 미국영화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다. 서방 세계의 퇴폐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이슬람 사회에 퍼트리는 독소적 요소라고 여기는 듯하다. 영화관을 주요 테러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데다 영화에 대한 적개심이 그만큼 커다는 반증이다. 파키스탄 국내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일부가 어떤 것인가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파키스탄 영화 사정은 대체로 소박한 수준이다. 2013년에 상영한 파키스탄 영화는 모두 37편. 우르드어를 사용한 영화가 10편, 펀자브어 사용 6편, 파슈툰어 사용 18편, 영어 사용 2편, 시리아키어 1편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에 23편이 등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제작 편수는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숨 걸고 영화를 본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는 연간 120여 편, 2000년대 들어서도 60여 편 내외의 영화를 제작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의 추세는 지속적인 위축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파키스탄 영화가 활기를 보이던 때를 가리켜 롤리우드(lollywood)라고 부르기도 했다. 라호르 지역을 중심으로 파카스탄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가리켜 부른 별칭이다.

미국의 할리우드가 영화산업의 중심지라는 점에 빗대 인도 봄베이(뭄바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영화활동과 영화를 가리켜 볼리우드(Bollywood)라고 부르듯이 파키스탄 영화 또한 인도와는 다른 분위기로 지속적으로 제작을 계속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도 영화가 춤과 노래, 로멘스와 액션을 적당히 섞은 낭만적인 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것과는 달리 파키스탄 영화는 액션이나 멜로를 기본으로 하며 규모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수준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공식적인 교류는 2005년 이후 시장 개방을 계기로 확대되고 있지만 관객들은 인도 영화를 영화관을 통해서보다는 DVD 같은 비공식적인 유통을 통해 더 많이 본다고 한다.

파키스탄 영화가 산업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한편으로 영화에 대한 규제도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종교적인 이유가 많이 작용하는데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한 주요 이유도 이슬람과 힌두교간의 대립을 꼽는 것처럼 종교적인 요소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사례가 수시로 발생한다. 지난해 6월 영화검열위원회가 인도 영화 ‘란자나’(Raanjhanaa)의 상영을 금지한 것이 최근의 사례.

파키스탄의 무비 스타

극도로 위축된 영화 시장

힌두교 신자인 청년과 무슬림 여성 간 연애를 다룬 것이어서 내용은 인도판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구성이지만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파키스탄 당국의 시선으로는 적대적인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연애는 용서하기 힘든 불경에 해당하며 이 영화가 상영된다면 파키스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불쾌하게 만들어 소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2012년에는 인도판 제임스 본드 영화인 ‘에이전트 비노드’(Agent Vinod)의 상영을 금지했다. 인도 비밀요원이 수도 뉴델리에서 원자탄을 터트리려는 파키스탄 간첩들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상황을 설정한 것인데 파키스탄인을 모욕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제2차 영토전쟁을 벌인 1965년부터 서로 상대국의 영화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영화관 뿐만 아니라 TV에서도 인도 영화나 노래를 방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면적인 봉쇄였다. 2006년 4월에 와서야 파키스탄은 인도 영화의 국내 상영을 허용했다. 당시 상영한 영화는 ‘위대한 무굴’과 ‘타지마할’이라는 서사극. 정치적 적대를 완화한다는 사절 역할을 영화가 한 셈이다.

그렇다고 두 나라 사이의 국민들까지 마음을 연 것 같지는 않은데 인기 있는 파키스탄 여배우가 영화 속 상대인물이었던 인도 애인과 키스하는 장면을 연기했다가 분노한 관객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 일이 생길 정도로 인도에 대한 반감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듯하다.

평소에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두 나라 간에 크리켓 시합이라도 열리면 온 나라가 열광하며 어떻게든 상대를 눌러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축구 시합이라도 벌어지면 단순한 경기 차원을 넘어 애국심 경쟁으로 치닫는 것과 닮았다.

인도 영화에 대한 대응이 파키스탄 정부 차원의 정책에 따라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파키스탄 영화배급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미국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의 국내 개봉을 거부한 경우도 있는데 파키스탄을 국제테러의 중요한 거점처럼 묘사하고 있는 영화 내용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라호르 국제 영화제

영화 내용에 따라 규제

영화는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쫓는 상황을 담고 있는데 빈 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서 미군 사살작전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도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국제적 개방과 교류에 관심을 높여 나가고 있는 중인데,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라호르국제영화제(Lahore Internation Film Festival)가 열렸다. 파키스탄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 영화들에 대해서는 적개심이나 경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있는 상황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했다는 것은 그 규모나 내용을 불문하고 교류와 개방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키스탄 영화가 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고 영화인들 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지난해 한국 영화 몇 편이 파키스탄에 제한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다. 한·파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한국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었고 이슬라마바드 시내의 대형 쇼핑몰 내에 자리 잡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영화 ‘넛잡’을 일반 상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외에 한국 영화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는데 아시아 각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류 바람도 파키스탄까지는 미치지 않은 듯 시내 어디에서도 바람 부는 느낌이 없었다. 한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바람으로 왕래하기에는 아직 멀어 보이지만 바람이 가지 못하는 곳이 어디 있을까?

조희문 편집위원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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